풍요로운 안식일 성수를 위한 세미나


제 2장 쉼 없는 인류를 위한 거룩한 쉼

풍요로운 안식일 성수를 위한 세미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풍요로운 안식일 성수를 위한 세미나를 통해서 풍요로운 안식일 성수의 의미와 세계 도처에 있는 수천의 사람들이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시간에 내 생애에서 안식일에 얽힌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주께서 이태리 로마 시에서 살 때 일하는 동료 가운데 왈덴스인 한 사람이 아버지에게  성경을 전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나의 아버지가 안식일 진리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주를 높이는 것이 나의 부모님과 내 자신에게 어떤 시험거리로 대두되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토요일에는 학교 가는 일이나 운동하는 일을 거절했기 때문에 조소와 배반을 당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주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언젠가 주의 날이 어느 날이며 오늘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하는 꿈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꿈은 1977년 7월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라고 하는 나의 논문집이 교황청 안에 있는 그레고리안 대학 인쇄소에서 교황청의 허가를 얻어 인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우리의 삶 속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면 최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연구하겠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연구의 제목은“쉼 없는 인류를 위한 거룩한 쉼”이라고 하는 책 6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시의 적절한 이 책은 20여개국어로 번역되어, 이 세상 도처에 있는 사람들로 안식일은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소생케 하는 날이요, 하나님의 창조 사업과 구속 사업을 찬양하는 날이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연구하는 동안 여러분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감명을 주는 것이라고 느끼신다면 그 책에 나와 있는 6장 전체를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현재 가장 흥분되고 역설적인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음속 제트기를 이용해서 하늘을 가로지며 태양과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나 모든 문제를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고독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나 주체성을 모르는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우리는 지금 완전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날로 발전되는 통신수단, 편안함과 편리함을 즐기고 있지만, 육체적 피곤, 감정적 좌절, 사회적인 무시와 소외, 인류의 문제들을 위한 거룩한 해결책에 대한 확신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짓누르는 이러한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안식일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하고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마음에 두고, 우리 개인들과 지역 사회에 안식일에 할 수 있는 봉사에 대해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안식일, (2) 우리 자신들에게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안식일, (3)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의 안식일.

 

우선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의 시간과 기회라는 점을 중심으로 안식일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성경은 반복해서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주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내는 주중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봉사와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봉사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 예수님을 자주 영접했던  베다니에 살던 두 자매인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과 잡수실 음식을 준비하는데 바빴습니다. 그녀는 손님을 잘 모시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에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마르다처럼 우리 또한 삶에 필요한 많은 필요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주중에도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안식일에 우리의 생각과 삶 전체를 주님께 우선적으로 드림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을 위해 쉰다고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예배의 행위로써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반응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바키오키 박사님, 안식일과 일요일에 대해 연구하신 분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일요일을 지키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 차이점이란 “쉬는 행위와 예배의 형태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설립하신 것으로 창조 사업을 쉬신 날이요, 교제하는 날이요 예배하는 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와 반대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예배하는 시간으로 시작해서 예배하는 시간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주후 150년 경, 저스틴 마르터(Justin Martyr)라는 사람이 일요일을 지키는 일에 대해 기록한 초창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참회록 67장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아침(태양의 날) 일찍 왔다. 저들은 이른 아침 예배에 참석하고 보통 때처럼 일하러 나갔다”라고 했습니다.


주후 321년 콘스탄틴에서 교황들과 종교회의와 심지어 청교도들까지도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만들기 위해 시도했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일요일은 주로 시간적으로 예배하는 것에 그쳤을 뿐 쉬는 날, 혹은 주님께 예배하는 날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서 천주교회에서 일요일에 하는 미사를 토요일 오후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10,000곳 정도 되는 개신교회에서는, 침대에서나 보트 또는 오락이라고 하는 성소에서 일요일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토요일 오후에 드려지는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 드리는 예배 대신에 토요일 오후에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므로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대처하는 데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안식일 성수에 꼭 필요한 것은 한 시간 동안 교회에 가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이라는 하는 하루를 주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계명에 두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 첫 번째 것은 “엿새 동안 네가 일할지니, 네 모든 일을 할지니라”.(출 20:9-NKJV)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 역시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입니다.


일주일 내내 빈둥거리며 놀던 사람들은 안식일이 와도 찬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보통 날보다 더욱 지루한 날이 됩니다. 우리가 만약 완성하고 만족한 의미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주중에 나가서 어떤 일인가를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하시던 일을 “마치셨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셨기 때문에 창조 사업에 있어서 완성하신 일, 완전하게 이루신 일에 대해 축하하고 찬양할 것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엿새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마침으로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와 구속사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주중에 이룰 수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신 일, 우리를 온전히 구속하신 일,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일, 결국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에 대해 기억하며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에 우리가 기억하고 찬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 사항입니다. 안식일에 대해 이러한 중요한 사항들이 제가 쓴 “쉼 없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쉼”이라는 책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환영하는 것이 보통 날을 환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식일의 주님을 존경받는 손님으로 환영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하는 일이나 하는 말들을 아주 특별한 손님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방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구주를 환영하므로 우리 구주와 특별한 관계를 계발할 수 있게 됩니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계발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관계가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계속적인 계발이 필요합니다. 인간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 진리는 동일합니다. 내가 대학 공부를 했던 영국에 있는 뉴 볼드 대학에서 남녀 학생들에게 부여했던 A, B, C 제도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제하는 남녀 사이에 A라는 점수를 얻으면, 매주 한정된 장소에서 서로가 만나서 한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귀는 사람들 중에 B나 C를 얻으면 이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번만 만나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A를 받기 위해 주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는 나와 나의 약혼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주 만나는 일을 필수적인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사실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와 매주 함께 하는 특별한 만남의 시간입니다. 이러한 만남은 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계속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안식의 시간에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주님의 영적 임재를 느끼며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것을 느낄 때 엄숙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안식일의 시간과 안식일의 행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신자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이 주시는 쉼과 평안을 체험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이토록 성서적인 안식일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24시간이라는 하루를 하나님께 구별해서 바쳐야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들은 11시 예배만 참석하고 그것으로 거룩한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12시 설교 예배가 끝나면 안식일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면 집에 가서 안식일 옷을 벗어서 옷장에 겁니다. 그리고 옷장 문을 닫는 순간 안식일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세속에 속한 잡지나 신문을 보거나 아니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평상시에 하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일곱째 날 하루 24시간을 우리의 생각과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안식일의 시간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별로 관심이 없는 자들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만듭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우리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머물 수 있도록 분명한 관심과 시간을 배려합니다.


거룩한 날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는 세속에 속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 사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거룩하신 분처럼 되라고 하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을 위한 시간과 기회들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가 하는 일을 중단하므로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더욱 풍성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히4:10) 육체적인 쉼은 구속의 영적 쉼을 체험하도록 해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에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으로 소생함을 입을 수 있을까요? “쉼 없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쉼”이라고 하는 책 6장에 여러 제안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세 가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로 그대의 하던 모든 일이 마쳐진 것처럼 안식일에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렇게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주일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열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획한 것 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됩니다.  금요일 해질 시간이 될 때 우리는 자주, “아니 벌써 해가 지고 있잖아!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말이야!” 하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들이 하던 일을 그냥 멈춥니다. 그러나 저들이 마치지 못한 일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들은 안식일 시간에 안식일이 마치자마자 아직 못 마친 일을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일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담을 주게 됩니다.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일에서만 아니라 일에 대한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쉬라고 초청합니다.


안식일에 쉬는 것이 왜 그렇게 특별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안식일에 우리 몸이 잘 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쉼과 소생함을 체험하기 위한 두 번째 제안은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계획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시간을 계획할 때 그 가운데 어떤 시간은 명상하기 위해 시간을 제쳐놓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특별히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리저리 분주히 왕래하며 쉼을 누리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의미 있는 명상을 해야 하는 시간과 그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명상은 여러 형태로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나 신앙 서적을 보면서 명상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명상을 위한 독서는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하는 독서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명상을 위해 독서를 할 때에는 분석하고 비평하기 위해 하는 독서가 아니요, 기록된 페이지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영적 필요를 말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홀로 있으면서 명상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가 함께 명상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명상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한 다양성을 계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풍요롭게 하는 명상을 위해 어떤 시간을 할애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우리의 영혼과 몸이 함께 균형을 이루도록 해 줍니다. 주중에 우리 몸의 필요만을 위해 일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초대받은 것입니다.


아프리카 탐험대원들이 길이 없는 곳을 올라가면서 무거운 장비를 나르며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날 행군을 한 후, 저들이 지고 가던 짐들을 내려놓고 길옆에 주저앉아 쉬는 것이었습니다. 움직이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탐험대장이 화를 내면서 “왜 움직이지 않는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데 말이야”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아프리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대장님,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잠깐 우리 몸을 쉬게 하는 중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영적 삶에서 육신의 쉼을 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울리는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에 쉼과 소생의 경험을 하기 위한 세 번째 제안은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기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경과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안식일은 기쁨의 날이었고 기쁨의 날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만일 안식일로부터 네 발을 돌이키며,  내 거룩한 날에 네 즐거움을 행하는데서 돌이키고, 안식일을 기쁜 날이요, 주의 거룩한 날이라고 하면... 그 때에 네가 주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요.”(사 58:13-14-NKJV)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그분이 창조물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선하심을 감상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예배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사람들은 더욱 친절해 지며, 안식일에 먹는 음식은 더욱 맛이 있게 됩니다.


나는 주 중에 내 아내가 요리하는 스파게티를 먹지만, 안식일에는 더욱 맛있게 먹습니다. 안식일에 먹는 음식에는 안식일이라는 양념이 추가되기 때문에 특별한 음식이 됩니다.


맛있는 양념이 맛을 더하듯이, 안식일의 즐거움은 주중의 매일의 삶을 더욱 즐겁게 해 줍니다. 안식일이 없는 한 주일은 마치 스파게티 소스가 없는 스파게티 국수와 같습니다.


안식일에 체험하는 기쁨, 평안과 쉼은 한 주일을 살아가게 하는데 맛을 더해 줍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섬기라고만 하지 않고,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라고 합니다.


넷째 계명은 우리 직계 가족들만 챙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지하고 하는 사람들 심지어 객들까지도 챙기라고 명합니다.  짐승들까지라도 안식일이 주는 축복을 누리게 해야 한다고 명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에게 쉼을 주고 구속해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풀므로 하나님의 창조물로 더불어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외진 곳에서 아름다운 새들이 노래 소리를 들으며 꽃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보내시지 않고,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살아있는 사랑의 봉사를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복음서에 안식일의 중요성을 선포하시기 위해 일곱 번에 걸쳐서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약에서의 안식일 기록을 찾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구약에만 안식일이 언급되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셨으며 안식일에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2:12)  안식일은 생명을 구하는 날입니다.(막 3:4)



안식일은 육체적인 짐과 영적인 짐을 덜어주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날입니다.(눅13:12). 안식일은 자비를 베푸는 날이요 광신적으로 지나치게 하는 날이 아닙니다. (마12:7)



안식일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있는 날입니다.(막2:27) 안식일은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 소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선 먼저 우리 가족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결혼한 배우자들입니다. 세 번째로 도움이 필요 되는 사람들입니다. 간략하게 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살펴봅시다.


안식일은 가족적으로 축제를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 중에 가족들은 각기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흩어져 있습니다. 부모들은 직장으로 자녀들은 학교로 나갑니다. 안식일은 가족 식구들을 한데 가깝게 모으는 날입니다. 함께 예배하며, 쉼을 즐기며 함께 놀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가족들을 한 데 모으며, 가족 관계를 더욱 강하고 두텁게 해 줍니다. 아버지는 때때로 주중에 집을 떠나 있을 수 있으나 안식일에 자녀들과 가깝게 모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음식은 안식일 식사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이 너무나 신속하게 움직이고, 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시간을 다투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깨어지는 가정들의 수를 증가시킵니다. 안식일은 주 중에 생길 수 있는 소원했던 어떤 관계들을 남편과 아내 사이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으므로 이런 점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는 에덴동산으로부터 지금까지 전래 해 온 두 제도라는 점입니다.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는 거룩한 약속의 증표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증표요, 결혼 제도는 배우자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증표가 됩니다.


안식일이 결혼 관계를 두 가지 점에서 강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신학적으로 안식일은 그리스도인 부부는 결혼 서약의 신성함을 상기시키는 일을 해줍니다. 실제적으로 안식일은 부부가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안식일은 도움이 필요 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 둘 다를 제공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은 순종을 강요 하는 날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나 지역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중에 교인들이나 이웃들을 방문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경우 문병할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을 낼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안식일만큼은 그런 핑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과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식일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다른 사람을 방문해서 격려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면, 안식일이 마치는 시간쯤에 마음에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면으로 축복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안식일은 우리들에게도 커다란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안식일에 대한 연구는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서 안식일의 24시간 전체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으로 소생하는 경험을 하므로 우리 자신들에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 되는 사람들 가까이 접근하므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하나님과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날이 되어 우리 삶 자체가 풍요롭게 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에게 와서 그분의 임재 안에서 평안과 쉼을 누리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초청에 사랑으로 응하는 날이 안식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차례

    1장 바티칸에서의 안식일 연구

    2장 쉼이 없는 인류를 위한 거룩한 쉼

    3장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쉼

    4장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5장 십자포화 속의 안식일

    6장 재림의 소망으로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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