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주 아래에 성경을 감춘 이유
항상 성경을 감추는 곳은 부엌의 찬장 뒤였다. 부엌에서 성경을 보다가는 부엌 바닥에 묻기도 하고 찬장 뒤에 감추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성경을 읽고 초등학교(인민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가방 속에 넣어 방문 안 쪽의 못에 걸어두었다. 그곳이 안전해서가 아니었다. 우연히 그렇게 한 것이었다. 때마침 내무서원들이 들어와 가택을 수색한다고 했다. 만일 방에 들어오면 바로 문 뒤에 있는 못에 성경을 넣은 가방을 걸어두었는데 피하거나 감출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도무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무서원은 들어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을 앞으로 숙여서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 아닌가? 알고 온 것이었다. 알지 않고서야 들어오자마자 부엌으로 가서 찬장 뒤를 뒤질 수 있었겠는가? 부엌에서 성경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집안 여러 곳을 뒤졌지만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둔 어린이의 가방에 성경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후 집에 숨길 만한 것이 있으면 숨기라는 지면있는 판사로부터 우정의 경고를 받고는 성경을 어디에 감추어야 하는지 고민이 생겼다. 이제는 방도 부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결국 집 안에는 숨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의심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할 장소인 전신주 아래에 성경을 감추었던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성경책
아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00년에 탈북을 시도해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의 어머니는 밤마다 눈물로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이유를 물었더니 성경을 못 가져오셔서 우신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정말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성경을 가지러 가기 위해 다시 북한에 다녀와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성경을 받아들고야 안심한 듯 눈물을 씻으셨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쫓겨다니는 불안도 불안이지만 가난은 피하기 힘든 고난이었다. 남한으로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길이 막연했다. 남한에서 중국에 선교를 위해 온 사람들이 북한에서 갖고 온 성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성경을 주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못가면 못갔지 이 성경을 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안식일교인인데 교회를 저 버릴 수 없다"고 하셨다. 한국행 약속으로 성경을 받을 수 없었음을 안 그들은 성경을 100,000원에 팔라고 제안했다. 중국의 인민폐 100,000원은 한화로 15,000,000원에 상당한 거금이었다. 아들도 어머니를 설득시키기 위해 졸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대답은 "아들은 이 성경은 내가 열 일곱 살 때부터 나의 믿음을 지켜준 성경인데 어떻게 팔 수 있겠니.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란다."고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