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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월요일 - 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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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5~29).

요한복음의 예수 이야기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주제를 위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에서 그 핵심은 부활입니다. 그 기쁜 소식은 예수의 부활에서 시작합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예수가 죽음을 이기신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을 위해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그분은 자신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 14:19). 같은 저자가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 물론 이 열쇠는 우리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에서는 부활의 때가 온다고 말할 뿐, 정확히 언제인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6장에서 예수는 좀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4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54절).
따라서 그 복된 사건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임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만 읽는다면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두 부활 사이에 1,000년의 시간 차가 있다고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보충 설명합니다. 의인이 부활한 뒤 악인은 무덤에 잠들어 천년기를 보냅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날 제 삶을 영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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