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와 은총이에게는 베프(Best friend,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4살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애틋하게 지내고 있는 탄자니아 친구인데요. 에쉬케쉬 광야 사역을 함께 시작한 가브리엘 곰냔 사역자의 첫째 아들 파라자(Faraja)입니다. 나이 만 9. 100cm의 남자아이. 얼핏 베프라고 보기엔 다소 안 어울리는 외관입니다만, 그래도 만나기만 하면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고, 서로 간에 속닥속닥 속엣말까지 주고 받는 그런 사이랍니다. 작은 강을 건너고,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넓다란 광야 에쉬케쉬. 저 멀리, 은빛 교회 철판 지붕이 반짝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교회 앞에 미리 나와 은하와 은총이를 기다리고 있는 파라자. 발을 동동거리며 펄쩍펄쩍 좋아라 뛰고 있는 파라자의 모습에 아이들도 어서 내릴 채비를 합니다.

 

에쉬케쉬에 가기 전날이면 언제나 파라자에게 줄 물건들을 챙기곤 했는데요. “엄마, 이거 파라자가 좋아할까요?” 물으며 맛있는 젤리나 재미있는 장난감을 조금씩 쟁여놓곤 했었지요. 덕분에 한국에서 공수해 온 자전거며 작아진 뽀로로 샌달, 캐틱터 가방처럼 쓸만한 물건들은 모두 파라자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이산 가족 상봉하듯 서로 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아이들. 곧 파라자를 위해 가져온 선물들을 땅 위에 쫙 펼쳐 놓습니다. 줄넘기, 스티커, 사탕, 각종 연필과 종이까지. 값비싼 물건이나 되는 냥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그걸 또 귀하게 받아 드는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던지요.

 

식사 때가 되어 은하, 은총아! 손 씻어야지.”하고 부르면 파라자, 투오샤 미코노 쾅구(Tuosha mikono kwangu. 파라자, 우리 손씻자).”하며 막둥이 파라자도 챙깁니다. 고사리 손 여섯 개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걸 보며 저도 모르게 한 소리 보태지요. “얘들아. 손 좀 씻고 다녀.” 모래 위에서 달음박질을 하고, 교회 건물 뒤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신나게 놀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아루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침이 됩니다. 파라자는 꼭두새벽부터 제 엄마 치마폭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곤 했지요. “네마 나 자와디, 우카에 하파 나 미미(Neema na Zawadi, ukae hapa na mimi. 네마랑 자와디, 나랑 여기서 살자).” 신기루처럼 멀어져 가는 파라자에게 손을 흔들며 뿌연 눈물을 훔치던 친구들. 이들의 진한 우정도 어느덧 8년째가 되었습니다.

 

파라자는 그렇게 6년 이상 에쉬케쉬 오지마을에서 사느라 교육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지난 2018년에야 비로소 바소투(Basotu)에 있는 한 학교에서 1학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마웨니(Maweni) 사역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2학년을 마쳤지요. 마웨니 교회가 크게 성장하다 보니 근처의 모교회인 마구구 교회보다 교인 수가 더 많아졌고, 이에 따라 마웨니는 작년 말로 지원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자립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오지의 개척지를 지원한다는 방침 아래 올해는 가브리엘 사역자에게 키코레(Kikore)에 있는 새 교회에서 봉사해 주기를 요청하게 된 것이지요. 문제는 파라자. 1학년과 2학년을 제각기 다른 학교에서 공부했던 파라자가 3학년 역시, 또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키코레 역시 깊고 깊은 산골 마을이라 주변에 변변한 학교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지요. 가브리엘 사역자는 조심스레 아이만은 부모의 이동과 상관 없이 안정된 학교에서 공부할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루샤에 위치한 기숙형 학교인 탄자니아재림초등학교(Tanzania Adventist Primary School)로 보내고 싶다는 의견을 비췄지요.

 

가브리엘 사역자는 8형제 중 막내로 가족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형제들 가운데는 배운 이도, 교회 다니는 이도 없는 그야말로 무왕가 출신의 대표적인 토박이, 바라바이크 부족민이지요. 바라바이크 부족은 탄자니아에서도 손꼽히는 원시부족 중 하나이니 그의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눈에 훤히 그려집니다. 유달리 공부를 잘하고 영특했던 어린 가브리엘을 눈 여겨 본 근처의 오순절 교회에서 도도마(탄자니아의 수도)에 있는 신학대학까지 지원해주겠다 약속했습니다만, 그 즈음 재림 기별을 받아들이자마자 모든 지원은 하루 아침에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3년간이나 밥을 주지 않았지요.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채, 거리에서 구걸 하다시피 연명해온 가브리엘 사역자는 그래서 그런지 몹시도 마르고 왜소합니다. 파라자 역시, 또래에 비해 무척 작은 체구지요. 여느 부모나 똑같겠습니다만 자식만큼은 잘 키우고 싶은 가브리엘 사역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희는 지난주 안식일, 일부러 키코레를 방문하여 가브리엘 사역자와 파라자를 데리고 함께 아루샤로 올라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파라자의 꿈을 물으니 잠시도 머뭇거림 없이 나옴바 쿠와 음충가지(Naomba kuwa mchungaji. 저는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브리엘 사역자가 덧붙였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경을 가까이 하며 자랐어요. 마웨니에 있을 때 한 목사님이 파라자, 일요일에 나랑 같이 교회 가자농담 삼아 말했더니 싫어요. 천만 실링(10,000,000실링, 우리 돈으로 500만원)을 준다 해도 못 가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려는 아들. 오지에서 그 숱한 세월을 참고 견디다 오늘, 도시로 유학 온 파라자에게 정말이지 박수라도 힘껏 쳐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솟아올랐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온 식구가 함께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제일 먼저 이불가게에 가서 기숙사에서 쓸 매트리스와 두터운 담요, 분홍색 침대보 2장과 모기장을 샀습니다. 가게 주인과 신랄하게 흥정하는 저희 부부의 모습이 생경한지 가브리엘 사역자는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피부색이 하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고 4배는 더 올려 부르는 악독장사치들에게는 그만한 흥정이 먼저입니다. 꿈쩍도 안 할 것 같으면 획 돌아서는 연기도 필수지요. 다음으로는 샤워할 때 쓰는 작은 플라스틱 통과 수저 2, 그리고 양치용 컵도 하나 구입했습니다. 가브리엘 사역자는 플라스틱 통이 8,000실링이나 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파는 플라스틱 통은 싸디 싼 기름통을 세척해서 파는 것이고, 도시에서 파는 플라스틱 통은 새 것이라 설명하고 5,000실링에 깎아서 샀지요. 바로 옆 리어카에서 파는 책가방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운동화랑 학생화 구두, 장화도 한 켤레씩 샀지요. 각종 도매상들이 늘어선 거리로 진입해서는 바세린 로션(이래봬도 탄자니아에서는 최고로 쳐주는 고급 로션), 구두약, , 치약, 손톱깎이, 빨래세제, 화장실 용 휴지, 토치, 건전지, 그리고 열쇠 등등을 구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등록에 필요한 증명 사진 촬영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탄자니아에 온지 얼마 안되어 마사이 여학생들을 도와줄 때만 해도 사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무척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늙은 아저씨와의 강제 결혼으로부터 탈출한 한 여학생이 아루샤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버스터미널에 데리러 나갔는데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부모길래 자식이 도시로 공부하러 가는데 아무것도 안 싸서 보낼 수가 있나?’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어안이 벙벙해진 제 곁에서 레쿤다요 사모님(연합회장님 사모님)이 속삭이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요. 애당초에 아무것도 싸줄 것이 없어요.” 그 후, 여러 마사이 가옥들을 방문하며 깨달았습니다. 딸을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며 엄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 켜야만 했을까. 당장 먹을 옥수수 알갱이 하나조차 없어 빈 주머니로 보낼 수 밖에 없는 내 신세가 정말이지 박하고 한스럽구나. 미안하다, 아가. 가브리엘 사역자가 키코레에서 가져온 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팔꿈치가 다 떨어진 녹색 스웨터 한 장, 색이 바래버린 티셔츠 두 장, 우리가 전에 줬던 한국 유치원 마크가 새겨진 작은 가방 하나, 그리고 다 헤진 여름 샌달. 그게 다였습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탄자니아재림초등학교. 아루메루(Arumeru) 지역 학력평가 1, 아루샤 전체에서 학업성취도 5위를 자랑하는 명문학교에 들어서자마자 파라자의 얼굴엔 왠지 모를 기대감이 역력했습니다. 바로 교장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린 후, 간단한 테스트를 보았는데요. A, B, C 알파벳을 읽을 수 있는지, 스와힐리어 단어와 문장, 그리고 십의 자리, 백의 자리 숫자를 읽을 수 있는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괜시리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초긴장 상태. 숨죽이며 기다린 끝에 3학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장선생님의 합격!’ 선고(?)가 떨어졌습니다. 순간 진심으로 환호성을 올렸지요. 진짜 입학 허가를 받았으니 이제 교복을 맞출 차례. 학교 전담 재봉사는 교장선생님의 전화에 5분만에 달려왔고, 파라자의 다리와 어깨 치수를 꼼꼼히 쟀습니다. 다음으로는 앞으로 파라자의 집이 되어줄 기숙사를 함께 방문했는데요. 기다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촘촘하게 붙어있는 방에는 4~6명의 남학생들이 디귿자 형태로 놓인 2층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와중구(외국인)들의 방문에 놀란 아이들이 샤워를 하다 말고, 속옷까지 벗어 던진 채 놀란 토끼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느덧 꼬마숙녀가 된 은하와 은총이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려야 했지요. 이제 모든 일과를 마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끝낸 후, 파라자와 키를 맞춘 저는 오늘 밤 여기서 잘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저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큰 눈에 언뜻 스치는 두려움을 마주하려니 저 역시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은하와 은총이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몇 번씩이나 파라자는 잘 지낼까? 오늘은 잘 잤나? 이번 주에 가보면 안돼요?”하고 자꾸만 물어봅니다. 지난 일요일,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애들은 잠깐 차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파라자에게 줄 마지막 선물을 샀습니다. 아침부터 용돈을 챙긴다고 법석을 부리더니 새로 간 학교에서 적응하려면 장난감이 도움이 될 거라며 형형색색의 자동차 세트를 골라줬더군요. 길쭉한 비스킷 두 개도 새로 산 책가방 앞 주머니에 넣어주고, 유난히 좋아하는 자기들의 최애 막대 사탕 두 개도 슬그머니 넣어놨는데 다행히 사감 선생님한테 안 뺏겼다고 휴~ 안심을 했습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검사하며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가져가라고 돌려보냈는데 다행히 막대 사탕은 안 걸렸다고요.

 

은하와 은총이의 베프, 파라자가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재미있게 공부하길 바랍니다. 아루샤 삼육대학 교내에 위치한 탄자니아재림초등학교를 마치면 같은 캠퍼스 안의 재림중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치도록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빠처럼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를 나아가 신학을 졸업하고 이 교단을 이끌어 나갈 존경 받는 목사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려 봅니다. 파라자의 학비를 도와주신 김희택 장로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파라자의 소식을 들으시고, 이른 아침 새 책가방과 새 옷 한 벌 사주라고 따뜻한 후원금을 보내주셨던 저희 친정어머니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새 학년을 맞이하여 올해 초, 15명의 학생들을 후원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십니다. 12명에 달하는 사역자 자녀들의 학비와 더불어 해피니스 엘바리키, 모니카 시롱가, 레베카 토마스의 학비에 도움을 주신 궁동중앙교회와 박창우 장로님 그리고 채원이와 다연(유림) 어린이에게도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은하와 은총이의 학비에 도움을 주신 김종식 장로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먼 훗날, 은하와 은총이 그리고 파라자가 저마다의 인생길을 걸어 갈 때 그 옛날 받았던 아름다운 도움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 꿈나무들이 성숙한 존재로 자라나도록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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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브리엘 사역자 가족과 함께 에쉬케쉬 교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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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방문한 키코레 교회 돌의자에 앉아 같이 예배도 드리고, 함께 점심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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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에 꼭 맞는 신발이 어디 있나?  한번, 신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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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도착하여 아빠와 찰칵, 교장 선생님과 시험도 보고, 기도로 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