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한창이었던 어느 날, 가족들에게 이제 선교사 기간이 2년 남았다고 했을 때 큰 딸이 '아빠, 정말 2년 밖에 안 남았어요?' 하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했다.

 

44개월 전 대만에 PMM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아빠, 왜 한국에 있지 대만에까지 가려고 해?' 라고 말하며 울었던 그 딸, 그 후에 선교사 기간이 6년이란 말을 듣고 '아빠, 기간이 2년 아니었어? 2년 인 줄 알았는데 6년이나 된다고?'하고 또 울었던 그 딸이 말이다. 전에 중국 청도한인교회에 선교사로 2년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그 당시 큰 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전임지에서의 교회생활과 학교생활이 그저 즐겁고 행복했었던 아이에게 있어서 대만행 소식은 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 땐 정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다행히 큰 딸은 대만에 온 후로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특히, 대만 학교생활이 즐거워 보인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그렇게도 대만에 오기 싫어 했었던 큰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고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뿐이다.

 

둘째는 대만에 오기로 결정되었을 때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대만에서 지내면서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아빠! 왜 나를 대만에 데려와서 힘들게 해? 그냥 한국에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중학교에 입학할 때 '우리 둘째가 중학교에 가서 더 힘들어하면 어떨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학교생활을 언니보다 더 즐겁게 하는 걸 보며 한시름 놓았다. 최근까지도 한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둘째지만 나름 대만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언어연수를 시작한 지 며칠째 되던 날, 막내가 나에게 '아빠! 대만에 전도하러 왔다면서 언제 전도해?' 라고 물었던 기억이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막내는 10살이었다. 1년 언어연수 후에 선교사 활동을 시작하는 걸 모르고 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아빠가 전도는 안하고 중국어 공부만 하니까 이상했나보다.

 

대만에 오기 전에 나에게 큰 부담을 주었던 큰 딸의 그 눈물과 한국을 여전히 늘 그리워하는 둘째딸의 그 마음과 어학연수가 막 시작됐던 무렵에 막내가 나에게 던진 그 질문은 늘 나의 선교사 기간 내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다.

왜냐하면 힘들고 지칠 때면 큰 딸의 눈물과 둘째의 마음과 막내의 질문을 떠올리며 더 헌신하며 열심히 활동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지난 선교사 기간 4년을 되돌아보았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은혜의 발자취를 회고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앞으로의 2년의 선교사 생활을 계획해 보며 앞으로 2년 동안에도 함께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 보았다.

 

지금 코로나 19로 인하여 한국이 심각한 상황이다. 다행히 대만은 상황이 경미한 편이긴 하나 선교활동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푯대를 항하여 믿음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갈 때 올해도 한국과 대만의 선교사역에 생각지 않게 놀라운 역사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한국이 속히 안정을 찾길 기도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