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집으로 돌아오다

텅 빈 인천공항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습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는 대게 자정에 출발하기에 저녁 8시만 해도 탑승수속을 밟으려는 사람들로 만원인데 주차장에 내릴 때부터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그 시각, 짐을 내리는 사람은 저희 부부뿐, 지하에서 지상 출국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두바이로 가는 기내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플라스틱 눈 보호대와 마스크, 그리고 가벼운 방호복 차림의 승무원들로 가득했습니다. 서른 명 가량의 승객뿐이라 난생 처음으로 9시간 15분 동안의 긴 여행 동안 네 칸짜리 좌석에 누워 자면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북적거리기로 유명한 두바이 공항 역시 인적이 드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문 닫은 식당과 카페가 어찌나 많은지 ‘아, 지금 세계가 이렇구나. 코로나의 위협이 심각하긴 하구나.’ 실감이 절로 났습니다. 

6시간 후, 드디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아루샤로 가는 국내 비행기를 갈아 타야하지만 그럼에도 탄자니아 땅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탄자니아 거주증을 가지고 있어 신분확인만 하면 끝인데 오늘은 노동비자가 이미 거절된 상태에서 입국을 시도하기에 ‘입국 자체를 거절당하거나 벌금을 물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이 훅 밀려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바리(Habari,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이민국 아저씨, 되레 ‘안녕하세요?’ 한국말을 건넵니다. 본인 형이 한국의 KAIST에서 유학생활을 해서 온 가족이 한국을 좋아한다네요. 사실 이런 경우 $500짜리 스페셜 패스(Special pass, 노동 비자가 없는 사람이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받는 비자)를 끊어야 하는데 한국을 사랑하는 이민국 아저씨를 만나 아무 문제없이 관광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25시간이 꼬박 지난, 밤 9시. 드디어 집으로 가는 차에 올랐습니다. 아루샤 시내로 들어서는데 컴컴한 유령도시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둡지?’ 가로등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한산한 시내와 불빛 하나 없는 폐업한 대형호텔들이 휙휙 스쳐 가는데 마치 두려운 재앙이 지나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9년 간,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나의 사랑하는 선교지가 이렇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렸구나.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될까...’ 

8월 12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하게 지내던 한 이웃이 딸을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학교로 보내고, 본인도 곧 에티오피아로 이주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농업교육을 하던 사람인데 시장에 씨앗이 말라 버렸고, 제초제와 비료 역시 구입을 못한지 오래라며 내년 이곳 식량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세계 경제와 식량 안보. 탄자니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곳의 곡물 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습니다. 반대로 탄자니아를 빠져나가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다르에스살람의 집값은 눈에 띄게 폭락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면서 견디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 

현지 상황을 지켜보다 은하와 은총이에 대해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하나님. 은하와 은총이가 탄자니아로 돌아와 설사 이곳에서 1~2년가량 자가 격리 수준의 삶을 살며 제때 공부를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부족함을 일순간에 채우시고, 계속해서 진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광야는 마지막 시대를 위한 특급훈련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에, 그야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하늘 갈 채비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습니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잠 10:24).’ 악인은 죄가 늘 그 앞에 있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건들로 인해 늘상 두려움에 휩싸여 사나, 의인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에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의 뜻이 됩니다. 그래서 그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마주하며 살게 되지요. 저도 두려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런 의인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8월 18일 은하은총이가 한국 학적을 갖게 되다

‘목사님, 걱정입니다. 은하와 은총이가 계속 학업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8월 18일에 2학기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김종식 장로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3월 말, 코로나 사태로 한국에 일시귀국하면서 아이들은 정상적인 학업을 중단하고, 비자 여부를 기다리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2012년부터 3년간 현지 학교를 다녔던 은하와 은총이는 어느 날 부터인가 ‘엄마, 선생님이 책을 집어 던지고, 애들 머리를 막 때려요.’라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안식일, 근처의 지역교회를 방문 했을 때도 유년교과를 가르치던 한 집사님이 떠드는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훈육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 터라 안 그래도 애들 학교를 옮겨야 되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에쉬케쉬 우물을 도와주시던 김종식 장로님께서 은하와 은총이의 교육에 대해 물어오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솔직한 심정을 말씀 드렸더니 주변에 좋은 학교가 있는지 알아보란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이 문제없이 공부해야 선교사가 사역에 지장 없이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장로님의 말씀에 내심 놀랐습니다. 선교사 자녀이기에 어떤 환경이든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하지 않나 생각했던 저희 부부로서는 분수에 넘치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변에 한 호주인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장로님의 세심한 후원 속에 7학년 2학기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미국 그릭스 아카데미(앤드류스 산하의 홈스쿨링)까지 연결해 주셔서 영어 과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비자 여부만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집에 방치(?)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지인 분들을 총동원하여 전입학을 알아보셨고, 그 후, 모든 일들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삼육초등학교 6학년 3반 차은하, 차은총의 2학기 개학일 아침.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학교에 입학한 딸들의 모습이 카톡방에 속속 올라왔습니다. ‘선교사 자녀는 하나님께서 직접 키우신다.’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종식 장로님과 그분의 팀, 윤종태 전 한국연합회 교육부장님과 이영덕 선생님, 그리고 때늦은 학부모 역할을 하고 계신 오남리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비자는 아직인데 아이들의 교육이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들을 시작하셨습니다. 

8월 25일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다

#1 처음 에쉬케쉬 황무지 앞에 섰을 때 정말이지 막막했습니다. 사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바라바이크 부족들로부터 97에이커나 되는 넓은 부지를 받았는데 자금은 부족하고, 그분들이 원하는 교회, 학교, 우물 공사를 다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천막생활 끝에 교회는 세워졌고, 학교와 약국 건물도 들어섰으며, 비록 기증받은 땅 안의 우물은 실패했지만 타교단의 도움으로 에쉬케쉬 마을은 두 개의 우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가장 기쁜 소식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80명의 바라바이크 성도들이 우리와 함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과 현세의 필요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에쉬케쉬 이 후, 탄자니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전도 부족들을 위하여 오지 사역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2 몬둘리에 있는 재림초등학교(Jaerim Primary School)를 처음 짓기 시작할 때 해당 부지를 기증한 몬둘리 교회와의 마찰이 심했습니다. 건축자금을 몬둘리 교회에 맡겨놓았는데 엉뚱한 곳에 사용하거나, 인부들의 임금을 잘못 계산하는 등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럽던지요. 당시 교실 기초공사 중이었는데 그 기초를 번쩍 들어 다른 지역에다 옮겨놓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4개월 뒤, 공사 전체를 직영으로 바꾼 후, 시내에 나가 자재 하나 하나를 직접 고르고, 운반을 해가며 지난 시간, 손해난 모든 부분을 메워갔습니다.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교실 네 칸, 도서관, 행정관, 창고, 식당, 화장실 등 여섯 동의 건물을 모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첫 개교할 때만해도 15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1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2017년, 얼굴에 백반증이 발병했을 때 PMM 3년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퍼질 수도 있고, 치료도 꾸준히 받아야 하는데 백반증에 적이라고 하는 자외선, 즉 태양이 작열하는 아프리카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라고, 넌 꼭 나을 수 있을 거라고, 5개월 후에 함께 가자고 용기를 주신 친정엄마 덕분에 다시금 선교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연장 후, 3년 동안 지난 6년 보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더 풍요롭고, 더 크고 귀하신 주님의 역사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백반증은 완치 상태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늘 아버지! 

#4 카테쉬(Katesh)에 기술고등학교를 세워야 하나, 올도뇨 삼부(Oldonyo Sambu)에 직업전문학교를 지어야 하나 숱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2016년 겨울, 탄자니아를 다녀가신 박용귀 장로님과 박창우 장로님, 그리고 박충만 사장님의 열정 속에 여러 장소의 사역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2년간 거의 흐지부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 현지 탄자니아 연합회장이신 레쿤다요 목사님의 제안을 통해 아루샤 삼육대학교가 유력한 부지로 거론되더니 순식간에 대학 교내, 20에이커를 자급사역자들을 위한 기술훈련센터 부지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문호 장로님을 시작으로 여러 후원자분들의 재정이 물밀 듯 채워지더니 지난 1년간 몬둘리 재림초등학교를 능가하는 대규모의 공사를 거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숙사 마무리가 한창입니다. 코로나 와중에도 16명의 학생들이 자동차 운전, 재봉, 전기 프로그램에 각각 등록 하여 개원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현지 교단이 언제라도 쉬이 관리하고, 경영할 수 있는 대학교 내에 센터가 있으니 정말이지 다행이다 싶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 16:1)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참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5 따라서 이제 두 번째 연장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비자 갱신의 기로에서 그동안 모든 사역과 삶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의 계획과 행보에 저의 마음을 집중시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들을 선한 방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 23:17,18)

9월 2일 비자가 최종 거절되다

‘띵’ 문자 메시지를 읽는 순간 기다림의 끝이 이르렀음을 직감했습니다. 탄자니아 정부의 최종적인 거절을 현지 교단으로부터 전해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8월 하순부터 연합회 총무부장님과 재무부장님께서 2주에 걸쳐 탄자니아 수도 도도마에 위치한 노동부의 장관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10월 선거를 앞두고 전당대회로 바쁜 장관님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노동부처의 관계자들로부터 ‘비자 승인은 어렵다’라는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총무부장님께서는 ‘매년 8,000명 이상이 대학을 졸업하지만 청년층 실업률은 14%가 넘습니다. 정부로부터 빌린 학자금은 고스란히 정부의 몫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자국민 우선 정책으로 시장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선교사의 모든 사역을 현지에 이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라며 이해를 덧붙이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지난 2015년에 제정된 새로운 노동법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모든 선교사들은 5년 내로 병원, 학교, 교회 등을 자국민에게 전부 이양하고 떠나라는 것이 그 내용인데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 올해 드디어 그 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저희 역시 피할 길이 없이 최종적인 거절을 통보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목이 메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밟히고, 자꾸만 뒤가 돌아봐집니다.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이곳 사람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저를 괴롭힙니다. ‘안아줄 수 있을 때 더 안아줄걸... 나눠줄 수 있을 때 더 나눠줄 걸...’ 기술훈련센터 이곳저곳을 누비며 남편 역시, “여보, 여기다 용접 프로그램도 열려고 했었어. 목공 DIY(Do it yourself) 프로그램도 하고 싶었는데... 운전면허 연습은 이런 식으로 돌아서 언덕을 올라간 후, 다시 내려오는 거야.”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잇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 날 저녁. 남편은 민수기 33편을 읽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41번이나 짐을 싸고, 낯선 곳에 진을 쳤어.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9년이나 살았으니 ‘이제 일어나 이동하라’하셔도 이상할 게 없네. 그리고 인생이 90이라면 9년의 십일금을 드렸으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2012년 2월 21일. 우리가 이곳에 없었던 그 때처럼 빈자리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게 그렇게 조용히 떠나자. 오직 주님의 향기만 남기고 그렇게 조용히 가자.” 이 사역과 이 백성들 모두 원래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소유입니다. 남은 이양, 정리, 인사 모두 잘 하고 갈 수 있게 인도해 주세요.

9월 8일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분도 여호와시니 

2020년. 올해야말로 빛나는 계획들이 정말로 많았던 한 해입니다. 기술훈련센터가 개원하여 드디어 운영을 시작하는 해이지요. 손님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미국에서 세 팀, 캐나다에서 한 팀이 방문하실 예정이었고), 게다가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미국 중동부 야영회에도 참석해 부스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모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탄자니아 저희 집은 이제야 살만한 곳이 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제일 아까운 건, 새로 깐 전기배선입니다. 어찌나 전기가 잘 나가던지 타네스코(TANESCO, 탄자니아 전력공사)에서도 저희 집을 블랙리스트로 올려놓을 지경이었지요. 온 집안의 전기를 새로 다 했는데 이제 떠나게 생겼습니다. 시커먼 자국으로 더러워진 바닥과 벽도 한국식으로 장판을 깔고 도배까지 했는데 몇 달 지내보지도 못했네요. 나무 창문은 또 어찌나 낡고, 더러운지 손도 대기 싫어 창문 자체를 여닫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알루미늄 샷시도 새로 끼웠는데... 보일러 온수기도 설치하고, 세탁기도 6.5kg짜리 10kg짜리로 바꾸고, 프린터도 새로 샀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두 내려놓고 떠나라.’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탄자니아 집이 익숙해지고, 눈에 익고, 살기가 편해지자 저도 모르게 안정감을 갖게 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라.’고 하십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은 고작 30kg씩 두 개. 옷가지 몇 개와 읽던 책, 그리고 녹즙기와 전기밥솥을 넣으니 금세 차버리네요(다행히도 여분의 짐은 한국 교민들 편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친정엄마께서 “그래, 짐은 얼마나 쌌니?”물으시기에 “네, 녹즙기랑 전기밥솥 쌌어요.”했더니 “아이구, 그래도 부자 되서 오네.” 하시네요. 네, 비록 다 두고 가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되어 돌아갑니다!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매순간 만나며 살았으니 저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처럼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9월 9일 마지막 손님

점심을 먹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다소곳이 서있는 한 여학생. ‘누구더라?’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2017년, 한국의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인근의 한 대학에 입학하였고, 이제는 ‘역사와 스와힐리어’ 전공자로 곧 졸업을 앞둔 모데스트(Modest)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오순절 교회 교인이지만 자신의 부모님이 이곳 탄자니아연합회에서 관리원으로 일하셨던 터라 저희 집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셨고, 덕분에 첫 학년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얼굴을 모르는 한국분의 도움으로 모든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저 역시 어렵고 불쌍한 이웃을 돕는 삶을 살겠습니다.’ 또박또박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모데스트를 보며 참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그동안 누구를 도왔는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고, 그 사람이 다시 옆의 사람을 돕는다면 그 연쇄적인 감화력의 결과는 어떠할까요? 마지막으로 은하가 쓴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람처럼 

그래, 날아봐야지.

바람처럼 훨훨 날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줘야지.

그들에게 꿈을 줘야지.

날아봐야지.

그들도 꿈을 위해 날 수 있게 해줘야지.

그 사람들도 다음에 그럴거야.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달할거야.

바람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시원하게 즐거움과 행복을 실어줘야지.

큰일을 행할 거야.

우리 모두가 함께.

9월 14일 떠나기 이틀 전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어 매우 아쉽고, 죄송합니다. 탄자니아 사역에 동참해주신 모든 후원자 분들, 지인 분들, 친구들,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지회와 호남합회의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지난 8월 초, 재림마을의 기사를 보시고, 많은 성도님들께서 엄청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송민영님, 이영미집사님, 한신애집사님, 신선미님, 선교헌금, 표춘희님, 송정욱목사님, 선우님, 화랑기성님, 최화랑님, 박효식님, 안미옥집사님, 홍선옥님, 주은님, 라숙찬님, 김선도신두레님, 양미희님, 후원힘내십시오, 심주안기도합니다, 이재동님, 진석준님, 최성욱님, 왕상 17:6, 히 7:5, 박명희님, 문창현님, 화순교회, 강은덕님, 현의준님, 박등자님, 영동교회장은주님, 하나님함께하시길, 이동탁님, 허권호님, 최병윤님, 권영희Rachel님, 임재형목사님, 김성희스텔라님, 권오란님, 이현순님, 한윤구님, 이윤영님, 감사합니다힘내세요, 이연희님, 송정양종모님, 윤소현님, 현창택님, 차경복님, 고선애님, 박문희님, 이혜미님, 김화선춘천, 박춘옥님, 성미희님, 기도하겠습니다, 김영지님, 조춘옥님, 정동준님, 강은경님, 이원화님, 유성정은영님, 곽설아님, 소용배님, 김춘애님, 하태열님, 박은미님, 허경자님, 이혜민님, 방영애님, 장지영님, 전미이님, 이충신충성교회님, 심우성님, 조정순집사님, 이미자님, 반기희님, 김예식관산님, 그 외 미국 욜바린다 교회로 자금을 보내주신 강명균선생님, 김경옥집사님, 권경신집사님, 이경란집사님(Mission for Tomorrow), 이정화집사님, 그 외 따로 저희쪽에 성함을 밝히지 않고 자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혹시 명단에서 누락된 후원자 분들이 계시다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후원해 주신 자금은 연합회 내 어려운 가정을 위하여 전달했으며, 제 2차 옥수수 지원을 위해 함께 사용될 예정입니다. 

그 외 모든 목적자금 역시, 탄자니아 연합회 재무실로 이양했는데요. 앞으로 2020년의 남은 넉 달 동안, 무힌티리, 마구라, 관두메(최재우집사님, 영산교회, 김창준집사님) 세 곳에 교회가 건축될 예정입니다. 또한 기술훈련센터의 기숙사 역시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될 것입니다(이영자사모님). 12월 말까지 평신도 사역자들의 지원 역시 계속됩니다(고승석장로님, 김창준집사님, 박시님집사님, 권영자사모님, 최재우집사님, 강기훈집사님, 김문호장로님, 노귀환목사님, 해외산업선교단, 김희태장로님, 최창현목사님, 최정연님, 진석준님). 제 2차 옥수수 지원 또한 계속될 텐데요(김문호 장로님 외 많은 후원자분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번 제 1차 옥수수 지원으로 185가정에 식량을 보급함에 따라, 각 선교지에서는 감동을 받은 구도자 23명이 침례를 받겠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이번에는 그 수를 크게 늘려 400가구에 옥수수를 나누어줄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학비도 연합회를 통해 각 학교로 직접 전달되도록 이양을 했습니다. 해피니스 엘바리키 학생(2년치, 박창우장로님), 호세아 필립포 목사님(1년치, 강명균 선생님), 파라자 곰냔(4년치, 백미라집사님) 이렇게 세 학생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원자분들을 통해 주신 선교 차량 두 대 역시, 한 대는 탄자니아연합회에 또 다른 한 대는 탄자니아리프트밸리필드(TRVF, 합회)에 기증하였습니다. 집에서 쓰던 모든 가구와 전자제품 등도 내년에 개원할 기술훈련센터 구내식당과 기숙사를 위해 쓰여질 예정입니다. 탄자니아 이양보고는 현지 동역자인 호세아 필립포 목사님을 통해 연말에 모두 받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은 이곳을 떠날지라도 이곳 교단을 통해 하나님의 사업은 계속적으로 진전되고, 선한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지난 9년간, 먼 나라, 탄자니아의 성업을 위하여 많은 기도와 귀한 헌신을 드려주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탄자니아 선교사 

차성원, 최송화, 차은하, 차은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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