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39분

 

 

기억절 :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연구범위: 눅 6:12~16, 요 16:7~14, 눅 6:20~49, 렘 50:31, 사 57:15, 행 1장.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를 양성하는 데 적극적이셨다. 그러나 그분의 지상 생애가 짧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자신이 떠난 뒤에도 사업이 지속되도록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데 투자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수석 교사이자, 수석 조련사이셨다. 교육과 훈련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교육이 주로 지식의 주입을 의미하는 반면 훈련은 연습과 훈육을 통해 자격을 갖추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도력을 위한 제자들의 준비에는 지식의 습득도 포함되지만 영적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은 교리와 신학에 대한 지적 이해와 더불어 하나님, 믿음, 고난, 성화와 같은 분야에서 경험이 필요했다. 지식만으로는 앞에 놓인 험한 도전을 대비하기에 불충분하였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고 구체화시키느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그리스도인 특성을 계발시킴으로 효과적인 사명 성취를 갈망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4~5명을 제자로 삼아 가르친다.

 

 

 

A.

 

❷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왜 지적 훈련이 필요합니까?

 

※ 진리는 성경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깨달아야 하며 올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전파할 수 있으므로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

 

❸ 영적 지식과 경험이 모두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 중에 하나가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요?

 

※ 이 둘 중에 하나가 결핍하면 진리를 올바르고 균형 있게 전하지 못한다.

 

❹ 그대는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떤 제자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성경을 지식적으로 바르게 하는 교육훈련과 또 증거하고 생활하는 경험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❷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를 열두 명만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가장 합당하게 교육할 수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스라엘 12지파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❸ 예수님은 어떤 기준으로 열두 제자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까?

 

※ 겸손하고 순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택하셨다.

 

❹ 천국의 확장을 위해 예수님이 제자를 양성하신 원리를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 우리도 지적 교육과 생활로 보이는 경험적 훈련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결론: 우리가 언젠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남겨 두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업을 마치기 위해 우리는 누구를 훈련시켜야 합니까?

 

 

 

첫째날(일) 3월9일

 

지도력은 여기서 시작됨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비교적 짧았다. 그래서 제자 양육자들에 대한 훈련이 꼭 필요했다. 누구를 얼마나 많이 선발해야 했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수백 명을 헤아렸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집단 교육을 받아야 했을까? 예수님은 지도력이 강의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 안에서 효과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수업에는 소수만이 선발되었다.

 

 

 

1. 눅 6:12~1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기 전에 무엇을 하셨는가?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했는가?

 

[눅6:12~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답: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천국 사업을 맡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일치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성공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상당한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그러한 지혜를 얻기 위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셨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제자 양육에 있어서도 지도자를 선출하기에 앞서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 상당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믿으셨다면, 오늘날의 신자들은 대사명의 확장을 감독할 책임을 짊어질 자들을 선출할 때에 얼마나 더욱 거룩한 지혜를 위해 탄원해야 하겠는가?

 

예수님은 열두 명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사도 즉 영적 권위가 위임된 그분의 대표자로 임명하셨다. 다른 제자들은 그들의 임명을 질투나 부정적인 정서로 바라보지 않았다. 후에 예수님은 더 큰 규모의 70인 제자를 임명하셨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제자를 양성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12사도는 예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자로서의 신분을 소유함으로 큰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그래서 가장 강도 높은 훈련과 충성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은 초기 그리스도인 사이에 존재했던 조직적인 구조를 암시한다. 예수님은 맡겨진 임무에 적합한 역량과 지식을 갖춘 지도자들을 그러한 조직 내에 투입하셨다.

 

 

 

<부가설명> 단순히 학교에 가서 학생노릇 하는 것과 어떤 특정한 스승 밑에서 그의 사상과 인품과 학문을 세습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실 때 이렇게 될 제자들을 택하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철야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열둘을 택하시고 사도라는 이름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3단계로 제자를 부르셨다. 첫 단계는 요한복음 1장에 있다. 안드레와 또 한 사람이 예수께 왔을 때 와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첫 단계는 예수께 와보는 것이다. 둘째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마4:18~22) 셋째 단계로 사도로 임명하셨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명 자들이다. 오늘도 이 단계는 비슷하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교회는 지도자를 선택할 때 정말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 직원을 선출할 때 기도는 없고 교인 된 연수와 학벌과 재력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정신에서 멀리 떠난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여러 제자를 양성하셨다. 그중에 첫 열두 제자들은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큰 책임을 짊어지도록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둘째날(월) 3월10일

 

지식과 경험-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8, 13).

 

 

 

정보는 예수님의 기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요소이다. 정보만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모든 변화는 정보를 포함한다. 확실히 개념들은 변화를 일으킬 만한 내적 힘이 없다. 반면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회심에 필요한 대체 불가능한 요소이다.

 

 

 

1. 요 16:7~14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식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얼마나 제한적인가?

 

[요16:7~14]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답: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진리의 지식이 없이는 기별을 전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없이는 또 기별을 전할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함께하는 성경의 지식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조합을 이룬다. 이 둘을 위해서 제자를 양육하는 자는 믿음과 공부에 집중해야한다.

 

기독교는 지성과 사고,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성경 전체를 흐르는 논리 정연한 사상, 유대교 교사들에 대한 엄청난 존경심 그리고 서기관들이 고대의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쏟는 대단한 열정 등 이 모든 것은 지식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기독교는 비합리적인 신앙이 아니다. 물론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지식보다 정서나 감정 또는 경험을 더 높이 산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무엇을 믿느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험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순종과 특정 진리에 대한 고착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정서와 종교적 감흥은 영적 진실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그러나 성경 자체는 이것을 경험에 대한 맹신으로 간주한다. 지식이 배제된 경험은 방향이 불분명한 대형 미사일과 같다. 반대로 경험이 없는 지식은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때로 율법주의로 흐른다. 참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그들이 양육하는 제자들도 두 요소를 함께 길러야 할 필요성을 이해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얼마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다. 성경의 종교는 성경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을 강력하게 계시한다. 영적 성장이 필요한 것과 똑 같이 지적 성장도 필요한 것이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고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듭난 경험이 확실하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두 필수조건을 갖추는 제자들이 되어서 예수의 증인으로 형통하게 될 것이다.

 

 

 

교훈: 기독교 신앙은 상당한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는 단지 종교적 감성 이상의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날(화) 3월11일

 

지식과 경험-2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 6:49).

 

 

 

1. 눅 6:20~4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동시에 설명했는가? 여기서 두 요소는 어떻게 섞여 있는가? 우리 자신의 신앙뿐 아니라 제자 양육을 위해서도 두 요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눅6:20~49]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답: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는 것처럼 진리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어올 수 없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안 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지식이 인격이 되고 삶이 될 때에 지식과 인격과 생활이 어울려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영적 지식은 영적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교사로 간주되었다. 그분은 해변과 산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천연계를 경계로한 열린 교실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지식의 씨를 뿌리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수용하도록 무감각해진 양심을 일깨우셨다. 제자 양성은 경험 없이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경험은 반드시 지식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21세기 제자 양육자는 참된 영성 형성의 원천인 성경을 철저하게 숙지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인기나 편의성과 상관없이 교리와 교훈을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존의 신자들이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삶을 변화시키는 기독교의 아름다운 진리, 특히 세 천사의 기별에 담긴 현대 진리에 대해 무한히 확장되는 이해와 인식으로 새 신자들을 끈기 있게 인도하기를 바라신다.

 

제자 양육에 대한 문맥에서 봤을 때 예수님은 제자를 양성하기 원하는 자들이 무엇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가?(눅 6:39)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경고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결국 이타적인 사랑을 만드는 지식과 경험의 조합은 제자를 양육하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아는 것이 없으면 전해 줄 것이 없다. 알려면 배워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지속적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교육은 교실에서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생활현장에서 하셨다. 그분은 한 편으로 지식을 전하시고 한편으로는 친히 행하시는 일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과 경험을 동시에 배웠다. 오늘날 이런 교육은 어렵다. 교육이 제도화되어 있고 그것이 사회적 진출의 길목이기 때문에 우선 지식을 습득하는데 중점이 있다. 그래서 교실에서 배운 것이 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지식과 아울러 경험이 되어서 인격이 성경적으로 변해야 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과 생활로 전달되게 해야 하도록 되어 있다. 위에 인용한 성경구절들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고 결론을 지으신 것이다.(눅6:46~49)

 

 

 

교훈: 그리스도의 제자는 성령에 의해 일깨움을 받은 영적 지식 위에 신앙의 실질적인 경험을 더함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전해야 한다.

 

 

 

 

 

넷째날(수) 3월12일

 

초기의 지도자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습 2:3).

 

 

 

예수님이 지도자들을 선택하실 때, 미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뽑으셨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하다. 그분은 산헤드린 출신의 학식이 많거나 언변이 뛰어난 자들을 고르지 않으셨다. 위대한 일꾼께서는 세상을 움직일 진리를 선포할 자로서 스스로 의로운 교사들을 제쳐두고 미천하고 학식이 없는 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은 이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훈련하고 교육할 계획이셨다. 그러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교육시켜 복음 전파를 위해 파송해야 했다. “그들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였다.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의 지혜로써가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였다”(사도행적, 17).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교회를 인도할 자로서 자질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 대신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습 2:3, 마 11:29, 렘 50:31, 사 57:15)

 

[습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렘50:31]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사57:15]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답: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유함으로 순복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을 택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하여 잘못된 가정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고등교육을 받은 식자층을 반대하지 않으신다. 그분도 어려서부터 상당한 지식을 나타내셨다(눅 2:46~47). 단지 최고 학력과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종종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겸손한 도구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 주님은 그러한 자들을 사용하셨다(니고데모,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행 6:7 참고).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성령의 지도에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부가설명> 교회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세상에서도 인정받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식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것이 아니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선생이었다. 그가 예수의 제자였고 공회회원인 아리미데 요셉도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 그뿐 아니라 정작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사울이라는 유식한 사람을 부르셔서 바울사도가 되게 하셨다. 복음을 전하는데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교만하게 만든다면 그런 사람은 예수께 합당하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께 복종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후10:5) 이런 경험 없이는 그의 지식이 복음을 바르게 깨닫고 증거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교훈: 예수님은 비록 교육 수준이 낮다 할지라도 겸손하게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다섯째날(목) 3월13일

 

예수님이 남기신 것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2).

 

 

 

미래 세대는 이전 세대의 노력이 성공했는지 증명한다. 그래서 어떤 노력이 지속적인 결과물을 양산한다면, 그런 성취의 바탕에 있는 원칙을 연구해서 모방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 양성 방법은 그와 같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는가?

 

 

 

당연하다. 그분의 방법은 세상을 바꿨다. 만약 예수님이 초기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셨더라면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 교과책을 읽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 행 1장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의 형성을 다루는 이 성경장은 하나님이 임명한 지도자들의 필요성에 대해서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들은 지도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였는가?(22절)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야 하는 우리는 이 필요성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1:12~26]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답: 제자들은 가룟 유다의 자리를 채워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은 요한의 침례로부터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어야 하였다. 즉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교훈 훈련에 참가한 사람이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교회의 일꾼을 선택하는데 깊이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 나라를 영속적으로 성장시킬 원리들을 예로 보여주셨다.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그분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연약함을 가린 지도자들을 선택하셨다. 비록 학문적 결핍의 이유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경멸을 받았지만, 투명함, 겸손, 의존성 그리고 진실성을 중요시 여기는 곳에서는 그들이 바리새인들보다 뛰어났다. 교회에서 우리의 직위가 무엇이든지 우리도 그와 같은 특성을 나타내야 한다. 한편 시간이 흘러 상당한 정규 교육을 받고 상류 사회의 신분을 가진 자들도 점점 교회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사도들은 세상에 결정적인 감명을 끼쳐야 하였다. 그들이 과거에 비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로 그들의 감화가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될 것인데 이는 그 말을 듣는 이들의 마음이, 그들에게서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그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구주에게로 인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도들의 경이로운 가르침, 용기와 신념의 말씀 등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이 그들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한 것임을 확신시켜 줄 것이었다”(사도행적, 22~23).

 

 

 

<부가설명> 교회의 지도자들은 철저히 성경적인 사상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세상의 높은 학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것은 성경 사상으로 여과되어야 한다. 성경진리가 세상 학문에 여과되어서는 안 된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유대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열두 사도는 모두 유대인이었는데, 그들에게 예수의 진리를 배워서 진리를 이은 선생된 사람들은 다 헬라인, 로마인들이었다. 속사도 교부들이나 그들을 이은 교부들 중에 유대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서 그들이 배운 헬라 철학을 성경해석에 도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경진리는 조금씩 불순물과 섞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도한 최초의 교부가 저스틴 말터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65년경에 순교한 사람인데, 그는 탁원한 신 플라톤 철학자였다. 신플라톤주의는 영혼불멸을 깊이 신봉하였다. 그런 학자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변증가가 되면서 교회는 영혼불멸설을 받아들였고, 또 일요 주일설을 받아들였다. 철저하게 성경적이지 않을 때 생기는 불행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경사상에 자기를 굴복시켜야 한다. 그래서 성경적 진리의 전파자가 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순수한 믿음으로 영적 능력을 부여받고 연약한 인간성을 극복한 제자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함으로 천국을 확장시키는 원리를 남기셨다.

 

 

 

 

 

여섯째날(금) 3월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349~358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 488~496 “갈릴리로부터의 마지막 여행”, 298~314 “산상수훈”, <사도행적>, 17~24 “열두 제자의 훈련”, 25~34 “대사명”, 87~96 “일곱 집사”를 읽어 보라.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모든 지방에는 저들의 필요를 깨닫고 진리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갈급한 심령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소식을 보낼 시기가 이르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나갈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자들은 제자들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교사로서 우러러보게 될 것이므로 구주께서 그들을 떠나시게 된다고 하여도 신자들이 교사가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 최초의 전도 여행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미 그들보다 앞서 가셔서 친구들을 사귀어 놓으신 곳에만 갈 것이었다. 그들의 여장( 旅裝)은 가장 단순하게 차릴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그 큰 사업에서 돌이키게 하거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대를 일으켜서 더 큰 활동의 문호를 막아 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35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교과반에서 다음의 질문을 가지고 토의해 보십시오. 그대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어떤 것을 바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대가 그들에게서 보기 원하는 것들 가운데 상위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서로의 답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사실을 배워야 합니까?

 

※ 서로 토의해보기 바란다. 오늘 교과가 제시한 원리들을 생각하면서 각 반생이 예수의 제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➋ 신앙생활에서 경험과 지식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좀 더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마다 균형의 무게 중심이 다를 수 있을까요? 즉 어떤 사람은 지식보다 경험을 좀 더 강조하고, 다른 사람은 경험보다는 지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차이점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사람들의 상태를 따라서 선호하는 경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말하는 태도나 전달하는 내용을 볼 때 그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