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9일 수요일

 

경성(京城) 대전도회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롬 10:18).

 

1931년 5월호「교회지남」은 3월 11일부터 20일까지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열렸던 원동지회 평의원회(현 행정위원회)가 조선합회를 위하여 결의한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회장 그릭스(F. Griggs) 목사가 경성에서 대전도회를 인도하도록 하고 예산까지 지원키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전도회는 조선합회 제7회 총회가 “절대의 환호 가운데” 합의하여 지회에 요청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성 대전도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전도회 기간이 9월 20일부터 10월 29일까지 무려 6주일이나 되었습니다. 매주 5일씩 저녁마다 집회가 있었습니다. 전도회 장소는 시의 중심 건물 중의 하나인 유명한「경성공회당」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아일보를 비롯하여 주요 일간지에 전도회 광고도 크게 실었습니다. 따라서 이 특별한 전도회에 대한 소식이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퍼졌습니다.

1931년 10월호「교회지남」은 “이와 같이 조선의 대도시 경성에서 큰 장소를 얻어 가지고 전도회를 하기는 조선 종교계에 있어서 처음 되는 일인 만큼 각 교파와 사회에서는 경이의 눈으로 우리의 일을 주목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영린 목사 역시 「한국 재림교회사 연구」에서 이 전도회를 “해방 전 한국 선교회부 사업 중 가장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도회에 매번 400명에서 700명까지 모였으며, 그 중에는 의료계, 교육계, 상공계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계속 참석하는 자들을 위하여 한 주일이 지난 뒤부터는 전도회를 시작하기 전에 이시화(C.W.Lee) 목사가 성경 공부를 따로 시켰습니다.

이 전도회 기간 동안 모든 신학과 학생들과 많은 신자들이 조직적으로 지역을 나누어 경성 시내를 누비면서 홍보하고 또 전도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전도회가 끝난 뒤에도 청진동교회(현 서울 중앙교회)를 비롯하여 10여 곳에서 성경연구 모임을 열어 구도자에 대한 후속 수습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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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부터 1936년까지 원동지회장을 역임한 프레드릭 그릭스 목사>


우리 재림교회는 전도하는데 정말 비상하게 노력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귀중한 속성은 앞으로도 더욱 불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전도, 영혼구원이야말로 우리 재림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또한 우리 재림교회의 살 길입니다. 우리 모두 선교의 역군이 되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