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0일 목요일

 

경기 불황의 거센 파도를 타고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34:19).

 

우리나라 역시 1929년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된 경기 불황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야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재림교회도 재정적인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33년 2월 3일부터 11일까지 서울의 회기리(본부)교회에서 개최된 조선합회 제8회 총회에서 서기 겸 회계인 길리수(I.E.Gillis) 목사는 1931년과 1932에 예산 축소로 불가불 사역자봉급을 삭감해야 했던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총회로부터 지원 받는 허급액이 줄어들어 1930년의 경우 예산을 6%, 1931년의 경우 10-18% 적게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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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연합회 총회 기념,1933. 2. 3 - 10>

게다가 장기적인 불황으로 인해 1933년 5월 중순에 열린 조선합회 평의원회에서는 급기야 3선 대회의 회계와 각부를 통합하기로 결의해야 했습니다. 또한「교회지남」1933년 8월호에 의하면 1933년 6월 하순에 있었던 원동지회 평의원회에서 “우리 교회의 모든 기관에서는 ... 우세(郵稅)와 등사비와 전신료와 여비와 및 다른 경비들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절약하도록 연구하기를 청하기로” 결의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황 기간 동안 오히려 선교사업이 놀랍게도 더욱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1931년, 1932년 두 해 동안 수침자 수는 전 회기보다 201명이 늘어난 797명이었습니다. 합회장 오벽(H.A.Oberg) 목사는「교회지남」1933년 조선합회 제8회 총회 특집호에서 “이와 같이 많은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기는 조선에서 처음 되는 일이니 우리가 주의 사명을 받아 수고한 열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교인 수 역시 2,806명으로 증가했고, 안식일학교 학생 수 또한 전 회기보다 1,491명이 많은 7,374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십일조의 경우도 모든 대회에서 증가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1933년 들어서면서 십일조는 더욱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1934년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서울에서 열린 원동지회 평의원회와 조선합회 평의원회에서는 보다 효율적으로 선교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전국을 5개 대회(중선, 북선, 영남, 호남, 서선) 체제로 재개편키로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한국 재림교회는 “이 거센 풍랑 까닭에 더 빨리 갑니다.”라는 찬미가 458장의 가사처럼 불황의 거센 파도를 이용하여 영적 성숙과 교회 부흥이라는 결실을 거두며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갔던 것입니다.

 주님, 이 세상에 거하고 있다 보니 곤란한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려워 말고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