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로 건나와서

2009년 7월 13일 월요일 - 체코우스키를 따르던 자들이 발견한 <리뷰>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16:9


바울이 꿈에 본 마케도니아인의 부름은 재림교회 역사상 수 없이 반복되었다. 체코우스키의 유럽 전도의 경우도 그랬다.


유럽의 재림교회 진출을 위해 그토록 공로가 큰 특이한 사람은 자기가 얻은 개심자들에게 북미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가 가르치는 것들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면 그는성경에서라고 간단히 대답하곤 하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 세상에서 그들이 믿는 것처럼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무지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드디어 알베르 비으메(Albert Vuilleumier)라는 스위스 신자가 체코우스키가 다녀간 후 그가 묵었던 방에서 <리뷰 앤드 헤럴드> 잡지 한 부를 발견했던 것이다. 비으메의 영어는 완전치 못하였지만 미국에 체코우스키가 가르치는 것과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볼 정도의 실력은 되었다.


그 발견으로 인해 <리뷰>의 편집인 유라이어 스미스 앞으로 편지 한 장이 날아들었다. 놀란 배틀크릭의 지도자들은 스위스의 신자들에게 1869년 대총회에 대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발송하였다. 그래서 제임스 에르츠베르거(Erzberger)가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에르츠베르거는 새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스위스의 안식일 준수자들을 만났을 때,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들이 믿는 것이 옳은지를 검토해본 후 그는 즉시 확신하였다.


에르츠베르거는 너무 늦게 배틀크릭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대총회 모임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15개월 동안 머물면서 주로 화잇 부부의 집에 신세를 졌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영어를 익히고 재림교회의 메시지를 더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유럽 최초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안수 목사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갔다.


한편, 체코우스키는 스위스 신자들이 미국 교회와 직결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즉시 루마니아로 가서 그 나라 최초의 안식일 준수 그룹을 일으켰다.


스위스의 이 경험은 다른 두 가지의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첫째는 미국의 재림신도들 사이에 선교에 대한 논의를 고조시킨 것이고, 둘째는 유럽으로 선교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호소가 꾸준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마케도니아의 부름은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그 부름에 응할 사람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구주께서는 한 영혼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아니하신다. 예수께서 유다를 취급하신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패역한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기록됐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이 참으신 것처럼 참으라고 부탁하신다. 그분은 세상 끝 날까지 거짓 형제들이 교회 안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C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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