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주의가 갈 길인가?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회중주의가 갈 길인가?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행 16:4

초기의 기독교회는, 어떤 문제들은 여러 지방 교회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큰 협동체로부터 결정이 하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총회는 장로들과 사도들이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어떻게 원만한 협력 관계를 가질 수 있을지를 결정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 회합은 지역 회중들의 집합체를 위해 결정을 내렸다.
초기의 재림신자들도 그들이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각 지역 회중들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1850년대 전반기가 안식일 준수자들의 지역 회중 조직과 직책이 설정된 때라면, 그 후반기는 각 회중 간 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힘쓴 시기였다.
최소한 네 가지 문제들이 제임스 화잇 등의 지도자들에게 교회 조직을 보다 광범위하게 보도록 압박을 가하였다. 첫째는 재산인데, 구체적으로 출판소와 교회 건물의 법적 소유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은 출판소를 자기 이름으로 소유하는 책임이었다.
그의 마음을 번거롭게 만든 두 번째 문제는 목사들에게 급료를 지불하는 사안이었다. 이것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안식일 준수 목사들은 당시 어떤 정해진 지역 회중을 섬기지 않고 순회 목사처럼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는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림신도들은 십일금을 다루는 절차나 사역자에게 지불할 돈을 수집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으므로 목사들을 부양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았다.
화잇 부부로 하여금 보다 광범위한 교회 조직 형태를 고려하도록 압박한 세 번째 문제는 목사들을 배치하는 일이었다. 1859년에 화잇이 쓴 글에 의하면, 배틀크릭 같은 곳에는 목사가 여럿 있었으나, 그와 반대로 다른 곳들은 “석 달이 가도록 설교를 한 번도 못 들어 피폐한” 상태였다. 누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1859년에 이르러 화잇은 목사의 배치와 급료 지불을 책임진 감독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을 받들어줄 어떠한 공식적인 조직도 없었다. 그런 체제 때문에 그는 관리 부실과 자금 유용을 탓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네 번째 문제는 회중과 회중 간에 교적을 옮기는 문제였다. 특히, 한 교인이 어떤 회중으로부터 제적을 당하고 다른 회중에 가담하기를 원할 때의 문제가 그 한 예였다.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진하기 위하여는 제도와 질서가 필요하였다. 교회들은 아직도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모든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청년들의 마음을 영감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에 붙들어 매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세나 내세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교육이다(COL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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