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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수요일 - 의에 기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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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97:2)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을 취급하실 때 죄를 있는 그대로, 즉 죄의 분명한 결과는 참혹과 죽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심으로 의의 원칙을 유지하십니다. 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용서는 하나님 정부의 기초인 의()라는 원칙의 포기를 뜻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우주는 그 같은 용서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를 꾸준히 지적해 오셨는데 만일 그 경고들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공의를 무시하는 명목상의 자비란 진정한 자비가 아니라 우유부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태초부터 생명은 모든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했고 그리하여 불화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죄악이 존속하는 한 고통과 사망은 불가피합니다. 다만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의 저주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인류는 자신에게 닥쳐올 죄악의 무서운 결과에서 벗어날 희망을 찾았습니다(부조, 522).

우리는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의로 여기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가장 경이롭고 귀중한 진리의 광맥이 펼쳐져 있고, 교회와 세상 앞에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은혜가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니 얼마나 경이롭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입니까! 율법의 엄한 요구들을 알면서도 그보다 더욱 넘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1기별, 155~156)

우리에게는 압제받는 모든 자를 건져 주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의는 그분의 보좌가 자리하는 거처입니다(5증언,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