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딸의 꿈… 아프리카서 희망으로 피어나다

  • 이옥진 기자


  • 조선일보 2015년 4월 22일 기사

    입력 : 2015.04.22 03:00 | 수정 : 2015.04.22 08:59

    [케냐에 학교 지은 류태희·전연희 부부]

    生前 딸의 '아프리카 봉사' 꿈 위해 300명 공부할 '류지선 스쿨' 세워
    고구마 재배 등 自給自足 농장도 "딸 잃은 절망, 희망으로 바뀌어"

    
	故 류지선양 사진
    故 류지선양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목사 류태희(58)씨는 3년째 해마다 아프리카 케냐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지난달에는 아흐레 동안 케냐에 머물면서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봤다고 했다. 왜 그렇게 행복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우리 딸 지선이를 더는 볼 수 없지만, '류지선 스쿨' 아이들을 보니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다." '류지선 스쿨'은 류씨가 딸 이름을 따 지은, 지난달 케냐 오시노니 지역에 문을 연 중·고등학교다.

    그 전까지 류씨에게 케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갈 생각조차 한 적 없던 이국(異國)이자 오지였다. 하지만 2011년 8월 19일, 류씨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서 케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날, 류씨는 막내딸 지선(당시 19세)양을 잃었다. 대학 간호학과 1학년이던 지선양은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수련원을 찾았다가 산비탈에서 마주 오던 차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류씨는 병원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싸늘하게 식은 딸을 안고 오열했다. 숨이 끊어진 채 누워 있는 딸을 본 순간 세상이 무너졌다고 했다.

    딸을 잃은 후 류씨와 아내 전연희(50)씨의 삶은 절망이었다. 그리고 반년이 흘러 아버지는 우연히 딸이 남기고 간 일기장을 보게 됐다. 일기장 곳곳에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고 써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은 딸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교통사고로 먼저 간 딸이 소망했던 ‘아프리카 봉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케냐에 직접 학교를 지어 문을 연 류태희·전연희 부부 사진
    교통사고로 먼저 간 딸이 소망했던 ‘아프리카 봉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케냐에 직접 학교를 지어 문을 연 류태희·전연희 부부. /이태경 기자

    류씨는 2012년 3월 수소문 끝에 아프리카에서 학교와 병원 등을 지어주는 민간단체를 알게 됐다. 딸의 사망보험금 2억2000만원에, 류씨 부녀의 사연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보내준 후원금 8000만원을 얹은 3억원을 쥐고 그는 케냐까지 오가며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완공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지난달 학교 문을 열면서 '류지선 스쿨'이라고 이름 붙였다.

    '류지선 스쿨'은 3층 콘크리트 건물로 교실 8개에 300명의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크기다. 학생들이 케일, 고구마 같은 채소를 재배하고 소도 키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농장 13만㎡(약 4만평)도 마련했다. 현지에서 교사 6명을 뽑았고,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그만둔 아이들을 모집했다. 정식 학기는 5월에 시작하지만, 도움이 급한 아이 23명을 지난달 우선 입학시켰다. 류씨는 이들과 함께한 개교식에서 "열심히 공부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지난달 개교한 ‘류지선 스쿨’의 신입생과 교사들 사진
    지난달 개교한 ‘류지선 스쿨’의 신입생과 교사들. /류태희씨 제공

    류씨 부부는 앞으로도 평생 '류지선 스쿨'을 돌보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지선양 또래의 여학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린다는 류씨는 매일 '류지선 스쿨'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아내 전씨는 "요즘도 딸이 그리워 매일 울곤 하지만, 아프리카에 뿌린 희망의 씨앗으로 대신하려 한다"고 말했다. 류씨는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말 그대로 단장(斷腸)의 아픔"이라며 하늘의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내 딸 지선아. 너의 착한 꿈을 아빠·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이룰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류지선 스쿨'은 다음 달 학생 100명을 추가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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