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근 암병원 원장/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암 환자는 집에서 가족과 지내면서 통원 치료받는 게 결과도 훨씬 좋습니다."

서울성모병원의 전후근(全厚根·65) 암병원 원장은 "암 환자분들, 가급적 입원말고 항암제 치료받으세요"라고 했다. 전 원장은 국제 암 학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암 전문가다. 미 국립암센터 등 미국의 병원 현장에서 30여년간 일하다 작년 말 성모병원에 스카우트된 전 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와보니 불필요한 입원이 너무 많아 놀랐다"며 한국 병원의 암치료 시스템의 혁신을 촉구했다.

"미국에선 항암 치료의 90%는 입원시키지 않고 외래에서 합니다"

미국은 입원비가 비싸기 때문 아니냐고 묻자 전 원장은 "그것보다 환자 편의와 치료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서죠"라고 잘라 말했다. 환자가 병원에 갇혀 있으면 우울해지고 병세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꼭 낫겠다는 의지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병원들은 한달에 한번 암 환자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게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이때 암 환자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암 치료가 무서운 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서 가족들과 떨어지고,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느낌이 가장 두렵다고 그래요."

전 원장은 암 환자가 집에서 가족과 지내며 치료받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치료결과가 더 좋다고 전했다. 요즘에는 구토·설사 같은 항암제 부작용이 적은 약물도 많이 개발되어 나오고, 부작용을 진정시키는 약물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항암제 치료를 굳이 입원해서 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불필요한 입원 치료로 인한 의료비 상승 등 사회적인 부담도 크다고 했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 한명이 생업을 포기하고 같이 '입원'하는데 이렇게 고생시켜서야 되겠습니까. 그로 인한 2차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정작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현실은 어떻고요."

암이라고 진단을 받으면 대개 '내가 왜?'(분노)→'설마'(의심)→재차 확인 후 우울증→현실 수용의 과정을 거친다. 전 원장은 "환자가 이 과정을 빨리 극복해서 희망을 갖도록 가족과 주변에서 도와줘야 치료결과가 좋아진다"며 "이를 위해 병원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정보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암 환자가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암 발생도 늘고, 한편으론 암 생존자도 늘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암 생존자들이 뭉쳐서 단체를 만드는 활동이 활발합니다. 이들이 환자들에게 암 극복 요령도 알려주고, 최신 치료법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늘리기 캠페인도 벌이고, 정부에는 지원을 확대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암은 의사와 환자가 같이 손 잡고 싸워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활동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한국 병원들은 왜 항암제 환자를 입원시키려 할까.

"예전 방식을 따르는 관행이라고 봐요. 치료시설이나 장비가 입원 환자 위주로 되어 있고, 의사들도 입원시켜 치료하면 더 편하니까요. 또 항암제 부작용을 떨어뜨리는 약물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잘 안 해주니까 그런 약물을 적게 쓰게 되고 그래서 증세가 악화되어 입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민간 암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보험 약관상 입원해야 보험금이 나오기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으려는 경향도 있다. "이것도 고쳐야 돼요. 왜 똑같은 치료를 하는데 입원하면 돈을 주고 외래에서 하면 돈을 안 줍니까."

그는 미국 병원은 외래에서 할 수 있는 검사나 치료를 입원해서 하면 보험회사들이 진료비를 병원에 주지 않는다고 했다. 외래 치료를 권장하기 위함이다.

"한국은 도리어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내는 돈이 적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입원을 권장하는 셈이죠. 외래 치료를 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빨리 도입하고, 외래 위주 치료 시스템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작년 말 뉴욕의대 종양내과 교수였던 전 원장을 영입한 서울성모병원은 전 원장의 충고에 따라 암 환자가 입원하지 않고 항암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외래에 60개의 치료 병상을 배치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외래 항암 치료실이다. 전 원장은 한국에서 의사 면허를 딴 후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내 암 치료 분야 1~2위를 다투는 뉴욕의 슬로언 케터링암센터, 전 세계 암 연구를 이끄는 미(美) 국립암센터 등을 거쳤다.

"암 환자들이 외과에 가면 수술하라고 하고, 종양내과에 가면 항암제 맞으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합니다. 이건 의사들이 모여 최상의 것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인데, 자기 방식의 것이 제일 좋다고 고집하기 때문이죠. 의료진끼리 의견이 엇갈리면 투표라도 해서 환자에게 맞는 최상의 것을 결정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전 원장은 일주일에 두번 이상 외과·내과·방사선종양학과·병리과·영상의학과 전문의 등 암 진료와 관련된 의사들을 모이게 해 환자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토론회를 연다. 일부 외과나 산부인과에서 위암·유방암·자궁암 수술도 하고 항암제 치료도 하는 관행도 그는 없앴다.

"내과 의사가 암 수술을 하면 인정하겠습니까. 마찬가지죠. 항암제는 항암제 전문가인 종양내과 의사가 전담하고, 수술은 외과 의사가 해야죠."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