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에게 물어 보면, 불이란 생물이라고 말할 것이다.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살아있는 엔진이라고 말이다.
불꽃마다 성격도 제각각 다르다.
산불 하나에도 절대 잊지 못할 특유의 소리와 냄새라는 것이 있다.
불타는 잡목림과 불길을 머금은 바람이 제트기 엔진처럼 포효하는 소리, 바짝 타들어간 땅에서 나는 맵고 아린 냄새,
불길에 갇힌 채 연기에 중독되어 빠져나갈 길을 찾아 헤매는 소방관들... 내가 익히 아는 세계다.

18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한 나는 대형 화재를 상대해 본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지난 10월 캘리포니아 주 라구나 힐즈에 있는 우리 소방서가 호출을 받았을 때에도,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 환상 같은 건 없었다.
오렌지카운티 역사상 가장 큰 화재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소방차에 올라 탈 때마다 늘 하던 기도를 되뇌었다.
우리 [22호 소방차] 대원들이 안전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산 위로 높이 치솟는 연기와 불꽃의 장벽을 향해 우리는 질주해 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벨트에 달린 신발 상자만한 통을 쓰다듬었다.
안에는 긴급 화재 은신처가 들어 있었다.
1인용 방화 텐트로서, 에폭시 수지 섬유유리로 안감을 댄 것이다.
잡목림에서 일하는 소방관이라면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엄청난 불길에 갇혀 더 이상 탈출할 가망이 없을 때 사용하는 최후 수단이다.
사용할 일이 없기를 기도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처음 멈추어 선 곳은 어바인시 근방의 주택 지구였다.
우리는 주택가가 불길에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장 스물 세 시간에 걸쳐
다른 비상 소대들과 함께 진화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풍향이 바뀌었다.
"산티아고 협곡로로 이동!"
산불진압 팀 책임자가 이렇게 명령했다.
"불길이 그 길 건너로 번지지 못 하게 하라!"
우리는 재빨리 그곳에 도착했다. 그에 대한 내 반응은 오직 한 가지, 공포 뿐이었다.
산티아고 협곡로는 오크나무, 유칼리나무, 그리고 2미터에 이르는 토착 수풀과 잡목으로 덥힌
가파른 협곡을 따라 지그재그로 뻗어 있었다.
가뭄 때문에 모든 것이 그야말로 땔감처럼 되어 버렸다.

시속 80km의 바람이 대기를 채찍질 하고 있었다.
길 한 쪽으로는 커다란 파도처럼 높디높은 화염이 산을 휩쓸고 있었고,
바람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불길이 길을 덮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 있는 9미터짜리 유칼리나무가 불길에 휩싸였다.
마치 지옥 그 자체가 지면을 뚫고 솟아오르는 듯했다.

길 반대편을 내려다보았다. 몇 킬로 안 되는 거리에 실버라도 캐년, 윌리엄스 캐년과
모제스카 캐년이라는 아담한 시골 마을 셋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지역에는 많은 가구가 살고 있었다. 내 아내 베키와 우리 세 자녀들을 비롯해서 말이다.
화염으로부터 불어오는 타들어 갈 듯한 바람을 맞고 있으면서도, 소름이 내 속을 훑고 지나갔다.
"불이 길 건너로 번져 버리면 마을들이 소실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무전기에서 화재진압 팀 책임자의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나는 우리 22호 소방차 대원들을 응시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가 정말 이 불길을 제압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최악의 조건이었다. 내가 우리 대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풍향이 바뀌더니, 불꽃이 이글이글 핀 재들이 길 건너로 떨어졌다.
그 중 하나에 불이 붙어 커지기 시작했다.
"호스를 들고 따라간다!" 내가 소리쳤다.
다른 대장들도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과 댜른 팀에서 온 여덟명의 소방관이, 불길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며
호스를 가지고 전속력으로 산을 올랐다. 하지만 바람이 불길을 자꾸 앞으로 몰아가는 통에 불길을 놓쳐 버렸다.
"계속 전진!" 내가 소리쳤다.
정신없이 밀고나가던 대원들은 드디어 거리를 몇 미터로 좁혔고,
이제 물을 뿌릴 준비가 되었다. 물이 노즐쪽으로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호스가 터져 버렸다. 아마도 바위에 파열된 것 같았다.
불길이 다시 앞으로 훌쩍 달아났다. 내가 소리쳤다. "다른 호스를 가져와!"
대원들은 산에서 달려 내려가, 소방차 물탱크에 새 호스를 꽃은 후 다시 산 위로 끌고 왔다.
무덥고 지치는 일이었다. "물 틀어."

내가 소방차에 있는 기술 대원에게 무전을 쳤다.
뜨거운 잿불 하나가 로켓처럼 날아와 호스 위에 곧바로 떨어지면서 또다시 파열돼 버렸다.
물이 땅 위로 콸콸 뿜어져 나왔다. 장비가 거의 동났다. 화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이 치솟았고,
불길은 점점 더 커지며 우리 눈앞에서 번져 나갔다.
이제는 철수해야 했다.
무전기가 지지직거렸다. 화재진압 팀 책임자였다. 그가 우리에게 경고했다.
"자네 아래쪽으로도 불길이 있는데 커지고 있어. 우리로서도 진압이 불가능하다네.
대원들을 소실지대로 이동시키게. 흑색 지대로 들어가."
우리는 갇혀버렸다. 소방차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산 위로 전진해 '흑색 지대'로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이미 모조리 타버려서 더 이상 탈 것이 남지 않은 지역 말이다.
이론상으로는 그곳이 안전 지대였다. 그러나 엄청난 열기의 강풍 속에서 안전이란 없었다.
산 위에 있는 네 명의 대장 중 가장 선임인 내가 명령했다.
"흑색 지대로 진입하라!"
흑색 지대는 두 번째 산봉우리 꼭대기에 있었다. 아직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30평 정도의 폐허 지역이 있었다.
뜨거운 불쏘시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땅 위로 솟은 곳이라고는 새까만 숯이 된 그루터기 몇 개뿐이었다.
나는 산 밑에 있는 화재진압 팀 책임자에게 무전을 쳤다.
"흑색 지대에 진입했습니다."
무전기는 계속 켜두었다. 화재진압 책임자가 우리 상황을 중앙 지시 본부에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헬기를 보내줄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소방대 헬기는 몇 탱크의 물을 싣고 공중에서 산불을 진압한다.
"대원들이 갇혀 버렸습니다."
지직대는 가운데 음성이 들렸다. "불가, 공중 지원이 불가능하다."
놀랄 것도 없었다. 100만 평도 넘는 지역에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장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맹렬한 기세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협곡을 비행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불길은 우리가 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뿐이었다.
"22호 현재 상황은?" 화재진압팀 책임자가 무전기로 말했다.
다른 소방 대장이 수신기를 들었다. "지대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은신처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의 말이었다.
이는 소방관으로서 보낼 수 있는 가장 오싹한 메시지였다. SOS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말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청천벽력 같은 공포가 끼쳐왔다. 언제나 든든한 지원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추가 인력이며 장비들도 있었다. 몇 톤에 달하는 물을 뿌려서 우리처럼 갇혀버린 소방관들에게
비상퇴로를 마련해 주는 헬기도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격렬하기 짝이 없는 바람에 불길을 좌우로 번지게 하며 불어댔다.

"각자의 은신처로 들어가라!" 대원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는 우리 지역 역사상 전례 없는 명령이었다.
"각자의 은신처로 들어가라!" 내가 다시 반복했다.
대원들이 각자 텐트를 펼쳐 안으로 기어들어 갔고, 나도 그렇게 했다.
나는 무전기에서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중앙 지시 본부장은 우리 상황을 알고 있었다.
지원은 없었다. 내가 무전기로 이야기했다.
"은신처를 설치했습니다. 모든 대원이 들어갔습니다." 나는 바닥에 길게 누워 억지로라도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우리가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대한 산불의 광포로부터 우리를 완벽히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른 주 소방관들은 은신처가 불길에 싸여 순직하기도 하고,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 베키와 우리 아이들인 한나, 들러니, 그리고 헤이든 생각이 났다.
내가 내렸던 결정도 떠올랐다. 나는 우리가 남을 돕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소방관이 되려고 영업 관련의 좋은 직장도 버렸다.
내게는 소방관이 된다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높은 소명이었던 것이다.
사방으로 탁탁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소리가 들렸다.
텐트 아래쪽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양손으로 내벽을 붙잡았다.
열기가 심해지더니, 마치 오븐이 된 듯 참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내 텐트는 말 그대로 오븐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기도했다.
"주님,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믿을 뿐이었다.
바로 그 때 평안이 나를 덮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내가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평안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손 안에 있는 나는 언제나 안전할 것이었다.

몇 분이 흘렀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팔 안에 파묻어 보호하려 했다.
다시 한 번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불길이 나를 삼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무전기가 다시 살아 지지직거렸다.
"공중 지원 출동."
화재진압 팀 책임자가 말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정말일까? 열심히 귀를 기울여 보니 바람이 좀 잦아들었다.
이제 헬기가 떠도 안전할까?
'두두두두...'
헬기가 접근하는 소리였다. 그러더니 쉭 하고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산허리로 몇 톤이나 되는 물이 쏟아져 내렸고, 대기는 침묵에 빠졌다.
불길이 사납게 울부짖던 곳에서는 치익치익 하며 수증기 소리만 났다.
아래에서 휴대용 사슬톱 켜는 소리가 들렸다. 소방대원들이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길을 내며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몇 분 더 기다린 후에 은신처 밖을 빠끔이 내다 보았다. 산 아래로 통로가 깎여 있었다.
우리의 탈출을 막던 화염은 모두 사라졌다. 대원들이 하나 둘 은신처에서 빠져 나왔다.
모두들 무사했다. 아무도 부상 당하지 않았다.

대원들과 나는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무사했다. 모두 무사했다. 아무도 부상 당하지 않았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기뻐하면서 집에 전화해, 그저 베키와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직도 불길을 맹렬했으며, 바람도 다시 불기 시작했다.
할 일이 아직 남았다. 화염과 싸우는 우리 대원들과, 다른 천여 명의 소방관들에게는 말이다.

산티아고 산불은 그 후로도 3주 동안 계속되어 3천 4백만여 평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앞에 놓인 싸움에 맞설 새로운 믿음을 얻었다. 우리는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화염보다도 엄청난 힘이, 바람의 배후에 숨은 그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며,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Mitch Kahn, San Clemente, California, 가이트포스트 1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