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 오래전부터 육식을 금지한 불교가 존재해 왔다면
19세기 말 미국에서 탄생한 안식일교의 등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청량리의 위생병원과 삼육대학교, 삼육두유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종교입니다. 여러 해 전, 한국에 엔돌핀 돌풍을 몰고 왔던 이모 박사는
안식일교인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고기 위주의 식생활이 위험하다는 것과
채식만으로도 충분한 영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인들이 아침식사대용으로 먹는 콘플레이크는 안식일교인이었던 켈로그에 의해
우연히 발명되었습니다. 존 켈로그 박사는 미국 미시간 주에 요양원을 지어놓고
건강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1894년 어느 날, 요양원에서는
어쩌다 빵 굽는 시간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리사는 ‘지친 반죽’을 작은 조각으로 자른 뒤,
그것을 먹기 좋게 기름에 튀겨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과자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요양원을 나간 사람들까지도
주문을 해서 먹을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켈로그 회사의 콘플레이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옥수수 반죽이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콩을 비롯한 여러 곡물과 견과류가 재료에 포함됩니다.
켈로그 요양원의 고객 중에는 나중에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 자동차의 왕 헨리포드,
석유재벌 록펠러 등 당대의 쟁쟁한 인물들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미국에서의 콩 재배시작은 두 지역에서 각각 진행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일했던 사무엘 오웬이 조지아주에 콩을 심었고,
또 하나는 초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 외교가였던 벤자민 플랭클린이
영국에서 콩씨를 그의 고향 필라델피아로 보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콩은 동물의 사료로 쓰였지만 나중에는
채식을 했던 안식일교인들에 의해 점차 식용화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헨리포드가 안식일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영향은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헨리포드의 고향이 바로 켈로그 요양원이 있던 미시간 주에 있었고,
또 그 또한 요양원의 고객이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헨리포드는 두 차례나 세계박람회에 콩으로만 만든 식품을 선보였습니다.
안식일교인들에 의해 발전하기 시작한 서구의 콩 이용은 우리의 콩 이용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콩을 발표시킨 장을 주로 먹는다면,
서구에서는 콩 단백질이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콩 단백질은 고기의 맛과 질감을 살린 콩고기로 가공되어
콩 햄이나 콩 소시지 등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요즘은 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해, 혹은 다양한 메뉴를 선택하기 위해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채식뷔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채식뷔페의 모든 음식은 식물성으로 채워져 있지만
요리법의 발달로 단백질뿐만 아니라 모든 영양을 고루 섭취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채식주의자들이 성인병도 적고 대체로 더 건강하다는 것은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한국의 채식주의자는 1%, 세계의 채식주의자는 5%라고 하는데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모든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계란과 우유는 먹는 사람, 생선은 먹는 사람, 물론 모든 육식을 금지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채식의 중심엔 언제나 콩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효율적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숨 쉬는 이 땅의 생태계 보호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서라도 육식은 절제되어야만 합니다.
1에이커의 땅에서 콩을 생산하면 한 사람이 2,224일 먹을 수 있지만,
쇠고기로는 77일밖에 먹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채식이 좋다고는 하지만 한 번 맛들인 고기의 유혹은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지도 모릅니다.
이를 금지하고 또 지키게 하는 것은 종교의 힘이 가장 클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어떤 종교이든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기 대신 콩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유미경 저, 우리 콩, 세계로 나아가다/한국학술정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