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쉴 틈이 없이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이삿짐을 날라야 할 때, 청소를 해야 할 때,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자신을 부른다고 했다.

그에 못지 않게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을 때, 운동을 하게 될 때, 즐거운 자리에서도 자신을 불러 준다고 했다.

 

아는 이메일을 읽으며 아주 흡족하고 기뻤다.

내가 바라고 소망하던 일이 아들에게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일이다. 24년 전이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어느 집에 가 있었다.

그 장소에는 간호사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함께 있었다.

 

그날 우리 둘째 아이가 감기로 열이 나서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누워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홉뜨고 경기를 하였다. 열 경기를 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혼이 나가 버렸다. 내 생애 그렇게 놀라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도 나는 오직 한 사람만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다른 방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목사님이었다. 비명처럼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불렀다.

내 소리에 크게 놀란 목사님이 달려왔다.

그분이 달려와서 아이를 편하게 뉘였다. 아이는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깨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그때 일을 돌이켜 보았다.

남편도 곁에 있었고 간호사도 있었다. 그런데 왜 목사님을 불렀을까 나 자신도 의아스러웠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목사님이 생각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내 마음에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만해서 부른 것이 아니고 중요한 관계임으로 불렀던 것이었다.

다급하고 어려울 때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그때 깨달았다.

 

남편과 함께 교회를 개척한 세월이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위급할 때, 괴로울 때, 슬플 때, 힘들 때 우리를 불렀다.

때로는 한밤 중에, 때로는 식사할 때...아무 때나 이름을 불러 댔다.

기쁠 때도 마찬가지였다. 행복하고 즐거운 자리에서도 우리를 불렀다.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야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마치 119 대원과도 같아서 언제든지 이름이 불리면 두말 않고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것이 때로는 힘들고 괴로운 경우도 자주 있었다.

보람되고 만족한 경우도 있었지만, 피곤하고 지칠 때도 있었다.

솔직히 싫은 때도 있었고, 귀찮아서 피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불린다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졌다.

 

내가 늙고 병든다면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는 주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서 잠재워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의 이름이 불리는 그 때가 생애 최고의 순간들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주신 아주 귀한 기회임을 깨닫고 녹슬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없어지는 생애를 살았으면 좋겠다.

-김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