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식목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동시에 이 날은 우리 부부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는 날이기도 하다. 결혼후, 우리부부는 한번도 결혼기념일을 챙긴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우리 시댁 어머님은 장로교회 권사님이라 주일(일요일)에 결혼식을 못하게 하고, 나는 또 재림교인이라 토요일에 결혼식을 할 수 없어서, 평일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식을 평일에 하게 된 또 다른 사연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우리 가족은 시골고향을 떠나
광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 남아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 
낯선 도시로 이사를 간 엄마는 마침 집집 방문하면서 전도하는 친절한 여호와증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이웃이 되면서 엄마는 여호와증인 신앙을 받아들였다.


여호와증인은 매일 우리집을 방문하여 엄마와  네 명의 어린 동생들에게 여호와증인의 교리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또 고등학생 때  일본 합창공연을 갔다
온 이후로,  일본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장로교회를 다녔고, 그때만 해도 교회는 전부 장로교회만 있는 줄 알았다.
여호와증인 교회가 이단이라고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이다.
방학때 집에 가면 엄마는 나에게도 여호와증인의 교육을 받아보라고 여러번 권면하였고, 파수대라는
잡지를 주기도 하였다. 


후에 나는 같은 장로교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식을 해야 되는데, 여러가지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과 남편은 우리 친정이 여호와증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시댁 부모님은 우리 결혼식을
교회에서 치르기를 원하였다. 문제는 우리 친정쪽이었다.


여호와증인의 교리가운데 몇 가지 무서운 교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리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한 분의 하나님으로만 인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사나 예배를  참석하는 것은 우상앞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무서운 교리는 수혈을 거부하는 교리이다. 우리 동생들의 지갑 속에는 운전면허증과 함께
일반적인 사고가 났을 때, 자기가 살기 위해서 다른사람의 수혈을 받거나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피를 수혈해 주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수혈거부증 카드를 지갑속에 항상 가지고 다닌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피를 먹지 말라” 는 말씀을  교리로 내세워 피를 신성시한다.


종교가 무섭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종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피가 들어있는 육식은 잘 먹는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사람을 위한 종교이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는 신을 위한 종교로서,
끊임없이 신을 달래기 위해 고행과 극기를 해야하고, 뭔가를 해야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여호와증인도 마찬가지이다.  신을 위해서라면 국민 개인의 기본권과 행복권리마저도 포기하고,
종교활동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 즉, 행위론적 구원을 믿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호와증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이 있다.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의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예수님도 이미 공중재림을 했다고 믿고 있다. 우리 남동생은 군대에서 집총거부 때문에 군대생활을 거의 감옥에서 보냈다.

나는 남동생과 자주 성경을 토론해 보았으나,  쉽지가 않았다.


우리 친정식구들은 모두 신실한 여호와 증인들이다. 
남동생은 현재 여호와증인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고, 우리 여동생들도 한국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나는 가족들과 점점 분리되기 시작하였고,  끝내는 가족들과 단절되었다. 
가족관계가 끊어지는 바람에, 대학을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어렵게 졸업을 하였고, 대학 입학할 때도
혼자서 입학했고, 졸업할 때도 가족없이 혼자서 졸업식에 참석하였다. 


가족가운데 유일하게 여호와 증인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는 이방인이요, 더이상 가족도 아니다.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 증인의 숫자가 144,000명에 이르게 되면,
여호와증인이 세상을 통치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과 유황속에 던져지기 때문에 사회와 가정의 윤리,
그리고 국가와 종교의 질서까지 파괴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종교인들끼리 똘똘뭉쳐 서로 형제, 자매가 되어 가족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그 공동체를 벗어나기란 정말 어렵다. 서로를 배교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면서, 교회를 이탈한 사람들과 상대를 하면 교회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종교관을 갖고 있는 친정에 대해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다. 기독교식 결혼식에 우리 친정식구들을
부를 수가 없어서 나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1991년에 우리 큰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 큰 아들이 두 살 때, 나는 장로교인에서 재림교인이 되었다. 


나는 우리 큰 아이가 더 나이를 먹기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남편에게 우리 친정 종교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남편은 내가 재림교인이 된 것도 받아들이기가 힘든 상황인데다, 우리 친정까지  여호와증인이라는 충격에 거의 맹봉상태였다.


결혼식이 점점 난관에 빠지면서,이젠 친정만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라, 토요일 안식일까지 걸림돌이 
된것이다. 결혼식을 주말(토요일)에 올리자는 시댁과 일요일에 하자는 의견이 충돌하고, 친정의 종교관까지 합쳐져서, 우리 큰 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더이상 결혼식을 늦출 수가 없어서, 나는 주일과 안식일을 다 피할 수 있는 4월5일 식목일,
화요일에 결혼 날짜를 직접 잡았다.  그대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댁에서는 장손의 집안이 평일날에 결혼식을 하면  친척들이 참석하기가 힘들고, 그 날은 음력으로
별로 좋지 않는 날인데, 왜 하필 그날에 결혼식을 해야되느냐며 반대하셨다.


그러나  나는 4월 5일, 결혼식 날짜를 잡았고, 친정에는 기독교식 결혼식이라고 알리지 않고,
시댁은 우리친정이 여호와증인이라는 사실을 모른체, 일주일 동안 결혼식 준비를 서둘렀다. 

4월 5일 이른 식목일 아침, 친정식구들과 친적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기분좋게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시댁 친척들과 가족들, 친구들도 모두 도착했다.  결혼식을 시작해야 되는데, 우리 친정쪽 좌석이 텅 비어있었다.


결혼식 준비는 다 완료된 상태이고, 주례사인 목사님은 양가  촛불의식을 위해  친정부모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뒤 늦게 결혼식이 기독교식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친정 식구들이 버스에서 아예 내리지 않는 것이다. 야난났다.

결혼식은 계속 지체되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남편도 당황하고, 시댁식구들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여러사람이 친정부모님을 설득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취소할 수 없어서, 그 날에 가장 아름다워야 신부가  하얀 드레스를 질질 끌고, 안경대신 처음으로 눈에 낀 컨텍렌즈가 맞지 않아, 심히 고통스러운 가운데 바깥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수치와 굴욕을 뒤집어 쓴체,  버스에 올라갔다.


“엄마, 제발, 결혼식 만큼은 저를 도와주세요! 
자기 딸 결혼식까지  못하게 하는 그런 하나님으로  보이긴 싫어요” 
빰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가 나 있는 쪽은 내가 아니라, 우리 친정쪽이었다. 내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남편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갔다.  결혼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부탁을 드리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으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결혼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촛불만이라도 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무슨 망신이람…


나는 적어도 결혼식장에서 종교적인 소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시간이 오래 지체된 가운데
어렵게 양가 부모님들이 촛불을 켜기 위해 입장을 하였다.
그리고  촛불을 켜려는데, 갑자기 식장 바깥 버스에서 남동생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엄마! 하면 안돼! 하지마! 라고 외치고 있다. 엄마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촛불을 켜는 손이 조금 떨리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켜지고, 동시에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그 날 결혼식은 친정 부모석이 공석인 가운데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시댁 어머님의 찌푸린 인상과 관중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그 결혼식을 맡겼다.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결혼식이 참으로 슬픈 결혼식과 함께 황당한 결혼식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진짜 결혼식이 아직 남아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릴 때에 신랑이 입혀주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온 우주의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지게 될 결혼식에, 
“허다한 큰 무리가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를 외치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는 하나님이 주례하시는
그 결혼식에 나는 신랑되신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행진하는 신부가 되고 싶다.


judy kim 선교사 드림.
judy501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