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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수요일 - 표층신앙과 종교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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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몇 년 전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 발표된 영화쿼바디스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가서는 제도가 되었고, 유럽에 가서는 문화가 되었고, 미국에 가서는 기업이 되었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영화 말처럼 분명 교회는 커지고 부유하게 되어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예수는 문밖에 계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3:17~20).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교회는 점점 커졌고, 예수는 점점 작아졌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아들 목사가 다음 주인이다. 다들 탐욕에 미쳐 버렸지만 교회엔 침묵만 흐를 뿐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하지 못한다. 교회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모임이라면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고자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10).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풍성한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늘날의 천박한 물질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성경 해석은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는 요한의 말씀을 물질적 번영과 건강의 축복 같은 현세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같은 번영신학의 후원으로 이 시대의 기독교는 복 받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이해하는 기독교적 삶에 대한 이해는 신자들로 하여금 표층적 신앙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합니다. 종교는 복 받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외형만 갖추면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예배일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드립니다. 대부분의 종교적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리스도를 닮은 그분의 제자가 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적 삶에 대한 성찰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자 하는 열망이 없습니다.

신앙이나 종교는 그저 액세서리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이 공동체 안에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듣지 않게 조심하고 자신의 삶이 신앙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이나 천국은 갈망합니다. 이것은 표층적 신앙이며 종교적인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앙이나 삶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삶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