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이크(Barabaiq) 부족은 탄자니아의 공식어인 스와힐리어 사용자가 5% 이내라 정도로 철저히 그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원시부족입니다. 물을 따라 거처를 옮겨야 하는 유목민만의 특성, 그로 인해 외부와는 단절된 오랜 배타성으로 안타깝게도 학령기에 접어든 대부분의 아이들이 광야에서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지요. 


 


사실 원시부족에게 학교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줄기 빛을 만날 있는 통로나 다름없습니다. 집안의 가축들을 돌보느라 학교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하는 소년들, 아내 두셋을 거느린 늙은 가장에게 30~40마리에 팔려가야 하는 바라바이크 부족의 어린 소녀들에게 교육은 꿈에서나 그리는 여행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은 세상을 향해 떼는 생애 행보.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족 아이들의 첫걸음은 그들이 태어난 땅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지난 5년간 에쉬케쉬 교회에서는 바라바이크 부족 아이들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를 운영해 왔습니다. 에쉬케쉬 전 사역자였던 가브리엘(Gabriel) 사역자에 이어 지금은 자코보(Jacobo) 사역자와 그의 부인이 15명에서 20명에 이르는 바라바이크 어린이들에게 스와힐리어와 기초 수학 및 간단한 미술 활동 등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데요. 처음에는 연필을 잡기도 어려워했던 아이들이 점차 글씨 쓰는 법을 배우고, 스와힐리어로 된 책을 읽으며 공부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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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어린 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1~2km는 족히 떨어진 보마(Boma, 가옥)로부터 교회 학교를 찾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목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걸고 말이지요. 가녀린 목에 달랑달랑 매달린 검은색 봉지라! 처음엔 햇빛에 반짝이는 봉지의 정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얼핏 위험해 보이기도 했구요. 알고 보니 그건 임시 책가방이었습니다. 공책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이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인 몇 분과 나누었는데 소식을 들은 동생이 스페인에서 가방 40개를 보내왔습니다. 커다란 소포 안엔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책가방이 가득했습니다. 그 길로 에쉬케쉬로 달려가 한 아이, 한 아이에게 가방을 선물했는데요. 어깨에 맨 가방 하나만으로도 제법 의젓한 학생티가 나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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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 2016, 바라바이크 출신 사업가인 바주타(Bajuta)씨가 에쉬케쉬에서 3km 떨어진 냐무스타(Nyamusta)라는 마을에 우물을 파고, 연이어 교무실과 교실 두 칸, 그리고 교사 사택 한 동을 세워 에쉬케쉬 최초의 초등학교가 들어서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마사이 부족지역에 위치한 몬둘리재림초등학교를 세우느라 에쉬케쉬에 학교를 짓는 일은 불가피하게 차일피일 미뤄져 왔는데,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현지인을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이에 힘입어 몇 해 전, 독일 드레스덴(Dresden) 교회가 소프라노 이유라 선생님의 음악회를 통해 전달해 주신 후원금과 서울 묵동교회의 한 집사님께서 보내오신 자금, 세계복지지원단에서 시온의 소리 합창단을 통해 모금해 주신 자금, 그리고 광주 모퉁잇돌 교회의 김창준 집사님, 전정이 집사님, 이혜옥 집사님, 마지막으로 경기도의 기상도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후원금을 모아 올해 2018 10, 드디어 교실 세 칸을 완성하고 필요한 책걸상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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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두색 새 건물이 최근에 지은 것입니다



교실 세 칸이 모두 완공되던 날, 에쉬케쉬의 젊은 족장은 염소 한 마리를 학교로 가져와 작은 쉐레헤(Sherehe,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학교 건축을 도왔던 푼디 피델리스(Fundi Fidelis, 건축자 피델리스)와 그의 동료들 역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사고 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저희 역시 지난 7년 간, 에쉬케쉬 개척을 시작한 이래로 최대 과제이자 부족의 마지막 숙원이었던 학교가 세워진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하나님과 모든 후원자 분들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라색 상의와 남색 하의의 교복을 갖춰 입고, 공책과 학용품, 그리고 옷가지를 앞다투어 받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과연 이 아이들이 그동안 보마에서 숨죽여 지내며 소를 몰던 그 바라바이크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날, 에쉬케쉬가 속한 음불루(Mbulu district)의 인구 통계청에서도 한 직원이 나와있었는데요. 그분은 그동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베풀어 온 모든 복음 사업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며 지역 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과찬의 말씀까지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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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냐무스타초등학교에는 총 73명의 바라바이크 학생들이 공부 중입니다. 정부에서 파견한 1명의 수석 교사(Head Teacher) 1명의 정교사가 합반 식으로 네 학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실 두 칸과 교사 사택 한 동이 모자라 2명 이상의 교사를 받기가 어렵고, 정식으로 학교 등록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허허벌판이었던 에쉬케쉬 광야에 복음의 등대인 교회를 세우시고, 부족들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학교 역시, 오늘날 이렇게나마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서 나머지 필요한 부분도 넉넉히 채워가실 것을 믿습니다. 지난 6년간 한결같이 에쉬케쉬 사역자를 지원해 주신 빛고을 교회의 고승석 장로님, 교회 건축과 우물 프로젝트, 공동체케어센터와 냐무스타 학교 건축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으로 큰 도움을 주셨던 여러 고마운 후원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에쉬케쉬에는 70명이 넘는 부족원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만, 누가 뭐래도 가장 신실한 교회의 주축은 매주 안식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교회에 정각 출석하는 어린 교우들입니다. 슈카(shuka, 부족들이 두르는 천) 안에 헌금으로 드릴 달걀을 고이 안고 말이지요. 제 나이가 몇 살인지도 잘 모르고, 때로는 침례 선물로 받은 성경조차 거꾸로 뒤집어 읽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지만 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이 천국에 가기에 적합하다 하신 바로 그 어린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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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하늘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될 부족 사역의 열매. 그 날을 기쁨으로 고대하기에 오늘의 눈물도 꽃처럼 삼킬 수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로 부족 곁에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