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퍼주는 할머니]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 담그는 된장이야 오죽 쉬울까?
  예전에 먹을 것 없던 시절에 메주 쑬만한 콩인들 어디 변변히 있었어야지...

  그리고 어느 핸가 가뭄이 너무 심해 밭에 있는 곡식이 죄 타들어 가버려서

그야말로 낟알구경이라고는 못했던 때가 있었어.

  벌레먹은 콩 두홉밖에 없어서 된장은 꿈도 꿀 수가 없게 되었지.
    궁리궁리하다가 산에 가서 죽을 힘을 다해 도토리를 두가마 넘게 주워 왔지.

  그걸 갈아서 몇날을 우려내고 가루로 만들고 하여, 조금 남아있던 콩과 섞어서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한번 담궈 봤어.
 
피눈물나게 시집살이를 시키시던 서슬퍼런 시어머님이 이년 뭘 그리 쓸데없는

헛짓을 하누 하고 야단을 하는 통에 혼쭐이 나서 메주고 뭐고 다 귀찮아서

그냥 둘까 생각도 했지만, 도토리로도 꼭 좋은 된장이 될 것 같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시어머님 눈에 띌새라 행랑채 처마에 몰래 그 메주를 걸어 놓았다가,

다 마른 메주를 띄울때는 이웃집 남포댁 아랫방에다 사정사정해서 띄웠지.

  그리고 한밤중에 시어머니 몰래 독을 들고 뒷산에 가서 그걸 묻어 놓고

도토리된장을 가득 담궜는데 몇 달이 지나 된장이 익은 다음 맛을 보았더니

정말 말 그대로 꿀맛인 거야.

 

  그래 그걸 한바가지 퍼 내가지고 와서 밭 매는 날 점심에 마늘 한쪽,

파 한뿌리 안 넣고 달랑 무시래기 몇줄만 넣고 된장국을 끓여서

품앗이 하러온 동네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겠어?

  시래기국 색깔이 왜 이렇게 시커멓나, 이상하네 하면서도

다들 국이 맛있다고 야단들이었지.

  시어머님도 처음에는 의아해 하시며 내 얼굴을 몇번 책망하는 빛 반,

궁금증 반을 띄운 반신반의한 얼굴로 쳐다보신 후에 국을 떠서 잡수어

보시고서는, 대뜸 얼굴이 펴지시면서 우리 며늘아기 솜씨가 어떻수 하는 듯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점심먹는 사람들을 휘 둘러 보는거야.

  동네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난 후 다시 일을 하는 내내 이집 며느리 음식솜씨

한번 괜찮네, 며느리 잘 보았네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거야.

 

  그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다 돌아간 저녁나절에 시어머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지.

  또 무얼 잘못했나 하고 간이 콩만 해가지고 벌벌 떨며 시어머님 앞으로 가서

다소곳 머리를 조아리고 날벼락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 있었어. 

  그랬더니 뜻밖에도 시어머님이 쩔렁하는 소리와 함께 시집온 지 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안 주시던 곳간 열쇠꾸러미를 던져주시며 우리 정씨 가문

맏며느리로서 그만하면 되었다 그러시고는 처음으로 만족하고도 따뜻한 웃음을 웃으시는거야.

  그날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시어머님과 나 사이는 따뜻한 봄날만 계속되었지.

  그게 다 오로지 그 도토리 된장국 덕택인거야.


  곳간 열쇠꾸러미를 받아 들고 기뻐 울면서 뒷산에 묻혀 있는 된장독 앞으로 가서

된장독 앞에다 대고 큰 절을 열번은 더 했을 걸 아마.

  물론 파묻힌 된장독을 남편더러 파내달라고 해서 그걸 둘이서 들고 와

마당 한구석 장독간 햇빛 제일 잘드는 앞 자리에 당당하게 두었지.


  병구완이든 음식을 만들든 무엇을 하든 사람의 정성이란게 제일 중요한거야.

  된장도 담궈놓고 한번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이게 푹푹 상하고 맛이 없어져.

  볕 잘드는 날은 뚜껑을 열어놓아서 된장들이 숨을 쉬게 해야해.
  비가 올지 안 올지 매일같이 날을 보고 점을 잘 쳐야돼.
  비오는 날을 잘 못 짚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고 깜빡 잊거나 집밖으로

너무 멀리 가서 된장항아리 안에 빗방울이 한방울이라도 들어가게 하면 큰일나지 큰일나.

  그리고 파리, 모기, 왼갖 날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삼베를 곱게 빨아

말린 다음 그걸로 항아리 주둥이 위를 잘 덮어서 벌레들이 항아리 안에 들어가서

빠지거나 알을 까거나 하는 걸 막아야 해. 그런 조심을 안해서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담글까 하는 말이 생겨난 거야.
 
뭐라고?
  된장 담그는 방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기해 달라구?
  아차, 이런, 내가 실수를 했구먼.
  된장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온 사람들에게 케케묵은 옛날 얘기부터

먼저 꺼내어서 이야기 앞뒤가 뒤바뀌었네.

 

  그럼 잘 들어봐.
  먼저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 절구에 넣어 빻은 다음 무명베 보자기에 싸서

메주틀에 넣고 두 발로 그걸 자근자근 밟아서 모양을 지운 다음 짚으로

메주를 매는데, 중요한 것은 메주를 잡아맬 때에는 꼭 이 볏짚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더구만.

  우리는 그냥 예전부터 어른들이 마땅히 맬 끈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볏짚으로

메주를 매는구나 생각했는데, 며칠전 텔레비젼을 보니 볏짚으로 메주를 안 매면

사람 몸에 유익한 누룩곰팡이라는 놈이 절대 안 생긴다는구만 그랴.
  옛 조상님네들이 그런 것까지는 몰랐을 텐데, 참 희안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어쨌든 늦가을부터 겨울 끝나는 이월쯤에 매달려 있는 메주를 내려서

자루속에 넣어 뜨끈한 안방 아랫목에 달포 남짓 이불을 씌워서 띄워야 해.

그러다 보면 춘삼월이 되는거야.

  바람 안불고 따스한 날을 골라 안방에 있는 메주를 꺼내서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반으로 쪼개지. 

  물 한말에 소금 서되반 쯤이 필요해. 소금을 그냥 독에다 넣느냐고?

아니 그건 절대 안되지.
  소금을 물에 타서 휘휘 저으면 소금이 녹다가 끝내 안 녹는게 조금 생기기 돼.

천일염일 경우에는 개흙이나 불순물 등이 밑에 가라앉게 되는데

맑은 윗물만 조심스레 떠서 쓰는 거야. 
 
소금물과 메주를 섞어 한달동안 항아리 안에 둔 후에 소금물이 배어

질퍽해진 메주는 꺼내어 따로 된장을 담그는데,

그 메주 맨위에는 소금을 적당히 뿌려서 상하지 않도록 해야해.

그러는 한편 메주를 꺼내고 남은 소금물은 하루종일 솥에 넣어 펄펄 끓이다

보면 저절로 까맣게 변하면서 반 넘게 졸아들어. 그걸 식혀서 항아리에

담아두면 간장이 되는거야.

 

 그런데 젊은 두 내외가 그래도 기특하구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냥 수퍼에 가서 공장에서 만든 된장을 사먹고 마는데,

된장 담그는 법을 일부러 배우러 와서 이 늙은 할멈의 수다를 끝까지

다 들어주고 된장 담그는 법도 일일이 적는구만.

  그런데 이거 어떡하나? 올해는 벌써 된장을 다 담궜는데... 그

럼 이렇게 하도록 해.

  가을에 된장을 다시 담글텐데 그때 기별하면 이 늙은이네 집에 와서 메주도

쑤고 해서 된장 도 한번 같이 담궈보도록 해.

 

된장 담글때는 지금 얘기한 것 이외에도 숯을 넣는다든지 붉은 고추를

띄운다던지 하는, 지금 미처 이야기 못한 세세한 일들이 더 있거든? 

그리고 간장독에 넣기전에 메주를 갈고 찹쌀, 고춧가루, 엿물을 넣어

버무려 고추장 만드는 법도 이야기를 못했어. 서너해 정도 직접 담그면서

이모저모 잘 배워야 맛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거야.
 
그리고 이건 이번에 담근 된장인데 가져가서 두 내외가 한번 끓여 먹어봐. 

아마 조미료같은 잡다한 양념을 넣지 않아도 맛이 날거야.  먹어보고 맛있다고

또 얻으러 오면 곤란한데...  왜냐하면 멀리사는 우리집 아들, 딸들이 와서

퍼가는 통에 된장 독이 몸살이 날 지경이야.  새댁이 업고 온 애기도 관상을 보아하니

이 다음에 친정와서 잘 퍼가게 생겼는걸 뭐. 

둘째애기 셋째애기가 나중에 더 생기게 될 거고 그러면 그 아이들이 시집을 가든

장가를 가든 결국 다 제 배필을 만나 살림을 차리게 될거 아냐?
  그러면 맛있게 된장을 담궈서 항아리 가득 그걸 갖고 있으면서

자식들에게 한그릇 두그릇 나눠줘 봐.
  아마 그 재미도 제법 쏠쏠할거야.  한번 찾아 올 애들이 장 퍼가는 맛에

세 번 네 번 찾아 온다구.

  그러니까 자식들 자주 보고 싶으면 절대 한번에 많이 주면 안돼.
  에구에구 어찌 생각하면 참 서글픈 세월이야.

  그리고 자식들만 주지 말고 이웃에도 조금씩 나누어 주면 훨씬 정다운

이웃들이 될게고, 그 정다워진 이웃들이 암예방식품인 된장을 먹고 오

래오래 살아서 새댁을 두고두고 좋아해 줄테니...
 
왜 그렇게 웃어?
  그나저나 어이쿠 이게 무슨 냄새람?
  정신없이 얘길하다보니 불 위에 된장찌개 올려놓은 걸 깜빡했네.
 
  이런 이런,
           다 탔잖아.
                   쯧쯧쯧, 에구구 아까워라. 
                        그만 가시겠다구?
                            그래요. 그럼 잘 가시구랴."

 

 할머니


- 이 글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된장을 만들어 이웃에 나눠주시는

경기도 어느 시골마을, 흙벽으로 만든 집에 홀로 사시던 희성이 외할머님에게 바친다 -

* 저도 사실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눈을 돌리고 손을 조금만 내밀러 가거나...

선교를 위해 이발 가방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면...

그 순간부터  해변으로 파도가 밀려오듯 끊임없는 이야기 보따리가 다가왔지요.
가평의 어느 귀 많이 어둡고, 눈도 겨우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어두워

운신이 어려운 할머님도 머리 컷을 해드리러 갔다가 그때 만났지요.

이 이야기는 70년 정도 된 오래된 사연입니다.그 할머님이 혼자서

장황하게 말씀하시는 걸 제가 조금 간추려 놓은건데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몇년 후 맛있는 된장을 주시던 할머님은

세상을 하직하셨지요.

혹시 된장 고추장 간장 못 담그시는 분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시고 

대충 감이라도 잡으셨으면 그걸로 저는 족합니다.
 
(글을 보내 드리는 저나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나....

세상은 잠시 잠깐 다니러 온것이지 살러 온 게 아님을...

주님 나라, 본향에 가서야 비로소 영생복락을 누림을 다시한번

같이 자각하길 소망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성도님들을 사랑하는
홍원근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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