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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안식일 - 용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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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6:15)

 

이란에서 어느 남자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여자에게 화가 나서 잔인하게도 그녀의 얼굴에 염산을 뿌렸다. 이슬람 형법은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법정의 명령에 따라 의사는 그 남자의 오른쪽 눈에 염산 몇 방울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실명당한 피해 여성은 자신이 가해자를 용서했으며 그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 있는 위치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용서라고 말했다.


그것은 강력하고도 매우 옳은 말이었다. 원한을 품는 데는 별다른 도덕적 힘이 필요하지 않지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용서와 관련된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친구, 이웃, 가족, 부모, 학창 시절의 선생, 옛 애인에게 원한을 품는다.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원한의 대상과 사슬로 묶여 있다. 잘못이 생긴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쓰라림과 증오를 느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종종 있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2)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용서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용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용서가 얼마나 힘든지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3:34)라고 기도하셨다. 자기를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란 어렵다. 그만큼이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드러내셨고 모본을 보이면서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원한을 풀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한 가해자가 피해 볼 일은 없다. 오히려 마음이 상하는 사람은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쪽이다. 용서할 때 자유를 얻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용서하는 그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듯 그분의 자녀들도 동일한 용서의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때때로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용서를 베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