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국인 목사 안수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2,3).

 

「세 천사의 기별」1915년 2월호는 제5회 미순 연회에 대한 공고를 싣고 있습니다. 제1회는 진남포에서, 제2회는 강서군 기양에서, 제3회는 순안에서, 제4회는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5회는 다시 순안에서 있었고, 그 기간은 1915년 4월 6일부터 13일까지였습니다.


1915년 5월호「세 천사의 기별」과 1915년 7월 29일자「리뷰 앤드 헤랄드」는 이 연회에 대한 소식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의하면 제5회 연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 선교를 저돌적으로 추진하던 대총회장 다니엘스(A.G.Daniels) 목사가 직접 내한하여 참석한 점이었습니다. 그는 영감적인 설교를 통하여 모든 회중에게 “신령한 재미를 무한히 얻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부산에서 경산을 거쳐 오던 중 남선지방 선교본부를 방문하고 또 책임자 왕아시(R.C.Wangerin) 목사와 함께 뒷산인 성암산에 올라가 원근지역의 주민은 물론 남선지방 전체의 600만 주민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사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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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합회>

둘째는 각 지방으로부터 목회자, 문서전도자, 신자 등 400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룬 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무려 천리 길을 걸어서 참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셋째는 1914년 십일조와 각종 헌금이 총 2,489원 8전이었는데 이 액수는 그 해의 사업 총 경비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우 큰 성장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913년에는 7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가 십일조와 각종 헌금으로 드려졌는데 이보다 더 진일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915년에는 5분의 1이 되게 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넷째는 이 연회에서 4월 10일에 최초로 한국인 목회자 두 명이 목사 안수를 받은 점이었습니다. 이영린 목사는「한국재림교회사」에서 “이것은 한국 교회 발전상 큰 의의가 있었고 많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용기를 준” 것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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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안수목사 - 이근억(左), 정문국(右)>


이와 같은 특징들로 인하여 제5회 미순 연회는 감동과 기쁨, 감사와 희망이 넘쳐흐르는 회집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선교사업을 또 한 차례 크게 고무시키는 또 한 번의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님, 거룩한 나라가 흥왕하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의 선교 사업을 거듭 부흥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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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직후 아시아지회 첫 총회에 참석한 이근억(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정문국(이근억 목사 옆 손에 중절모를 든 이), 정문국 뒤로 두번째가 당시 대총회장 A. G. 다니엘스 목사, 그 왼쪽이 아시아지회장 포터 목사, 뒷줄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순안병원장 럿셀 목사, 그 옆이 이 총회에서 안수를 받은 왕대아 여사의 남편 왕아시 목사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