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5 (수)

2008년 11월 5일 수요일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계 19:1, 2).

할리우드 영화사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와 유사한 복수극을 좋아한다. 백작은 악독한 적대자들의 손에 불공정하게 시달려 왔으나 막판에 복수를 하고 승리의 개가를 울린다. 영화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줄곧 제작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복수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영웅이 불공정한 세상을 공정하게 고쳐 놓고 석양과 함께 사라지는 장면으로 결론을 맺는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갈취한 악당이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러한 책이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사람(계 18:4~8)들에게 불공정한 판결을 내려 왔으나, 이 책 마지막은 착한 이들에게 내려졌던 그 같은 형벌이 바벨론에게 내릴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영웅이 석양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화평이 영원토록 다스리는 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을 이기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그림 속에 펼쳐지지 않는다. 그 속에는 굉장한 지진, 거대한 우박, 전쟁과 불꽃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큰 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치 않고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더해 주던 이들에게 심판하러 이제 오신다.

악의 세력이 크면 클수록 그 세력을 멸망시키고, 망가진 것을 회복시키는 힘도 더 크게 요구된다. 나는 예전에 아프리카와 남미 몇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마분지와 양철로 된 집에 살고 있었고, 깡패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곳이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반란군이 휩쓸고 다니며, 주민을 지켜 준다고 하면서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을 보았다.

만약 요한계시록이 영화였다면 무슨 등급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그 속에는 분명 수많은 폭력과 문란한 성 관계가 들어 있다. 성경은 세상이 빠져 있는 죄악의 시궁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하나님께는 사탄이 이 세상을 빼앗은 후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이런 식으로 세상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을 우리가 또한 알기 원하신다. 종말이 다가온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은 상을 둘러엎으시고, 점수를 바로잡아 주실 것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곧 우주의 악을 근절해 버리실 것이며, 정의를 바라는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얼마나 큰 위안인가!

주님, 우리의 고난이 곧 끝날 것을 일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견딜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썩지 아니하는”(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의 씨는 오히려 그것을 없애려는 사단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다. 그분의 자녀들이 받는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되고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보훈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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