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6 (목)

2008년 11월 6일 목요일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계 19:2).

요한계시록 15~19장이 말하는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크게 압제한 바벨론을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아직 ‘노예’라고 부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은 바벨론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노예들이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얻었으나(계 5:6,9,10), 이 세상에서는 ‘노예’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실을 미국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주 정부들과 합중국의 권리 충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더 큰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남부 노예의 자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국가의 연합을 위하여 죽기를 주저하던 많은 사람이 모두가 자유하게 되는 일에는 그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들의 자유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남부가 승리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한,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을 알았다. 북군은 1862년까지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메릴랜드 주 안티탐 냇가에서 남부 군인 3,600명이 죽임을 당하였다(미국 역사상 9월 11일을 포함해 가장 많이 죽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결과로 남부 군대는 버지니아로 후퇴하였고,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 선언문을 만들어서 남부 노예들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모든 남부 노예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마침내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자유를 얻었는가? 그렇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했다. 많은 노예가 그 소식을 듣고 땅에 엎드려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나 일상생활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남편, 아내, 아이들이 계속해서 가족으로부터 팔려 나갔다. 노예들은 여전히 매를 맞았고, 명령에 불복종할 때는 매달리기도 하였다. 많은 노예가 마치 짐승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분명 무엇인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정부는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그들은 아직도 매를 맞으며 주인에게는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그들의 마음과 심령은 이미 자유를 얻었다. 그들은 선언문이 이미 선포된 후인지라 곧 자유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아직 노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자유인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든 인류는 자유를 얻었다. 요한계시록에 쓰인 이야기들은 살육과 고통으로 온통 얼룩져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실현하기 위한 맹렬한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어떠한 일을 겪고 있다 해도 결정적인 사건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노예들이 외치는 “마침내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라는 외침이 너무 이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님, 저를 도우셔서 예수님이 저를 위하여 준비해 두신 그 자유 안에서 살게 해 주옵소서.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은 크다. 백성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가리켜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상급을 전적으로 내세에서만 받게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상에서부터 받기 시작한다(보훈 34).

친구나 가족, 직장동료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십시오
webmaster@egw.org로 추천하실 분의 메일주소를 보내주세요.

.
영원한 복음을 홈페이지로 하기 원하시면 이곳을 클릭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