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에서 생활한지 5년차 되는 자칭 인도댁이다.

이곳 사람들은 나를 북인도 사람 또는 네팔사람으로 본다. 내가 직접 이야기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나를 한국인으로 봐주지 않는다. 피부 색깔도 말투도 고개를 좌우로 끄떡거리는 그 특이한 대화 방식도 난 거의 90점 수준이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작년 4년간은 신랑과 싸운 기억은 거의 없다. 선교사 2년차에 우울증이 걸려 힘들어 할 때도 또 비자 문제로 두 번이나 경찰에 쫓길 때도 우리는 함께 기도했고 서로에게 힘을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이곳 북인도로 이사 오고 나서 말이다.

무척이나 정든 선교지를 떠나 5일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짐이 도착하기도 전에 선교사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집 뒤에 대나무로 부엌과 선교사 교실을 임시로 만들어서 23명의 선교사들과 3달을 함께 먹고 생활하다 보니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또 외로움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선교사 정신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신랑과 낯선 곳에서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던 내가 부딪혀 자꾸 잡음을 내게 된 것이다.

 

그날은 선교사 파송 전 훈련원 임원들이 선교사들의 발을 씻어 주는 헌신회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그것도 교회가기 직전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난 이제까지 힘들고 서러웠던 것들을 다 쏟아 내듯이 엉엉 울었다. 뭐 신랑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선교사 일 하나에만 매달려 끊임없이 달려가는 그에 비해 너무 힘들어 지친 나를 보며 열등감을 느낀 걸까?

그렇게 교회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선교사들의 얼굴을 볼까? 복잡한 마음에 교회가기를 망설이고 방안에서 서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성민이 현민이가 들어오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 기도를 해서 난 아이들이 뭐라고 기도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기도를 마친 성민이 현민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아까 부터 우리가 저 방에서 기도했어요. 기분 풀고 빨리 교회 같이 가요

그날 난 여 선교사들의 발을 씻어 주며 정말 엉엉 울었다. 아마 선교사들은 내가 아주 믿음이 가애서 울며 기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울었다.

내 부족한 모습 때문에 주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발을 씻어주었다.

하나님께 회개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날 기도회는 울음바다였다.

부족한 선교사인 나도 울고 선교지로 출발하게 되는 선교사들도 울고......

모두 다른 이유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기도했다.

부족한 죄인을 용서하소서.

내 안에 있는 나를 못 박아 주소서.

그리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게 해 주소서

그날 이후로 우린 다시 평화를 찾았다. 두 아이의 무릎 꿇음이 나와 신랑을 함께 기도하게 만들었고 선교사들의 헌신예배를 은혜롭게 마치게 하였다.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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