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인도로 오면서 제일 걱정한 것이 돈이었습니다. 어떻게 후원금을 모금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었습니다. 아는 분들도 많지 않고 경력도 미천하고, 가정 사정 또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도 와서 느낀것은 돈 보다도 선교사를 모집하는 것이 더 힘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아니고 직업이 아닌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인도는 경제 사정도 어렵고 교회 사정도 어렵습니다. 근 3년을 남 인도에서 사역하며 수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고 이 운동을 설명하였지만 그들의 필요와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는걸 쉽게 알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목사님이 바이블워커 훈련(평신도 지도자) 현식으로 변형해서 이 운동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인도가 2000년 기독교 역사에도, 120년 재림교회 역사에도 이렇게 기독교가 힘이 없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매년 100명을 훈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도에 첫 발을 디뎠지만 20명 모집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선교 정신과 헌신의 마음으로 오는 청년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지도자들의 관심은 선교사들에게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 몇 년동안 지원해 줄 것인지, 본 합회로 파송할 것인지가 제일 큰 관심사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를 다 마치고 세상의 좋은 직장에 취직해 빨리 당신들을 뒷 바라지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고 교육시스템은 휴학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중간에 학업을 중단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거나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거나 등의 극단의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원해도 삼중고를 딛고 선교사로 지원한다는 엄청난 결심이요 희생인 것입니다.
삼년만에 저는 북동인도로 올라왔습니다. 참으로 먼 거리...... 4000킬로미터를 달려왔습니다. 차도 여러번 퍼지고 경찰에 잡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북동인도는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라서 모든 것이 쉽지 않고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운데 난방 시설은 전혀 없습니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 합니다.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가족과 3달간  떨어져 지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청년캠프에 참석하고 교회들을 방문하며 1000명 선교사 운동을 홍보했고 부스를 만들어 청년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청년들이 결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합회와 연합회는 이 운동이 바로 우리가 그동안 원했던 운동이라고 하며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많은 청년들이 주님 앞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느낌이었을까요?  
그 동안의 고생과 수고가 싹 가시는 듯합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하나님의 칠천인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9기 선교사 산상 새벽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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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 선교사들의 맛있는 식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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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물 데울 장소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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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선교사들과 선교사를 보내는 가정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