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알갱이에 1,000실링(490). 데오는 오늘도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 구겨진 지폐 한 장을 찾아냈다. 헤로인을 사기 위해서다. 열두 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을 뛰쳐나와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거리를 떠돈 지 채 1년도 안되어 헤로인을 시작했다. 헤로인과 마리화나, 담뱃잎을 섞은 콕테일리(kokteili)를 맞으면 그야말로 검은 땅을 벗어나 하늘이라도 나는 듯 했다. 데오가 자란 시골 마을 키바하(Kibaha)에서는 미룽가(Mirunga, 마약성분이 있는 약초)를 씹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네 어귀에는 소다 병에 미룽기를 넣고 홀짝홀짝 음료수처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애달픈 삶이 버거운 친구 엄마들도 종종 끼여 있었다. 횡설수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허공에 쏘아대며 실실 웃음을 흘리던 사람들. 이젠 데오가 그런 어른이 되어 버렸다.

 

오로지 마약 살 돈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을 일삼다가 세게레(Segere) 감옥에 8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감옥을 나와서도 돌아갈 집이 없었다. 다시 깡패들과 어울리며 가게를 털기 시작했다. 마약을 하는 날엔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의 친구들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적발되었다. 데오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으나 환각상태에 빠져 있던 친구 하나는 허둥대다 주인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카마타 므위지!(Kamata mwizi! 도둑이야!)’라는 소리에 몰려든 성난 군중은 너나 할 것 없이 발길질을 해대며 돌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피투성이가 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도 데오는 울지 않았다. 마약에 취해 있어 슬프지도 않았거니와 객사가 낯설지 않았다. 죽음은 언제나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UN 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에 따르면 탄자니아는 온갖 마약 거래의 온상인 동시에 세계 마약 통상에 있어 핵심 거점지에 해당한다. 마리화나의 경우 아프리카 내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출발한 인도대마(Cannabis), 헤로인 그리고 코카인은 세관 규제가 허술하고, 온갖 이익집단(정치인, 법조인, 딜러 간의 유착관계)의 부패가 난무하는 탄자니아의 제 1 항구 도시, 다르에스살람을 통과하여 남아공이나 유럽 등지로 수출된다. 20181, 도미니크 공화국으로 향하던 두 척의 배가 세관에 잡혔다. 탄자니아 국기를 나부끼던 배 안에는 놀랍게도 마약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같은 시기 마약 운반책으로 두바이를 넘나들던 탄자니아 출신의 한 아랍계 여성이 공항에서 잡히기도 했다. 탄자니아 마약상과 운반책이 브라질과 홍콩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장 끔찍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바로 다르에스살람 슬럼가의 빈민들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특성상 탄자니아 각지에서 불나방처럼 모여든 사람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흔하다. 그 중에서도 어린 청소년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동아프리카에는 50만 명 이상의 헤로인 중독자들이 있는데 그 중 60%가 탄자니아에 거주하고 있고, 이 가운데 대다수가 11~15세 사이에 처음으로 마약을 접한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10대 초반부터 최소 10년 이상 중독의 늪을 헤매는데 말하자면 미래를 꿈꾸어야 할 10대 학령기 전체를 마약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중 11%B형 간염, 68%C형 간염 보균자이고, 40%HIV(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에이즈)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구 120만 명의 북부도시 아루샤도 예외는 아니어서 탄자니아에서 가장 위험한 슬럼가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40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응가람토니의 작은 마을 쿠웨이트(Kuwait), 이곳은 스와힐리어로 반기(Bangi)라 불리는 마리화나의 재배지이다. 온갖 종류의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대낮에도 칼부림이 나는 우범지역이기도 하다. 현지인들조차 먼 길로 우회할 만큼 접근을 꺼리는 곳이다. 이 지역 토박이인 마사이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통술 주조의 장인들이다. 공고(Gongo)라는 이 독특한 술의 주재료는 사탕수수, 바나나, 곡물가루 혹은 꿀인데 공고 한 잔의 알코올 농도는 와인 100잔에 버금간다고 한다. 공고에 찌든 사람들은 반기를 피우며 더 강력한 마약에 노출되고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의 늪으로 빠져든다.

 

지난 22, 아루샤에 있는 한 마약중독자 재활센터(Arusha Recovering Sober House)를 찾았다. 이곳은 전직 마약 중독자 두 사람이 갱생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개원한 작은 센터이다. 교실 한 칸이 전부인 작은 재활 센터에 4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고 있다. 가느다란 팔다리, 핏기 없는 얼굴, 초점 흐린 눈빛,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저마다 노트 한 권씩 들고 뭔가를 받아 적는 사람들. 앞에서 수업 중인 교사 역시 지난 9년 간 헤로인에 중독되었던 전직 마약 중독자이다. 이곳 수업의 특징은 중독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과 비공개 상담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A.A.)과 같은 프로그램이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서도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N.A 프로그램, 즉 익명의 마약중독자들(Narcotics Anonymous. N.A.)이라는 단체에서 제공하는 12단계 치료법이다. 이 센터는 먼저 나는 중독되었다는 자가 인식과 함께 더 강력한 외부의 힘인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예배와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 4시간 강의를 통해 12단계 치료법을 적용하며,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중독자들을 위해서 무료 약을 배포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주 목적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자급선교사양성센터를 위한 설문조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아프리카 역시, 노동력의 28%만이 안정적으로 임금이 지불되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에 따르면 평균 연령이 23.5세인 청년 실업률은 장년 실업률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으며, 이로 인해 청년 인구 중 72%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청년 실업의 증가는 위에서 소개한 데오와 같은 마약중독자들의 양산과 범죄 증가 등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재림교회 가운데 가장 많은 무보수 평신도 사역자가 활동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정한 소득이 없다 보니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자녀 교육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역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역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추게 된다면 탄자니아의 80개 미전도 종족을 위한 복음 전파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앞으로 연장 3년의 기간 동안 이 땅의 젊은이들이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갖춘 영성 충만한 선교사로서 어디로 파송되든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기술센터를 개원하고자 한다. 사도바울처럼 영성과 기술을 동시에 갖춘 텐트메이커(Tentmaker, 자급사역자)를 양성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하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 권에서도 유독 마약중독자가 많고 실업률이 높은 탄자니아의 젊은이들에게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탄자니아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아루샤 내의 국공립 및 사립 고등학교와 대학교, 기술전문학교의 학생들(졸업 예정자)35세 미만의 청년들을 무작위로 선정하였는데 그 결과, 20181월 중순부터 3주간 2026명으로부터 설문지를 수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2, 그 대장정의 끝으로 아루샤에서 유일무이한 마약 중독자 재활센터를 찾게 된 것이다. 방문한 날, 5개월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도 중독에서 회복되는 비율은 고작 30%에 불과하며 그 소수의 회복자들 역시 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다시 중독의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센터에 눌러 앉는데 막상 나가도 돌아갈 거처가 없고, 마땅히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서려는데 한 청년이 급히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의 이름은 캘빈 우라사(Calvin Urassa). 현재 22. 지난 12년을 마리화나 중독자로 살다 이 재활센터에서 회복 9개월째를 맞은 청년이다. 마리화나를 처음 접한 건 9,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간 한 작은 방에서였다. 희뿌연 연기와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그 방을 나오려 했지만 갑자기 두 손을 묶인 채 이유도 없이 한참을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는 강제로 입을 벌려 마리화나를 쑤셔 넣는 바람에 난생 처음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다 헤진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마리화나를 피우자마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차분해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찢어진 바지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날부터 캘빈은 고정적으로 그 방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환각의 삶은 급기야 집을 나오고,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장장 12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역시 마약 살 돈을 구하려 도둑질을 하다 길거리에서 죽도록 얻어맞은 후에야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무힘빌리 국립 병원(Muhimbili National Hospital)에 강제로 입원 조치되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근무하던 한 친척을 통해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루샤의 이 센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캘빈은 마약을 끊은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간곡히 부탁했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게 도와달라고, 도색이든 차 수리든 뭐든 배우고 싶다고 말이다. 고민 끝에 지난 6년 간 선교차량을 도맡아 수리해주었던 정비사 빈센트(Vincent)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전에도 마약에 빠졌던 청년 몇몇을 가르친 경험이 있노라고 일주일 정도 살펴보겠다는 신중한 의사를 밝혔다. 어떤 청년은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지각을 일삼고, 그것도 모자라 자동차 부품이나 타이어를 훔쳐 달아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또 다른 청년은 1년 여를 열심히 배운 끝에 지금은 정비사로 일하고 있다며 캘빈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주지시켰다. 226, 오늘부터 일을 시작하게 될 캘빈, 부디 옛 생활일랑 잊어버리고, 차근차근 배워나가길 바라 마지않는다.

 

요단강이 가장 범람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 땅에서 두 달이나 머물러야 했다. 일부러 그 때에 강을 건너게 하려는 하나님의 시간표 때문이었다. 강이 넘친다는 건 인간에겐 분명 건너기 어렵다는 뜻. 그러나 하나님께는 강의 수위 따윈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건져내고 작은 불씨를 그 손에 쥐어주기에는 너울대는 강물이 너무나도 위압적이다. 그러나 전쟁은 강한 자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며 경주는 빨리 달리는 자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9:11)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린다. 밥 대신 헤로인을 사는 데오와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역자, 그리고 9살 나이에 마리화나를 꾹 삼켜야만 했던 캘빈과 함께 이 침침한 강을 건너는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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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키나(Sakina)의 한 정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캘빈, 사진 왼쪽이 빈센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