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프리카, 과연 갈 수 있을까?

 

아프리카. 그리 쉽게 오갈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닙니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물리적인 거리 외에도 경비의 부담, 조악한 환경, 풍토병의 위험 때문에 선뜻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1800년대 후반, 아프리카 대륙을 선택한 많은 선교사들은 고국을 떠나기 전부터 가족 중의 누군가를 말라리아로 잃을 각오를 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17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와 콜레라, 그리고 뎅기열이 기승을 부리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곳적 자연이 관광객들을 부르고, 가난과 슬픔에 찌든 영혼들이 선교사들을 끌어 당기는 곳이 바로 이곳 아프리카이기도 합니다. 

 

지난 7 1일부터 15일까지 호남합회 소속 해외산업선교단 16명의 대원들이 숱한 어려움을 뚫고, 탄자니아를 방문했습니다. 이민용 가방 가득 구호품을 싣고서 부부동반으로 귀한 걸음을 해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서중한합회 은퇴 목사님이신 최철수 목사님과 저희 친정어머니께서도 때맞춰 탄자니아를 찾아주셨습니다. “제 아내가 지난 5개월 간 갑상선 암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어요. 금요일에 퇴원했으니 3일 만에 비행기를 탄 셈이지요. 한창 학업 중인 딸들도 있어 선뜻 아프리카 행을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송호근 장로님) “오기 전, 모내기를 끝내놓고 오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어요. 게다가 작년에 진도대교를 건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거든요. 당시 꼬리뼈가 골절됐었는데 아직도 치료 중이에요. 꼬박 앉아서 가야 하는 장거리 비행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김주희 집사님) “아무래도 아프리카에 간다는 게 무섭잖아요? 오기 전, 전대병원에 들러 15만원을 주고 황열병을 포함한 갖가지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어요.”(김용복 장로님) “집에 소를 키우고 있는데 탄자니아에 도착한 후, 이웃에게서 연락을 받았어요. 우리 집 소가 이틀 동안 물을 못 마셔 운다구요. 아차, 소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김도중 장로님) “탄자니아에 오기 전 아내가 전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수술 후 오줌주머니를 차고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간다는 것이 맞는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최철수 목사님)

 

각기 다른 형편과 보이지 않는 두려움, 내면의 갈등과 싸워야만 했던 선교 대원 모두를 탄자니아까지 인도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루실 목적이 있기에 조용하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신 분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땅을 밟아보는지도 모릅니다.

 

집 두 채를 짓다

 

방가타(Bangata)는 메루산 자락 아래 호전적인 와메루(Wameru)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지난 2000, 부족원들을 향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강권했던 한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자 일요일 저녁, 교회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결단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설교가 이들의 귀에는 부족 전체를 모욕하는 것으로 들린 것이지요. 1890, 메루 부족을 타깃으로 삼았던 외방 선교사가 처음으로 순교를 당한 곳도 바로 이 방가타 지역이었습니다. 재림교회가 없던 이 마을에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2016, 새로이 교회를 세우고(김주연 집사님, 강경수 목사님 후원) 호세아 필립포(Hosea Philipo) 사역자 가정을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김기곤 목사님과 구정례 집사님 후원). 신생 개척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85명의 귀한 영혼들이 침례를 받으며 안정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지요.

 

금년 7월 한국의 선교 봉사단을 맞이하여 방가타 교우 가운데 두 가정의 집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 간 마리화나에 중독되어 거의 폐인처럼 살다시피 했던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 후, 삶이 완전히 뒤바뀐 도널드 투야(Dornald Tuya)씨와 과부에다 정신이상자인 딸을 돌보느라 폭삭 주저 앉은 자신의 집만큼이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네마 자블론(Neema Zablon) 할머니, 이렇게 두 가정의 삶의 터전을 돕는 프로젝트였지요.

 

단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탄자니아 전통 흙집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난번 키오가(Kioga)의 멜리요(Meliyo) 할아버지 댁 공사와는 달리 이번에는 소똥이 아닌 흙을 개어 벽에 바르기로 했습니다. 편평하게 다져놓은 집터 위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미안지(Mianzi, 전통 가옥의 벽을 세울 때 쓰는 가는 대나무줄기)를 두 겹 세 겹씩 겹쳐가며 벽을 완성했지요. 집의 바깥쪽과 안쪽으로 두 번씩 대나무줄기를 따로 엮는 것은 그 사이사이마다 흙을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 대원들이 나무로 틀을 짜 벽을 세우고, 못질을 하는 동안 여자 대원들은 가느다란 대나무들을 긴 줄로 하나 하나 엮어가며 튼튼한 집을 손수 지어 나갔습니다. 현지 교우들도 못지않게 큰 힘이 되어주었는데요. 대원들의 도착에 앞서 새 집터 주변의 바나나 나무들을 자르고, 땅을 고르게 준비했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에는 벽의 재료인 흙과 물을 열심히 개어 날랐지요. 뿐만 아니라 집 안팎으로 미장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었습니다. 이로써 외국인과 자국민이 협력하여 우기에는 물이 스며들지 않고, 건기의 짱짱한 날씨에는 통풍이 잘되는 전통 탄자니아 가옥 두 채가 완성되었습니다


00001해외산업선교단.jpg


00011해외산업선교단.jpg

 

00006해외산업선교단.jpg


집짓기 완성.jpg


성령이 충만했던 그 안식일

 

7 6일 안식일, 그 날은 2주간 이어진 방가타 지역 전도회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춥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지만 300명 가까이 모인 교우들과 손님들은 흥겨운 잔칫날과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대예배 시간에는 대원들 모두 나팔을 들어 크게 불라라는 특창으로 현지 교우들과 함께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기도 했지요. 이른 아침, 준비해 간 샌드위치와 주먹밥은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특별히 저희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건물 귀퉁이에서 잔칫집을 엿보는 아이들을 찾아 빵을 나누어주었는데요. 감히 오지도 못하고, 오란 사람도 없어 허기진 배를 움켜잡아야 했던 그 시간, 빵을 쥐어주려는 손길에 갑자기 몸을 뒤로 젖히며 방어태세를 한껏 취하는 어린 소년. 그의 모습에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너의 삶이 어떠했길래 빵 한쪽을 받질 못하느냐…’ 또 한 소년은 그 무리 가운데서도 가장 누추하고, 비쩍 마른 아이였는데 빵을 주려 하니 고개로 어깨를 가리키더랍니다. 팔을 만져보니 양팔 모두 팔꿈치 아래로는 없는 상황. 빵과 바나나를 번갈아 먹여주는데 이 아이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한번 씹고, 얼른 삼키고는 다시 참새처럼 입을 벌리는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복음의 특권을 누리는 백성들 주변으로 사각 지대에 늘 이런 영혼들이 숨어 있다는 것,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고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소유해야만이 작은 가슴으로 그들을 알아보고,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방가타 교회 앞에서 치뤄진 침례식이었습니다. 20명의 귀한 영혼들이 침례를 받는 동안 아니 침례식이 끝나고, 다시 전도회 장소로 돌아가는 길목까지 카라투(Karatu) 지역에서 초청한 브와와니(Bwawani) 합창단의 감동적이면서도 신명 나는 찬양 릴레이가 펼쳐졌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열어젖히고, 그 속에 함께 어우려져 흥겨운 찬양을 드리는 모습은 마치 다윗 왕이 춤을 추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1970년대 침례 받고, 흥겨워서 몸을 움직인 건 처음이라는 김도중 장로님은 자동으로 춤 많이 췄습니다.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라고 하셨지요. 대원들 가운데서도 최고령자인 김 장로님이 이러실 정도니 다른 대원들은 어땠을지 상상이 되시지요?

 

뿐만 아니라 흙집을 함께 지었던 엘리야라는 청년이 이날 침례를 받았는데요. 마침 봉사 기간 동안 그 청년과 짝이 되어 일하셨던 소복자 집사님은 침례자들 속에 그 친구를 발견하고는 소녀같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흙집을 짓던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하나님을 믿는 친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침례 받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엘리야 손에 선물을 꼭 쥐어 주시고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다가 하늘에서 만나요.”하며 울음을 터트리시는 모습에 스와힐리어로 집사님의 마음을 전달하던 저까지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이 날은 무엇보다 해외산업선교단의 단장이신 김경훈 집사님과 소유정 집사님 내외가 일정 중, 한국으로 급히 귀국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15년간 병상에만 누워계셨던 부친께서 위독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소식에 못내 서로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국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 주 안에서 잠드셨다는 말씀에 장례일정을 맞추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지면을 빌어 부활의 소망과 따뜻한 하늘의 위로가 유족 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00000연합회장님과 함께.jpg


00000식사팀.jpg 찬양.jpg



자급사역자기술훈련센터 지붕을 올리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아루샤 삼육대학 안에 건축 중인 자급사역자들을 위한 기술훈련센터 요식업 건물을 완성하는 것이었는데요. 현재까지 김문호 장로님, 전병덕 목사님, 고승석 장로님 그리고 엄영대 장로님 등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본관 제 1관과 제 2, 그리고 작업관 건축은 이미 완료가 되었습니다. 요식업 건물은 호남합회와 평신도실업인협회가 주최한 음악회에서 모금한 후원금과 광주중앙교회, 인지리 교회 등 여섯 교회의 후원금, 그리고 40명 이상의 개인 후원자 분들의 자금이 모아져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해외산업선교단 단원들의 개인적인 후원과 직접적인 봉사가 합쳐져 건물을 완성하게 되었지요. 고향 합회와 목사님들, 그리고 후원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3일 간, 지붕 트러스트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2x4 2x6 나무를 이용하여 삼각형 모양의 트러스트 기본 구조 7개를 만들어 지붕의 사 면을 씌우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대원들이 건물 밑에서 규격에 맞게 나무를 잘라 올려주면, 지붕 위의 대원들이 틀에 맞추어 고정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물기를 품은 나무를 다루는 일은 고되고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4미터 높이의 벽채 위에 서서 나무를 지탱하던 차 목사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건물 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 집사님들과 저는 비명을 지르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지요. 그러나 3일 동안 쉼 없이 힘을 다해 일한 끝에 기어이 지붕 트러스트를 모두 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기술훈련센터의 건축을 총괄하고 있는 피델리스(Fidelis) 기술자와 그의 일꾼들 역시 함께 이 일을 도왔지요. 신변의 안전을 무릅쓰고, 수고해 주신 모든 남자 대원 분들께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지붕 위에서 주도적으로 공사를 해주신 김희택 장로님과 김도중 장로님, 그리고 땀 흘려 수고해주신 모든 대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00014해외산업선교단.jpg


00005해외산업선교단.jpg

 

꽈배기 쇠파이프에 칠을 하다

 

남자 대원들이 지붕 공사에 여념이 없는 동안 여자 대원들은 건축이 완료된 작업관과 본관 제 2관의 문틀과 창틀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꽈배기처럼 말린 쇠파이프 하나 하나를 정성스레 검은색 페인트로 칠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역한 냄새와 싸워가며 때로는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가 붓질을 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말없이 붓을 다루는 동안 마음은 하나님을 찾는 복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 페인트처럼 내 마음도 검기만 하구나. 탄자니아 사람처럼 마음이 하야면 얼마나 좋을까?”(김해숙 집사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본관 제 2관에 들어선 개인 기도실 한 칸 한 칸의 창틀을 칠할 때에는 기도의 능력을 믿기에 이곳에 기도실을 만들었겠구나. , 하나님! 기도실에서 무릎 꿇고 아버지를 찾을 많은 사역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훈련생들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 뵙길 원합니다.”(조미숙 집사님)라고 기도하며 칠을 했다고 하시네요. 하나님께서 이런 순수한 헌신의 봉사를 받으시고, 모든 여자 대원분들 또한 축복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00004해외산업선교단.jpg


사파리, 에쉬케쉬, 부시맨 그리고 몬둘리재림초등학교 방문

 

이로써 해외산업선교단의 모든 봉사 일정이 마쳐졌습니다. 봉사 후에는 2 3일간의 세렝게티 사파리를 했는데요. 아프리카 먼지를 다 마셔야 할 만큼 털털거리는 하드 탑 사파리용 차 안에서 3일간 비포장을 달려가며 동물의 왕국을 감상했습니다. 케냐의 마사이 마라 국경까지 올라가 대이동을 볼 참이었지만 그러려면 강 네 개를 차례로 확인해야 할 판이라 세렝게티 중심부를 돌며 남아 있는 동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메마른 초원 위에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서식지에는 굶주린 맹수들이 허다했습니다. 지금이 한창 배고픈 건기 시즌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진귀한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냥감을 바위 꼭대기에 숨겨두고 허겁지겁 먹던 표범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아프리카 돼지 한 마리를 입에 물고 힘겹게 걸음을 떼던 암사자까지! 과연 그로부터 불과 몇 미터 근방에 먹이를 가져오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사자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쳐 캠핑장으로 향하던 한 늦은 오후, 버팔로를 추격하는 사자떼까지 볼 수 있었는데요.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한 장면처럼 암사자 열 댓 마리가 2열로 무리 지어 버팔로 뒤를 바짝 쫓는 장면은 그야말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경계를 끝까지 놓치 않던 버팔로가 친구들과 함께 오히려 맹렬히 사자에게 달려들어 그 무리를 쫓아내는 장면은 인간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압권이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바로 그것이었지요.

 

그날 밤, 캠핑장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포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비한 하이에나 울음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울음이었습니다. 화장실은 가야겠는데 도무지 텐트 지퍼를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대원들의 마음도 저와 같았는지 아이구, 무서워 죽겠네. 화장실 갈 사람 있으면 같이 가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와보니 저보다도 큰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손전등을 켜고 함께 화장실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순간 그 귀여운 모습들에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했습니다. 겁은 제가 젤로 많았지만요. 다음날 아침, 캠핑장 근처에서 포효한 동물은 사자로 밝혀졌습니다. 남자 화장실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이 그 증거였지요.

 

사파리 후, 대원들은 에쉬케쉬와 기데루를 찾아 지구상 최후의 원시부족인 바라바이크 부족과 하자베 부족을 만나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들이 이번 선교 일정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 마치 예수님이 서 계신 것처럼 복음의 등불인 교회와 공동체케어센터(최현경 집사님 후원)가 세워진 모습, 그곳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약국이 들어서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듣도 보도 못한 부족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힘 있는 찬양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삶 속에서도 밝게 웃는 영혼들을 보며 많은 분들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습니다.

 

00001연합회장님과 함께.jpg


에쉬케쉬.jpg


평생에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정대웅 장로님), “그 오지에 하나님을 부르는 백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입니다.”(소복자 집사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박동준 장로님) “한국에서 그동안 헛된 것을 구해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박혜자 집사님), “헌신이 없는 복음전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박필자 집사님), “이번 해외 선교는 내 인생의 귀중한 선물입니다.”(양정민 집사님), “그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전기로 장로님) “제가 다니는 구례교회에서 당시 갓 출판된 탄자니아 책 하쿠나 마타타책을 처음 봤습니다. ‘아니, 한국에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저 아프리카까지 가서 선교를 하나?’하는 마음이 들어 아예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에쉬케쉬까지 다녀온 후, 책을 펴보니 정말이지 눈물이 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하기에 복음은 먼 곳까지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조미숙 집사님)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몬둘리에 있는 재림초등학교(Jaerim Pre & Primary School) 를 찾았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이름을 가진 재림초등학교지요. 지난 2016년부터 2년간 김민자 집사님과 박상희 집사님, 김명진 원장님 등 많은 분들의 후원을 힘입어 지어진 이 학교는 올해 2019 1, 처음 그 문을 열었습니다. 1월만 하더라도 6명의 신입생으로 시작하였으나 2학기를 맞은 지금은 유치원과정부터 3학년까지 총 35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입니다. 올해 초에는 최재우 집사님의 헌신으로 스쿨버스까지 기증하여 원거리에 있는 많은 학생들도 부담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2주 전, 대총회의 교육부장님이 몬둘리 재림초등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올해 12, 다시 탄자니아를 찾아 본인이 직접 재림초등학교의 개교식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년 말까지 자급사역자기술훈련센터까지 모두 완공하여 기왕이면 재림초등학교 개교식과 함께 개원식까지 치르기를 원합니다. 센터 완공에 필요한 나머지 공사와 설비 확충이 모두 풍성하게 채워지도록 앞으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몬둘리학교.jpg


에필로그. 감사를 전하며

 

거실을 가득 채웠던 16개의 의자와 식탁들, 아침 6시면 현관문을 들어서던 대원 분들, 조석으로 함께 예배 드리고, 간증을 나누던 복된 시간들, 룻기서로 말씀을 전해주셨던 최 목사님과 새벽부터 밤까지 부엌 일을 도맡아 주셨던 친정어머니 그리고 장보랴, 반찬 만들랴 대원들의 식사를 위해 힘써 일해주셨던 양정민 집사님과 박혜자 집사님까지이제는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과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언제나 축복해 주시는 삶을 사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끝으로 방가타 교회에 염소 30마리를 지원해 주신 통영노산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방가타 전도회를 지원해 주신 박정희 집사님과 두 채의 건축비를 후원해 주신 안성규 장로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외에도 저희가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탄자니아 후원금을 전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 6절 말씀)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예수님의 피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겨자 씨앗 하나도 발아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눈물과 희생으로 뿌려진 모든 씨앗이 열매를 맺어 정녕 기쁨으로 거둘 그 날.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 이 땅에서 보는 수확의 100배 이상을 거두게 될 그 날, 하늘에서 딤낫세라의 기업을 누리시길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연합회장님과 함께.jpg 

-집으로 찾아오셨던 레쿤다요 연합회장님께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