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간, 다시 아프리카 적응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한창 건기인지라 유난히 먼지도 많고, 건조한 날씨 탓에 온 몸이 간질간질, 목도 따끔따끔 합니다. 밭에 심어놓은 케일이 느릿느릿 자라고 있어 시장에 나가 한국 돈 700원에 사왔는데 배꼽 주위가 살살 아프기 시작합니다. 하기야 마마들이 시장 바닥에 그냥 펼쳐놓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에 푹 담갔다 뺀 후 탈탈 털어 한가득 담아주는 케일이다 보니 아무리 잘 씻는다 한들 날로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겠지요. 하루는 또 뭘 잘못 먹었는지 저와 애들 모두 한밤중에 일어나 구토를 여러 번 하고서야 잠이 들었고, 끝없는 복통에 시달리다 결국 식중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물갈이를 된통 한 것이지요. 남편도 수개월 간의 두통이 가라앉지 않아 피검사를 했는데 감염으로 인한 백혈구의 경미한 증가가 눈에 띈다며 몇 가지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타지에 살다보면 여러 어려움들을 겪곤 합니다. 식물을 내는 토양도, 공기도,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 다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 중에서도 지난 몇 년간 끈질기게 저희들을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선교차량입니다. 저희 차는 1995년산 토요타 랜드크루져 하드탑(TOYOTA Land Cruiser 75 Hardtop)을 사파리용으로 개조한 것인데요. 지난 22년간 여러 여행사와 주인들을 거치면서 운행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만을 남긴(?) 노후 차량입니다. 엔진열기가 안으로 마구 뿜어 들어오는 이 거대한 쇠 구조물은 여기 저기 용접한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차 밑바닥은 구멍까지 숭숭 나 있는데다 라디오, 원터치 사륜구동 혹은 에어컨과 같은 디지털 시스템은 눈을 씻고 봐도 없지요. 판스프링이다 보니 오지를 달리다보면 여기는 자갈밭이로구나, , 이곳은 울퉁불퉁 빨래판이네... 하는 식으로 바닥상태가 온 몸에 그대로 감지됩니다. 때로는 달리다 말고 시동이 꺼지는데 살펴보면 엔진 케이블이나 프로펠러가 자체적으로 끊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속도를 낼 때는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지요. 라디에이터는 또 얼마나 잘 터지는지! 타이어 퍼지는 건 일도 아닙니다. 오지에서 그렇게 멈춰버릴 때면 지나가는 피키피키(Pikipiki, 운송용 오토바이)를 세워 부속을 부탁하고, 올 때까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기다렸다가 끼우고, 고쳐서 다시 출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브레이크도 참 말썽이었는데요. 하루는 마람보(Malambo)라는 사역지를 가다가 웅덩이 앞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해 차 내부 지붕에 달려있던 쇠막대기에 정수리를 콱 찍히고 말았습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심장이 멈추는 듯 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만일 찍힌 부위가 조금이라도 더 깊었다면 전 그 자리에서 급사했거나 반신불수가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작년엔 음불룽구(Mbulungu)에서 전도회를 마친 후, 몇 분의 의료진들을 모시고 사파리를 갔었는데요. 브레이크 오일 배관이 파열되면서 차는 손 쓸 새도 없이 내리막길을 달려 곧장 밀밭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여러 봉사자들의 이마에 멍이 들고, 치아가 깨지고, 타박상을 입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손님들이 오시기 전에는 더욱 심혈을 기울여 차 상태를 점검하고, 온갖 스페어를 교체하곤 했는데 그 때 그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떨리고, 참으로 죄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년 6월에는 부모님과 최철수 목사님께서 탄자니아에 오셔서 카라오(Karao)에 있는 한 교회를 함께 방문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꾸역꾸역 이상한 냄새가 올라와 살펴보니 앞바퀴 구동축이 마모가 되어 나는 냄새였습니다. 겨우겨우 포장도로로 나와 푼디(Fundi, 정비사)에게 갔는데 수리 공구라고는 멍키 하나와 중고 타이어 하나뿐이라 부품을 구해 올 때까지 뜨거운 햇빛 아래 수 시간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 모두는 택시를 잡아타고 두 시간을 걸려 집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차를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에쉬케쉬, 그 험난한 사역지를 다녀오는 와중에도 시동이 두 차례나 꺼져 아찔한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에 부모님은 선교 차량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고, 최철수 목사님 역시 귀국 후, 개인적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2주쯤 지났을까요? 한 늦은 오후, 남편과 식탁에 앉아 다이어리를 펴 놓고 회계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차량은 바꿀 때가 이미 지났는데 저희가 가진 후원금을 살펴보니 2017년 하반기 교회 개척과 같은 목적 자금 이외에 차량을 구입할 수 있는 별도의 자금은 역시나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차를 사는 게 쉽진 않겠네.”하며 쓴웃음을 지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인 630. 지난 5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담은 나의 백반일지란 선교소식을 읽으신 김문호 장로님께서 다음과 같은 문자를 주셨습니다. “선교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힘 되는 대로 도우려고 합니다.” 저희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계심을 직감하며 잠시 기도를 마친 후, 떨리는 마음으로 답을 드렸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곧바로 돌아오는 주에 보내드릴게요. 차를 알아보세요.”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저희 두 사람을 감싸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지난 5년간 애끓는 심정으로 늘 노심초사하며 기도해오던 일이 한순간에 응답받는 것 같아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한주가 지났습니다. 탄자니아의 중고차 시세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대부분의 차들이 일본이나 유럽에서 수입이 되는데 일단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항구에 도착하면 본래 차량 값에 110%의 세금이 붙습니다. 따라서 연식이 10년 안팎이면서(2006년 이후) 탄자니아에서 한 번도 팔린 적이 없는 차는 신차로 분류가 되는데 그 값은 보통 3만 불에서 6만 불을 호가합니다. 한마디로 부르는 게 값이지요. 저희는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의 연식에 일본에서 막 수입된 차량을 고르려고 둘러보았는데(이곳에서 1년이라도 굴린 차량들은 많은 수리를 요합니다) 이 또한, 최소 25천불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말씀 드린 가격대보다는 훨씬 웃도는 시세. 그러나 장로님은 이마저도 흔쾌히 들어주시고, 현재 가지고 있는 차를 정리한 후 합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새 차를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장로님. 참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선교차량을 후원해 주신 장로님께 가슴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열흘 후, 최철수 목사님을 통하여 이기문 장로님과 기상도 집사님께서도 차량 지원금을 보내주셨는데요. 이와 같은 지원에 힘입어 굳이 차를 팔지 않고도 선교차량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로님과 집사님께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에 탄자니아에 부름을 받고, 차량이 없어 여기 저기 도움을 청하던 일, 연합회장님의 낡은 승용차를 빌려 타고 다니던 일, 결국 4년 치 월급을 가불하여 첫 승합차를 구입했던 일, 오지 선교지를 배정받고 사륜 구동차량이 필요해 기도했을 때 기적처럼 첫 랜드 크루져를 선물 받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굽이굽이 필요를 채워주셨던 하나님과 협력해 주신 많은 분들을 떠올리며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드디어 새로운 선교 차량을 구입했습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토요타 랜드크루져. 처음, 사막 레이스용으로 출시되었다는 이 차만큼 아프리카 사역에 꼭 들어맞는 차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VX 모델로 8기통, 통 크게 2004년 식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지난 6년 내내, 1990년대 차량만 타다가 2000년대 차량에 탑승해 보니 진일보한 기술의 단계, 자동차 업계의 놀라운 발전상(?)을 체험하는 듯 신기한 게 가득했습니다. 턱을 넘을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지(‘, 지금 턱 넘는다~’ 하듯 온 몸이 진동했는데), 카스테레오로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선율은 또 어찌나 그렇게 아름답고(~ 울리는 엔진소리에 음악은 또 하나의 소음이었지요), 등짝이 뜨끈해질 정도의 부드러운 천과 의자(등받이가 워낙 좁고 딱딱해 등을 떼지도 붙이지도 못했던 아, 옛날이여...). 모든 것이 럭셔리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하나님, 잠시 잘난 척 좀 하겠습니다.”하며 우리, 이렇게 좋은 차 타도 되는 거야?”둘이 눈을 마주칠 때마다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은하 은총이까지 기쁨에 겨워 왕복 1차선의 아루샤를 춘천 가는 길이라 생각하며 처음으로 드라이브까지 즐겼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구 랜드크루져를 정리했습니다. 한 여행사에서 개조해 쓴다면서 사갔지요. 그렇게도 속을 끓이던 차량이었건만 막상 파는 날이 되자 애정 서린 자식을 내어 주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에쉬케쉬 광야에서 합판만 대놓고 그 안에서 잤던 거 하며 어린 쌍둥이 사역지 가는 길에 주먹밥 먹고, 노래하던 일, 때로는 바라바이크 사람들이 토하면서 침례 받으러 가던 일과 지붕 열고 마을버스 마냥 스무 명도 더 태우던 일 등 크고 작은 추억들이 가득했습니다. 몸이 부서져라 가는 곳마다 발이 되어주었던, 사역 현장에서 묵묵히 힘을 다해주었던 한 식구가 떠나던 날, 몹시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밀려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부디 고장 나지 말고, 사고 없이 잘 달려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차량 값은 받자마자 고스란히 탄자니아 현지 월급 통장에 넣어두었습니다. 곧 하자베(Hadzabe) 부족을 위한 교회를 지어야 하는데 이 자금은 에쉬케쉬 옆 지구상 최고의 오지, 기데루(Gideru) 지역의 하자베 부족 개척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구 랜드크루져를 살 당시 큰 도움을 주셨던 조후선 후원자와 고승석 장로님, 그리고 빛고을 교회의 후원이 차량에서 교회 건축으로 이어지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하나님께서 새로이 주신 차량으로 지난 PMM 6년간의 삶을 초석 삼아, 앞으로 연장한 3년간도 새로운 마음과 헌신으로 새로운 선교지들을 개척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웃에게 복이 되는 아름다운 선교사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저희들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 새 선교차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김문호 장로님, 이기문 장로님과 기상도 집사님, 그리고 기도해 주신 부모님과 최철수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의 평안이 함께 하시는 삶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에쉬케쉬에서 침례받을 교우들을 태우는 구 랜드크루져의 모습과 새로 구입한 랜드크루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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