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피소드 하나, 렌트를 할까?

 

아루샤에서 520km 떨어진 키쿰비(Kikumbi).

 

520km의 구간 중 다행히도 400km는 아루샤-탕가 간 국도입니다. 올해로 출고된지 20년을 맞은 저희 차는 비포장 길에서는 강한 탱크 같은 차량이지만, 무게가 육중하여 연비가 매우 낮고(리터당 7km), 최고 속도 역시 100km 남짓, 조그만 언덕이라도 나타날라치면 갑자기 허리에 손을 짚은 노인이 되어 꼬마 승용차에게도 여지없이 추월을 당하는 차입니다. 지압기 마냥 툴툴거리는 기어를 조작하며 클러치를 수도 없이 밟다보면 멀쩡했던 왼쪽 무릎도 성할 날이 없지요.

 

모처럼 왕복 포장 도로가 800km나 되는 이번 선교지 방문. 차 한 대를 렌트해 좀 편하게 다녀올까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았습니다. 히야,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어떤 곳은 하루에 150달러, 친분이 있는 곳에 물어보니 하루에 100달러까지 깎아 준다고는 하는데 3일 거리의 방문으로 따지자니 300불을 고스란히 렌트비로 쓰기에는 너무나 아깝네요. 결국, 그냥 저희 차로 출발을 했습니다.

 

원래는 탕가라는 도시에서 사역자 및 침례 예정자 10명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비포장 길 여행은 아예 없을거라 생각하고 차를 빌리려던 참이었는데 탕가에서 맞은 안식일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사정이 생겨 탕가로 못내려 가겠습니다. 키쿰비까지 좀 와주세요."

 

인도양을 낀 탕가를 벗어나니 구불구불 꽤나 높은 산이 나타납니다. 이런데도 사람들이 사나 싶을 정도인 산턱에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는 마사이들.

 

다 오르고 나니, 렌트를 해서 이륜 구동 차량으로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번뜩 아슬한 생각이 스칩니다.

 

만일, 탕가까지만 오리라 생각하고 렌트를 했더라면,

이 100km 험악한 산길을 오르는 건 아마 불가능했겠지.

그렇다면 탕가까지 와서 선교지는 가보지도 못한채 눈물을 머금고 아루샤로 올라와야 했을꺼아.

 

모든 일정을 손바닥에 놓고 보시는 하나님께서

차량 렌트 대신 불편한 저희 차량을 가지고 오게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2. 에피소드 둘, 잠만 잘와요.

 

사역지인 키쿰비까지 500km를 달리다보니 낡은 엔진 소리가 바람 소리와 맞물려 기막히게 데시벨을 올려줍니다.

인도양이 가까이 올수록 높아지는 습도.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는 고물 자동차 안의 후덥지근함.

고스란히 허리 척추 사이사이로 전달되는 자갈밭 위의 기운찬 출렁임.

길가에 휴게소는 커녕 화장실 하나 찾기 힘든 아프리카의 고속도로.

결국 우산 나무(Umbrella Tree: 우산처럼 잎이 드리워져 그늘을 만드는 나무) 아래서 모든 용변을 해결하고

배고픔은 싸가지고 나온 주먹밥과 물로 달래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휴게소에서 뭘 먹을까 게임하자!"

나는 호두과자, 너는 잔치국수, 나는 뻥튀기, 너는 식혜!!!

즐거움도 잠시,  10초도 안되어 미칠 듯이 배가 고파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어른도 참기 어려운 길 위에서 아이들만큼은 끄덕없이 그것도 즐겁게 견뎌낸다는 것입니다.

 

ㄱ, ㅈ 초성이 달린 낱말 맞추기, 아! 알았다, 과자!

흘러나오는 노래  신나게 따라 부르기, "옛날 옛적 하나님이 빰빠라빰빠 빰빰빰"

그러다 비포장이 시작되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온 차체가 심각하게 흔들리는데도

아이들은 이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합니다.

토하는 법도 없고, 마치 하얀 이불이 깔린 마루에서 잠을 자듯 스르르 잠이 드는 것입니다.

 

힘든 길에선 오히려 잠을 재우시는 하나님.

한숨 잘 자고 일어나서는 바오밥 나무 아래를 뛰어다니며 마사이 아이들과 한바탕 노는 아이들.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고백합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신다면 어디든 가오리다.'

 

#3. 에피소드 셋, 산 속에서 홀로 일하신 하나님

 

이곳 키쿰비는 미국의 노귀환 목사님의 후원으로 알파요(Alphayo)라는 사역자를 파송하여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너무나 거리고 멀고, 어떤 식으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지 지난 10개월 간 전혀 보고가 없어 저희는 내심 이번 방문을 끝으로 후원을 중단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매일 아침, 사역자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 산중턱에 흙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를 보고 저희 부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인이 한 명도 없었던 그 황무지 같은 미개척지에서 작년 12월,  25명의 마사이들이 침례를 받은 후

한 사람 한 사람 나무를 엮어 뼈대를 만든 교회 틀 위에 일일이 붉은 흙을 개어 발라 함께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내부 의자 역시 얇지만 튼튼한 나뭇가지를 엮어 기가 막힌 솜씨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회 밖까지 들려오는 선창, 후창으로 맑게 울려 퍼지는 마사이들의 합창 소리,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알파요 사역자의 전도를 통해 인근 루터 교회의 유력한 교회 지도자와 찬양대장, 그리고 그곳의 평신도 사역자가 모두 우리 교인이 되었답니다. 특별히 루터 교회의 평신도 사역자는 침례를 받은 즉시, 키비둘라(Kibidula)에 있는 저희 재림교단 사역자 훈련원으로 파송되어 3개월간의 훈련을 받은 후 알파요 사역자와 함께 키쿰비 교회의 무급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산중턱에서

조용히 홀로 이루신 하나님의 일을 들여다 보는 것은 대단히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과연 Missio Dei, 미시오 데이.

선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삶과 사역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저 뒷짐지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잘했는지 못했는지 관찰했다 벌주시는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계획으로

모든 필요를 채워가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이 지역 사역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지역의 모든 이들이 교회를 꽉 채우는 그 날까지 아낌없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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