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밥을 주물주물 비벼 주먹밥 세 덩이를 싸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이

먼지 나는 비포장 길 위에 사정없이 쏟아지기 전

일찌감치 움직이는 게 상책입니다.

 

이제 한 해만 더 타면 출고 된지 스무 해를 채우는

강이든 산이든 자갈밭이든 광야든 줄기차게 내달리는

랜드 크루져(Land Cruiser).

 

달리다 보면 문짝 어딘가에서 못도 떨어져 나가고

타이어 림에 끼워진 너트들도 죄다 어디론가 다 도망가 버리고

보닛 속 차량용 배터리마저 용접 부위가 흔들흔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 뼈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입니다.

 

팝아트 전시장에서나 봄직한

기괴한 모양의 폐차들.

 

없는 게 없는 중고 스페어 시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구입해

보름이 멀다하고 정비소에서 고쳐대지만

움푹 움푹 패여 날카로운 돌들이 춤을 추는 아프리카의 도로는 인정사정 없습니다.

 

주먹밥을 쑤셔 넣는데 들려오는 저 낯익은 소리.

~~ 또 어디야?

가던 길을 되돌아 길거리 푼디(정비사)에게 7천 실링(5천원)건네고

브레이크에서 빠져버린 너트를 끼웠습니다.

 

괜찮겠지?

한참을 달리는데 또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 하나님.

푼디는 뭐한 거야?

너트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두 군데 너트를 끼우는 홈이 삭을 대로 삭아 너트를 붙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나마 딱딱한 고무줄로 어찌어찌 이었지만

그마저도 끊어져 버린 후

기름마저 샌 브레이크를 덜덜덜 달고

결국 오른쪽 브레이크를 완전히 제거하고는

세 바퀴의 브레이크에 의지해

집 나간 지 4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 할 일도 많은데 난 오늘 뭘 한 건가...

 

지방 공무원 만나 편지도 전달하고

지역장 목사님 만나 전도회도 의논하고

사역자들 한 달 치 봉급도 줘야하는데

그냥 되돌아오다니?

 

“Hello?"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우물 시추를 위해 서베이(survey)를 의뢰했던 회사였습니다.

 

차량이 준비되어 오늘 서베이를 위해 에쉬케쉬로 가겠습니다.”

 

우물 서베이!!!

이 일을 위해 올해 2월부터 기다렸습니다.

 

미국에서 소중한 후원자가 나타나 기뻐한 것도 잠시.

 

답답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의 느릿느릿 아프리칸 타임과

(Africa의 시간개념, 이곳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Haraka haraka haina baraka/서두르면 복이 없다.)

아무도 전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알 수 없는 현실이 더해져

주혈흡충으로 고생하는 현지인들을 보며 속만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도 사무실을 잘못 찾아갔다가

서베이 회사를 선정하게 되었고

드디어 아무 일도 못한 오늘

5개월을 기다렸던 우물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는 이번 주 서베이 팀과 문제의 우리 랜드 크루져로 함께 가려고 했었거든요.

같이 가다 브레이크 파열로 그 지경에 도로 위에 서버렸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희 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서베이는 서베이 대로

저희 차는 저희 차대로 방향을 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멈추어도 하나님의 사역은 진!!! 입니다.

지휘자의 총보는 지휘자에게 있듯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사역은

오직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침 일찍 정비소에 갔는데 

어제 중고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브레이크, 사이즈가 안 맞아서 다시 바꾸러 간다구요.

 

에고고...

오늘도 차 수리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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