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물을 뜨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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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샤에서 가지고 간 물은 아껴서 아껴서 식수용으로만 쓰다보니 적어도 손과 입을 닦고 밥그릇을 씻기 위한 물이 필요해 길을 나선 것입니다. 3~5월까지는 대우기라고 말들 하는데 단 하룻밤만 빗물을 받았습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다가도 어느새 활짝 개 버리는 이곳 날씨가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바짝 말라버린 땅 바닥에서는 하염없는 흙먼지만 피어오릅니다.

 

몇일 전 추장님은 이유가 더 있겠지만 고여있는 물을 마시는 탓인지 부족 여성들과 아이들의 오줌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며 쯧쯧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물통을 자전거에 싣고,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오부유(Obuyu, 큰 나무에 달리는 길쭉한 열매로 분홍빛 천연색소를 묻혀 간식으로 먹는데 달콤하면서도 신 맛이 남) 나무 아래로 물 웅덩이가 3곳 있었습니다. 슬쩍 보기에도 물가 언저리 흙색과 똑같은 물인데 물인지 진흙탕인지 모를 이 물을 마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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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부족 한 사람이 자신의 슈카(몸에 두르는 천)로 휙휙 양동이 고리를 잡고 올려주는 물을 받아 자전거에 다시 싣습니다. 이 사람은 'Maji hi safi sana'(아, 이 물 참 깨끗합니다!) 하며 빙긋 웃습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먹는 가장 깨끗한 웅덩이에서 퍼 올렸다는 뜻입니다. 멀리서보면 흙탕물 같지만 양동이로 몇 번 휙휙 저어 뜬 물은 그나마 연두빛을 띄었네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알 수 없는 이물질이 물 한 가득 둥둥 떠 있습니다.

 

장막에 도착하자마자 다 쓴 페트병으로 즉석 정수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밑 바닥은 칼로 반듯하게 잘라내고 일단 페트병을 뒤집었습니다.
주둥이가 있는 페트병 맨 밑에 북 찢은 런닝셔츠를 쑤셔 넣고, 시장에서 구입한 부엌용 숯(이곳은 전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나무나 숯으로 불을 지펴 요리함)을 잘게 부순 후 채우고, 웅덩이 근처에서 가져온 모래와 작은 돌들을 그 위에 차례차례 얹은 후, 고운 흙을 다져 맨 위에 부었습니다.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 후 아까 웅덩이에서 퍼 온 물을 붓자 잠시 후 똑. 똑. 똑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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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든 사람들에게 작은 컵 1/5이 채워진 물을 보여주니 단박에 입으로 가져가 벌컥 마십니다. 주변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단순한 방법으로 냄새도 안나고 색깔도 투명한 물을 만드니  마실만 한지 "Vega amias!(물 정말 좋네!)" 하며 오른손가락을 치켜 들고 손뼉을 칩니다.

 

내친김에 3리터짜리 페트병 96개를 구입했습니다(이 일을 위해 후원해 주신 진접의 전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왕이면 페트병 2개를 겹쳐 4회 정수가 이루어지게 하고, 이렇게 받아진 물은 꼭 끓여서 마시라고 일러둘 참입니다.

 

혹시 더 정교한 정수 방법에 대해 아시는 분께서는 댓글에 조언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라바이크 부족들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님과 피가 섞이지 않은 오줌을 쌀 수 있도록 섭취 가능한 깨끗한 물 이 모두가 필요합니다.

 

바라바이크 부족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