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쉬케쉬(Eshkesh)에서 70에이커의 땅을 기증받다

다음 사역지인 에쉬케쉬 평원으로 이동하는 길은 하이돔에서도 1시간 반을 내리 달려야 하는 먼 길입니다. 깎아 지른 듯한 급경사 길은 온갖 날카로운 자갈들로 덥혀 있어 사륜에 락(lock)을 걸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도 마음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한참 동안 뱀이 차 앞에서 스르르 몸을 피하는 극도로 건조하고 황량한 평야길을 달려서야 드문드문 사람 키보다 낮게 지어놓은 바라바이크의 땅, 에쉬케쉬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가자마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분이 있었으니 바로 에쉬케쉬에서 17년간이나 마을 지도자로 존경받은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저희가 오기 바로 전날, 그리고 그 전전날 두 번의 마을 회의를 통해 결정된 땅이 있으니 그 땅을 보여주겠다며 차에 올라탔습니다. 일찍이 마을 의회의 존경받는 구성원인 마리암 사모 목사의 아버지에게 저희 사역을 말씀드렸기에 그분을 통해 평신도 사역자를 파송하고, 한국에서 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교를 짓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린 터이긴 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진행된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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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슈카를 걸친 분이 바라바이크 마을 어르신, 기증해 주시는 땅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사실은 알지 못한 채 그저 사역자들의 거할 집을 찾으러 간 저희로서는 벌써 땅이 확보되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널따란 땅은 먼 곳의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70에이커(85,000)나 되는 넓은 땅, 이 땅을 바라바이크 부족으로부터 기증받게 된 것입니다. 다시 차에 올라타 그 경계를 따라 조심스럽게 둘러 보았습니다. 어르신은 저희는 학교가 필요합니다. 이곳에 Waadventista wa Sabato(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교회와 학교를 지어주길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어르신은 두 명의 사역자가 우리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합니다. 보다시피 이 에쉬케쉬에는 살 만한 공간이 달리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먹고 자도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르신의 말 속에는 우리 부족원에 대한 당신들의 모든 선교활동을 이 마을을 대표하여 허락하고 지지합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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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받은 땅 전경, 가운데 멀리 보이는 나무를 중심으로 보이는 전체가 교회와 학교 부지-

 

비록 전기도 없고, 물도 메마른 땅. 사람 키보다 낮은 얼기설기 나무 집에서 소가죽으로 만든 잠자리 위에 몸만 달랑 누일 수 있는 집! 그러나 이곳 마을 어르신 집에서 복음의 불씨가 타오른다면! 이 마을, 에쉬케쉬에 거주하는 500명의 바라바이크 사람들에게 그리고 접경의 하자베 사람들에게 복음의 용광로가 흐를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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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어르신의 집, 두 사역자가 머물 공간-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앞서 보내시어 모든 것들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개척 사역지.

선교사는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길을 걷는 듯 하지만 끝내는 가장 환한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이제야 이 역사에 동참하였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바라바이크와 하자베를 위한 구원의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라바이크 사람들과 그들의 가정에서 몸을 부비며 살아갈 네 명의 평신도 사역자들과 중간지점에 거주하며 에쉬케쉬에 교회 그리고 나아가 학교를 짓게 될 저희 가정을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는 기도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