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 되면 잔지바르의 모스크는 머릿수건을 쓴 여성들과 남성들로 꽉 찬다. 달이가고 해가 갈수록 금요일의 모스크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슬람 특유의 땅에 머리를 박고 절을 하는 의식 때문에 그들의 이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흙이 묻어 있다.

 

옷가게를 하고 있는 올해 42살의 압달라 모하메드 술레이만씨는 "다당제로 얻은 것은 혼란과 비극밖에 없다. 유일한 대안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일당체재로 회귀하는 것 뿐이다. 이슬람은 잔지바르의 모든 영혼들을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고 말한다. 즉 잔지바르의 정치적 혼란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원리주의자들은 이슬람식 율법이 민주주의보다 훨씬 우월한 체제이며 정치 지도자들에게 바른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대안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잔지바르의 이슬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압달라 사이드 알리는 "지도자들을 사람의 손으로 뽑는다는 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이같은 이데올로기적 진공상태를 이슬람 시스템으로 대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탄자니아라는 나라는 원래 잔지바르섬과 육지 쪽의 탕가니카가 합쳐지면서 세워진 나라이다. 그러나 탄자니아의 정부는 이슬람에 대해 배타적이어서 외국인 이슬람 선교사들의 입국과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잔지바르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속적이고 타락한 정부인 것이다. 각국에 주재하는 대사관은 이슬람 선교사들의 입국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에 의해서 탄자니아의 안보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인정받고 있는 단체에 속한 선교사들만 입국를 허용하고 있으며, 그것도 입국 6개월 전에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반면 잔지바르는 이슬람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탄자니아 전체적으로 보면 3600 만 명의 전체 인구 가운데 44%가 기독교인이고, 34%가 이슬람 신자여서 기독교인의 수가 이슬람 신자의 수보다 꽤 많은 편이지만, 잔지바르만 놓고 보면 이슬람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지역에서 이슬람 신자들의 수를 확산시키고,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를 설파하는데 특히 결정적으로 공헌하는 사람들은 파키스탄에서 온 선교사들이다. 그들은 사회와 정부가 이슬람화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비즘에 가까운 이슬람 사상을 전파하며 반미까지 부추기고 있다.

 

요즘 금요일의 예배에서 반서구, 반이스라엘의 선동적인 구호를 듣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다. 강경이슬람 주의자들은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불법적으로 외국의 군대에 점거당한 땅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사람들을 돕는 것은 모든 이슬람 신자들의 의무라고 선동하고 있다. 사우디나 다른 아랍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젊은이들이 대거 반미 지하드에 참여하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잔지바르의 젊은이들까지 이 지하드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잔지바르의 익명을 요구한 한 온건 성향의 이슬람 성직자들은 분명한 근거는 없지만 잔지바르의 젊은이들이 조직적으로 이라크에 공급되고 있을 가능성은 없지 않으나, 워낙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잔지바르의 주민들, 특히 이슬람 신자들에게 반미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은 1998년의 탄자니아와 케냐의 미대사관에 대한 차량폭탄테러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다수의 잔지바르의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알카에다이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잔지바르 젊은이들을 물색해서 거사에 가담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은 잔지바르의 젊은이들이 개입된 첫 번째 테러사건이었고, 그만큼 잔지바르 주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컸다.

 

"잔지바르의 이슬람 문화가 원래부터 이렇게 과격했던 것은 아니다. 과격 이슬람은 외래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잔지바르 문화는 페르시아와 아랍, 인도, 포르투갈, 그리고 인근 아프리카의 영향을 골고루 받으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전혀 과격하지 않았다." 잔지바르의 저명한 이슬람 성직자이자, 역사가인 말림 모하메드 이드리스 살레는 말한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주민들을 지도하면서 성직자들이 이슬람을 정치적인 대안으로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에 공감한 주민들의 헌금을 기반으로해서 과격이슬람 사상이 태동하고 확장하게 되었다. 1970년대만해도 이슬람 과격주의는 물론 이슬람 자체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슬람 지도자들은 학교나 사원 등 도처에서 주민들을 가르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잔지바르는 아프리카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영향력을 주고 있는 땅이 되었다. 사실 잔지바르의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은 한동안 별로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노예무역, 이슬람, 기독교, 식민통치,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언어인 키스와힐리어가 이 섬을 통해서 아프리카로 유입되었을 정도로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이 대단했었다. 이제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에 대한 주춤했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면서 이슬람 강경원리주의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강력하게 밀어 넣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천혜의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은 반팔, 반 바지, 민소매 등 거의 반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활보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이같은 광경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동성간의 결혼식 비슷한 행사를 계획하던 동성애자 커플이 4명의 이슬람 성직자들에 의해 맞아 죽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들은 벌금을 선고 받았으나 법정에서도 전혀 유감이나 반성의 표명 없이 오히려 자신들을 검거하고 재판한 경찰과 법관들에 대해 저주의 말을 퍼부을 정도로 당당했다. 잔지바르는 급속하게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개신교 선교저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잔지바르를 위한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