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다보니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한국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56일 일정으로 킬리만자로 산을 등반한다는 현석씨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요. 잠바 왼쪽에 선명하게 박힌 태극기’, 뚜벅 뚜벅 걸어와 아이들이 한국말을 하길래요. 혹시 한국 분들이세요?’라고 인사하는 현석씨를 만난 순간 우리 가족은 마치 친한 고향 동생을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집 떠난 지 3개월이 흘렀고,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라면과 김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괜스레 마음마저 짠해져 하산 하는 대로 연락하라며 집주소까지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과연 연락이 올까.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과의 대화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 정말 아프리카의 지붕에서 내려온 현석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일본인 친구 타카씨도 함께요. 전화를 끊자마자 부랴부랴 비빔밥을 준비했습니다. 6일 내내 비를 맞으며 산을 타느라 온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한데도 후루룩 미역국과 비빔밥을 폭풍 흡입하는 모습을 보니 선뜻 오라고 하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먹는 내내 진지한 표정을 짓던 일본인 타카씨가 주섬주섬 수첩을 꺼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미리 써 왔는지 다섯 가지 질문이 있다며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들이란 대략 어떻게 탄자니아에서 선교를 하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은 누구시며 그분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법 심오한 것들이었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세일즈맨이었던 자신이 도쿄(Tokyo) 생활을 접고, 1년 째 지구를 여행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인생에 뭔가 놓친 부분을 찾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그 부분이 만일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면 그분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히 개인주의 성향에 종교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일본인이 실은 이토록 진지한 구도자(求道者)였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펴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변변찮은 답변을 일일이 수첩에 옮겨 적는 그를 보며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지혜로운 말을 주시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당신이 찾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그 즉시 자신의 아이패드(iPad)에 일본어 성경 어플리케이션을 깔고는 당일 저녁, 창세기부터 통독을 시작해 다시 한 번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다음날이 바로 안식일인데다 마침 모시(Moshi)에 있는 교회에 초청을 받아 아침 일찍 나가야 했기에 현석씨와 타카씨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편할 대로 일정을 이어가도 되고, 함께 교회에 다녀와도 좋겠다고 솔직히 상황을 설명했더니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에 같이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10)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녁으로 대접한 뜨끈한 라면에 김치, 그리고 간만의 옷 세탁까지! 두 사람은 모두 늘 싼 캠핑장을 찾아다니며 텐트에서 잠을 자거나, 직접 장을 봐다 백패커스(Backpackers, 직접 식사를 해먹는 저렴한 숙소)에서 대충 끼니를 때웠던 터라 그저 흰 이불을 덮고 자는 것, 그리고 따뜻한 누들(noodle) 한 그릇에 김치 한 조각 먹는 것이 진짜 소원이었다며 고마워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오히려 코딱지만 한 환대에 과하게 감동하는 손님들 반응에 어리벙벙히 서있는 저희를 보며 타카씨가 이런 말을 덧붙였지요.

 

제가 기독교인(Christian)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미국 여행 중이었어요.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을 보고 제가 물었지요. 당신들은 왜 낯선 이방인에게 이리도 친절하냐고. 대게 우리 일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속마음을 꺼내어 고민을 털어 놀라치면 오히려 왜 나한테 네 이야기를 하느냐,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라.’며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궁금해 하는 저에게 한 미국인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저희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 그 뒤로 한 질문이 떠나지 않더라구요. 대체 기독교인은 누구일까.”

 

유난히 긴 탄자니아의 안식일 예배. 오후엔 30명이 넘는 사람들의 침례식에 한 어린이 봉헌식까지 거의 오후 4시가 되도록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계속된 순서에도 끝까지 인상 하나 찌푸림 없이 여느 재림청년처럼 함께 예배를 드린 타카씨와 현석씨. 예배 시간 내내 어찌나 아이패드의 성경을 열심히 들여다보는지... 오랫동안 무신론자로 살았다는 현석씨도 , 저도 계속 성경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라며 재림신자 못지않은 평안을 누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와중구(외국인) 곁을 떠나지 않는 아이들과 모시 중앙 교회(Moshi Central Church)에서 마지막 사진 한 컷을 남긴 타카씨와 현석씨. 그들은 이튿날 아침, 새벽에 싼 주먹밥과 사과를 하나씩 들고 나이로비 행 셔틀 버스에 올랐습니다.

 

저희 인생에서 그 두 사람을 이곳 아루샤 집에 초대할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겠지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현석씨 그리고 타카씨와의 만남.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그 누군가는 사실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단 한 사람도 소홀히 여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혹시 한국 분이세요?’ 라는 짧은 질문 안에, 낯선 여행자에게 보이는 작은 친절 안에 하나님은 한 영혼을 향한 그분의 애절한 여정을 이어 가신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거리에서 만나게 될 누군가에게 이렇게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하나님을 찾고 계시나요?’

전혀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 누군가에게서 이런 대답을 들으실지도 모릅니다.

'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진정한 관심과 친절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고 싶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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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인사하는 타카씨와 현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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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두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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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침례식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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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 중앙 교회 지도자분들과 함께 한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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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아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