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야기

 

오늘도 엄마는 빈 흙집 앞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바지런하고 다정했던 딸, 양동이 가득 물을 길어오다 이내 갸우뚱 거리던 걸음걸이며, 매캐한 숯 그을음에 콜록 이면서도 나무 의자에 앉아 기어코 우지(Uji, )를 끓이던 딸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엄마의 어깨만치 키가 자라 어린 동생들도 버쩍 버쩍 업어 키우던 어린 딸. 이제는 그 딸이 집에 없습니다. 소가 안 보인다, 왜 이렇게 늦었냐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작대기를 휘두르고, ‘여자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니 더 나쁜 짓을 하기 전에 때려야 한다.’며 매질을 일삼던 남편의 폭력 앞에서도 절대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던 엄마인데 오늘은 어쩐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공고(Gongo, 사탕수수를 발효하여 만든 술)에 찌들어 퀭한 눈으로 소떼만 살피고 서있는 저 남자. 저 인간 때문에, 그놈의 소 때문에 그리고 그 빌어먹을 가난 때문에 내 딸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부르르 치가 떨립니다. 남편을 떠나 산다는 건 상상도 못했었는데 오늘은 이만 안녕을 고하고 싶습니다.

 

딸의 이야기

 

어느 오후, 전 마른 옥수수를 자루에 담고 있었지요. 가축 댓 마리가 고작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곳에 시집 온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그날은 12살이 되던 제 생일날이었는데 아빠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아저씨가 우리 집에 다시 찾아왔더군요. 자루에 넣던 옥수수 알갱이가 자꾸만 바닥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아저씨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옆집에 살던 제 친구도 그렇게 집을 떠났거든요. 가끔 집으로 찾아오던 아저씨 손을 잡고... 엄만 아저씨를 보자마자 저를 붙들어 부엌으로 데려가더니 꺼이꺼이 목을 놓아 통곡 했습니다. 아저씨가 가져온 소 열 세 마리는 제가 자던 방 옆, 축사로 옮겨졌습니다.

 

전 그렇게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아름답던 고향 키부코니(Kivukoni)를 떠나 항구가 가까운 마을, 코로그웨(Korogwe)로 시집을 왔습니다.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아저씨, 아니 내 남편은 이미 아내가 다섯 명이나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나이든 아내는(전 큰 엄마(마마 쿠브와, Mama Kubwa)라고 부릅니다) 키부코니에 있는 우리 할머니를 닮았습니다. 전 집안일을 하며 지내는데 가끔 양들이 비실거리거나 웅덩이 물을 떠다 놓는 것을 깜빡하면 엄마가 그랬듯 저도 매를 맞습니다. 남편은 개를 치는 작대기를 잡아 제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고는 침을 퉤 뱉습니다. 어두운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보마(Boma, 마사이 가옥)를 찾아오는 남편의 그림자를 보며 전, 빈 흙집 앞에 앉아 울고 있을 엄마를 생각합니다. 검은 주름 사이로 서럽게 눈물을 훔치고도 늘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던 엄마. 엄마 인생이 내 인생과 포개지는 오늘, 엄마가 가슴 저리도록 그립습니다.

 

응가이테테이(Ngaitetei)의 이야기

 

응가이테테이(Ngaitetei) 역시 키부코니(Kivukoni) 출신의 18세 소녀입니다. 수년 전, 소를 팔고 돌아오는 길, 구불거리는 동네 어귀에서 돈을 노리는 마을 사람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 엄마, 두 여동생, 그리고 오빠와 함께 살아왔지요. 어느 날, 모태부터 재림교인이었던 응가이테테이에게 마사이 출신인 라이자(Laiza)라는 목사님께서 한 후원자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은 오랜 지병 끝에 숨을 거두셨고, 학비를 낼 길이 없던 응가이테테이는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온 응가이테테이를 기다리고 있던 건, 충격적이게도 소 30마리와 소녀를 점찍어둔 한 남자, 그리고 돈에 눈먼 큰 아버지였습니다. 응가이테테이의 어머니는 즉시 교회로 달려가 이 소식을 차로(Charo) 사역자에게 알렸고, 그날 밤, 소식을 들은 북 탄자니아 연합회장이신 레쿤다요(Lekundayo) 목사님은 사역자 편에 차비를 보내 응가이테테이가 원래 다니던 파라네 삼육중학교(Parane Adventist Secondary School)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엄마로부터 끔찍한 소식을 들은 건, 학교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응가이테테이, 네 큰 아버지가 지난번 왔던 그 아저씨에게 둘째를 시집보내고 말았다.” 결혼할 뻔했던 그 날, 가까스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던 응가이테테이를 대신해 고작 13살 밖에 안 된 여동생이 60살도 훌쩍 넘은 할아버지에 팔려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올라이리타니, 탕아푸 엔가나셰아이”(Olailitani, tang'afu enganasheai, 목사님, 제발 제 동생 좀 살려주세요.) 이제 세 딸 중, 마지막으로 남은 막내 동생인 11살 마리암 좀 살려달라는 응가이테테이의 전화가 종일토록 울리던 날, 레쿤다요 목사님은 다시 파라네 삼육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셨고, 마리암은 차비를 받은 후, 학교의 배려로 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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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부코니에서 만난 응가이테테이 가족(왼쪽부터 오빠, 어머니, 응가이테테이)


저희는 그로부터 얼마 후, 직접 키부코니를 방문해 응가이테테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마사이 소녀 두 명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이 소녀들 역시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소와 인생을 맞바꿀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지요.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즈음 저희 수중에 미리 이 백 만원을 준비해 주셨는데 이 자금은 신기하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 소녀의 1년 치 학비와 꼭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중에는 지난해 이맘때쯤, 똑같은 사연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아니타(Anitha)라는 소녀를 도와주셨던 광주의 한 교회에서 보내주신 자금과 학비/**” 이렇게 목적을 명시해서 후원금을 보내주셨던 전혀 모르는 분의 후원자금, 그리고 젊은 의사 부부가 어느 날 보내온 자금 등이 합쳐져 있었습니다.

 

우두커니 딸을 보내고, 흙먼지가 이는 먼 길을 바라보며 사무친 피눈물을 쏟아내는 어머니를 헤아리사 마사이 소녀들의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눈물지을 이 땅의 어머니와 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악습을 단번에 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마당을 뛰어놀며, 꿈을 꿀 어린 소녀들에게 작대기를 들이대고, 소의 숫자를 세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사이 마을의 어린 소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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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부코니 교회 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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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도움을 주게된 두 소녀, 위는 엘리자 마닝고 다니엘(Eliza Maningo Daniel), 아래는 레이첼 야코보 사낭가이(Rachael Yakobo Sanang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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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부코니의 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