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살가운 아침, 흙과 소똥을 이겨 만든 초라한 마사이 가옥 앞에 노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바바 멜리요(Baba Meliyo, 멜리요 할아버지). 뼈만 앙상히 남은 가녀린 육체와 이 자그마한 집터가 할아버지의 전 재산입니다. 높다란 메루 산(Mt. Meru) 자락의 키오가(Kioga)라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 한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왔지만 젊은 날부터 입에 대기 시작한 공고(Gongo, 사탕수수로 발효한 술)는 할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술에 정신을 잃고 사는 날이 늘어갈수록 빚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만 갔고, 할아버지는 결국 십여 년 전, 매일같이 치근덕거리는 빚쟁이들에게 소중한 땅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부터는 다리마저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걷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둥그런 나무 의자에 앉아 하늘과 손짓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무릎으로 기고 기어 가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늘그막 할아버지의 모진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이 댁에 닭장을 마무리 짓는 날. 시장에 들러 중고 밀가루 포대 25장과 문에 달 경첩 그리고 잠금장치를 하나 샀습니다. 어제 종일토록 애를 쓴 끝에 닭장은 거의 완성이 되었습니다만 족제비나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일이 못질을 하여 닭장 내부를 막아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이 혼잣말로 멜리요 할아버지 댁을 보니까 배부르게 먹는 밥도 죄스럽다.”하는 소리를 듣고는 검은깨와 들깨 조금, 슈카(Shuka, 마사이 천) 두 장, 할머니가 입으실 옷가지도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시장에서 산 쌀과 밀가루, 곡식 가루와 함께 할머니 손에 놓아드리니 와토토 양구, 아쉐 렝가이(Watoto yangu, ashe Lengai. 아이고, 내 자식,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시며 연신 제 볼에 뽀보를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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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옥 앞에 멜리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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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어 굶는 일이 다반사인 할아버지 댁에 닭장과 닭을 선물하려 합니다


남편의 희끗희끗한 새치 위로 포대자루 속 새하얀 밀가루도 함께 내려앉는 닭장 안에서 연신 못질이 이어지는 동안 저는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코코, 와토토 하와쿠자 늄바니?”(Koko, watoto hawakuja nyumbani? 할머니, 자식들은 종종 집에 와요?)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살포시 짓는 미소로 저를 당신 옆에 붙들어두던 할머니는 갑작스런 질문에 대번 어깨를 움츠리고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장성하여 집을 떠나서는 부모를 찾지 않는다고 숨죽여 이야기합니다. 부모를 찾지 않는다... 사실 할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두 고아를 입양해 키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50년 전, 할머니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아이를 못 낳는 여자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자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집안사람, 부락민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반대하며 나섰습니다. 일부다처제인 마사이들에게 여자 하나 버리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멜리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귀와 두 눈, 두 입을 막은 채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두 번째 아내도 얻지 않고 말입니다. 멜리요 할아버지의 첫사랑, 할머니는 땅을 전부 날리고 난 후, 갖은 품팔이를 하여 두 아이를 키워 냈지만 이제 남은 건 떠나버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뿐, 그 뿐입니다. 50년 전, 할아버지에게로 왔던 그때처럼 이제 다시 오롯이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할아버지 옆에 할머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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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경첩을 달고, 자물쇠까지 채웠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마음이 왜 이리도 아픈 걸까요. 이틀 만에 뚝딱 지은 닭장이 평생 사신 가옥보다 더 좋아 보입니다. 오자마자 집에서 가져간 물건들을 넣어드리려고 가옥 안을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집 상태가 형편없습니다. 여럿 마사이 가옥들을 가보았지만 이리도 철저히 비어 있는 집은 할아버지 댁이 처음입니다. 바로 입구에 할머니의 부엌(마사이들의 가옥은 원래 여자들의 공간으로 부엌과 침실이 함께 있습니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변변한 식기류 하나가 없습니다. 나뒹구는 플라스틱 그릇 몇 개가 고작입니다. 어디서 주무시는지 여쭤보자 그 흔한 소가죽 하나 깔려 있지 않은, 사람 몸뚱이 하나 겨우 들어갈 법한 장소를 가리키는 할머니. 할머니는 제 귀에 입을 대고는 여기선 할아버지만 주무시고 본인은 밤마다 혼자 사는 다른 코코(할머니) 집에서 잔다고 속삭이시네요.

 

이제는 닭장이 아니라 멜리요 할아버지 댁을 지어드리려 합니다. 오직 서로를 의지하여 반백년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밤에라도 함께 누워 주무실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이 사랑스러운 노부부도 아름다운 본향의 예비된 저택(a mansion, 14:2)’을 선물로 받으시겠지요? 부디 저 하늘에서 영원한 삶을 상속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늘에서는 할아버지의 굳어버린 다리도 새로운 생기를 되찾고, 작고 가녀린 할머니의 어깨에서도 덩실덩실 봄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멜리요 할아버지 댁 닭장을 위해 도움을 주신 허인자 집사님, 박경희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아버지 방 건축을 위해 도움을 주실 강철 집사님, 그리고 정덕인 집사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멜리요 할아버지 댁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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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리요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늘 건강하세요, 저희들이 있으니 외로워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