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야, 은총아.

 

한국으로 가기 4일 전, 은하가 엄마한테 건넸던 이 그림, 기억나니?

언뜻 봤을 땐 만 4살 아이치고 그림 실력이 꽤 뛰어나다(?)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들여다 볼수록 마음이 아리고 짠했단다.

 

아프리카의 엄마-아빠

한국의 은하-은총

 

3월 25일부터 8월 22일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떨어져 지낼

은하와 은총이의 마음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부모와 "완전히 분리된" 모습으로 밥을 먹는 이 그림 한 장.

 

그렇게나 보고 싶던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이틀을 보냈을까.

방문오셨던 목사님과 교우님들이 가실 채비를 할 때

작은 방에서 사탕 갯수를 세던 너희들.

 

탄자니아에서 아이들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pipi(사탕)을 나누어 주던 꼭 그 모습으로

어른들께 사탕을 드리고는

 

"엄마, 내가 사탕을 드리고 싶어서 드린게 아니야."

"그래? 그럼 왜 드렸어?"

"하나님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그런거야."

 

듣고 있던 할머니도 엄마도 뜻밖의 말에 눈시울을 붉혔단다.

 

그래, 늘 그렇게 하나님 마음이 네 안에 있었으면 좋겠구나...

 

얄궂은 시간은 활처럼 지나가고

밤 비행기를 기다리던 날.

부쩍 말도 줄고  엄마 옆에 성큼 다가오지 않는 너희들을 보며

다들 눈물을 꾹꾹 삼켰지.

 

"할머니, 나 어제밤에 유리창 보면서 응응응 하고 울었어요."

 

현관문 앞에서도 눈물만 가득 고인채 손을 흔들던 은총이가

그렇게 울었다는 말에

엄마는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렸단다.

 

나이로비 공항에 나온 아빠를 만났는데

늘 엄마아빠 엉덩이 근처에서 조잘조잘 쉴새없이 노래하던

너희들이 없는 아프리카는 정말이지 낯설었다.

 

음바라라에서 콩고의 정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함목사님 가정과 함께 여러 날을 보내고

19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나이로비로 5시간을 달려 아루샤에 도착했어.

 

은하랑 은총이랑 헤어진지 꼭 일주일만에..

 

우기라 그런지 바깥에 이름 모를 풀들도 무성하고

너희들이 마사이 어린이들처럼 작대기를 들고 돌보던 닭도 세 마리나 사라졌더구나.

 

텅 빈 집.

 

삐뚤빼뚤 그린 글씨들이며 몇 주 못탄 자전거를 보며 "은하야, 은총아"

 

아프리카로 떠난 딸 자식과 사위, 손녀들 생각에

스페인에 사는 작은 사위네 생각에

한명 한명 이름을 따라 우신다는 엄마의 엄마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요새 엄마 아빠는 에쉬케쉬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단다.

 

아빠는 빗물 받을 탱크,  잠시 먹고 자며 지낼 차량 안의 침대

간이 부엌을 위한 천막, 냐팡가 삼촌 부부와 다른 사역자들을 위한 텐트

태양 판넬을 이용한 전구 및 휴대폰 충전 셋트 등등 

바라바이크 사람들과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단다.

 

하나님께서 은하 은총이 올때까지 교회랑 집이 지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해줘.

그때까지 우물도 파 주시도록

냐팡가 아저씨 말처럼 비가 많이 올 때

작은 묘목들도 심고 카사바랑 감자랑 옥수수도 심어서 바라바이크 친구들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은하 은총이가 기도 많이 해줘야해, 알았지?

 

엄마 아빠는 은하은총이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바라바이크 아저씨, 아주머니, 추장님,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냥 그 푸르른 하늘 밑에서 같이 뒹굴면서

바라바이크 사람들이 원하는 그 너머에

그 모든 것 되시는

귀중한 예수님을 함께 배워가고 싶어.

 

씩씩하게 밝게

이 분리가 결코 헛되지 않게

잘 있다가 만나자.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밥 맛있게 먹고

 

얼마전 응가를 잘 한 은하가

"다 하나님 덕분인걸" 했던것처럼

 

하나님 덕분에 함박웃음으로 다시 만나자.

 

사랑해.

 

2013년 4월 18일

아루샤 사택에서

엄마랑 아빠가

 

(지난 2주간의 방문동안 따뜻하게 손 잡아주시고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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