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파던 날

 

이곳은 마사이 마을, 음불룽구(Mbulungu).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시추 현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둥근 짚단을 동그랗게 쌓아 올린 전형적인 마사이 가옥들이 즐비한 마을 중앙, 큰 나무 아래 시추가 진행 중입니다. 커다란 기계가 굉음을 울리며 3미터씩 파 들어갈 때마다 파이프 주위로 흙들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바짝 말라 있던 흙들은 깊이가 깊어질수록 점차 물기를 머금은 진흙으로 바뀌어 갑니다.

 

한쪽에서는 음불룽구의 모교회인 민진구(Minjingu) 교인들의 쉐레헤(Sherehe, 우물 시추를 축하하는 잔치) 준비가 한창입니다. 며칠 전 열렸던 마사이 마켓(시장)에서 큰맘 먹고 교인들과 음불룽구 마을 사람들 60여명이 함께 먹을 소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염소와 닭도 여러 마리 준비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먹는 필라우(Pilau, 고기를 넣은 기름진 밥)도 만들고 감자도 튀기고 소다와 주스도 넉넉히 샀습니다. 이날은 시추를 위해 탄자니아를 방문하신 한상우 목사님, 김문호 장로님, 그리고 송대경 장로님이 함께 하셨기에 조용했던 마사이 마을은 잔칫날 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와중구(Wazungu, 외국인) 주위로 얼굴을 검게 칠한 10대 예비 모란들(Moran, 전사)이며 마을 아낙네들, 그리고 꼬맹이들까지 전부 몰려들었습니다. 인근의 음토와음부(Mto wa Mbu) 지역에서 장막 부흥회를 이끄시던 북동부합회(North East Tanzania Conference)의 마요(Mayo) 합회장님과 음불룽구의 지역장인 조엘(Joel)목사님도 오셔서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시추 결과와 쉐레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0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지요!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사이들은 덩실 덩실 어깨춤을 추며 혀를 동그랗게 말고 오로로로로로저들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저희들은 곧 한쪽에 모여 머리를 숙이고 메마른 땅에 물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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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 직후 그리고 이틀 후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물이 터져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물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물 반, 진흙 반. 이거 마셔도 되는 물인가, 마치 사해 바다에서 머드팩하기에 딱 좋은 진흙물이 나온 것입니다. 밤새 물을 받아놓았는데도 진흙은 걸러지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역한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수질 검사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부적합’. “이 물은 어떤 용도로도 사용이 불가합니다.”(The water is not acceptable for any domestic uses.) 딱 작년 이맘때, 바라바이크 부족의 땅 에쉬케쉬(Eshkesh)에서도 물을 얻지 못했었지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우물이 성공하길 기도해 왔습니다. 음불룽구의 마사이들도 물을 얻기 위해 5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저들이나 저희나 물에 대한 갈망은 정말이지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추도 결국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우물을 파기 위해 먼 한국에서 오신 후원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틀 후, 한 목사님과 두 분의 장로님들은 한국으로 귀국을 서두르셨고, 저희들은 쓰라린 가슴과 죄송한 마음으로 간신히 울음을 삼키며 배웅을 해드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육안적인 이 실망 속에 어떠한 섭리를 숨겨두셨는지요. 이제는 물 파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벽, ‘하나님께서는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심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최선의 결과를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물은 얻지 못했지만 음불룽구 개척 사역에 하나님의 뜻하시는 섭리를 계속하여 이루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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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9일 안식일

 

마쿠유니 교회를 갈까, 음불룽구 교회를 갈까? 전날 사역자로부터 마쿠유니를 방문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왠지 아침 내내 음불룽구 교회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물 실패 이후, 김문호 장로님과 송대경 장로님의 귀한 후원으로 그곳엔 지금 교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사이 장로님이 이 어린 교회의 교우들을 돌보고 있는 상태입니다만, 교회가 완성되면 곧 사역자도 파송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 마을 중앙의 큰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어, 웬일인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모여 있습니다. 개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기에 교인들이 많지 않을 텐데 지역장 조엘 목사님도 보이고, 민진구 모교회의 장로님들도 모두 와계시네요.

 

카리부니!(Karibuni! 환영합니다!)” 반갑게 맞아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음불룽구에 복음에 전파된 이래 처음으로 오늘 안식일, 16명이 침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제 하루 종일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여러 번 전화를 했었는데 통화가 안 되더라면서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오히려 의아해 하시네요. 어떻게 알고 왔기는요! 하나님이 알려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음불룽구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헤아려 주고, 물을 얻기 위해 애쓴 교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셨고, 그들의 눈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주목 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1년이 넘도록 나무 아래 예배를 드려오던 교인들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두 달 전의 처절한 실망은 하나님의 승리로 통쾌하게 역전되었습니다. 침례식은 물이 처음 솟구쳐 올랐을 때의 그 환호보다 더 큰 환희 속에 진행되었고, 침례 받은 16명의 음불룽구 마사이 사람들은 선물로 받은 마사이어 성경각 시대 대쟁투를 품에 안고, “미세스 렝가이(Mises Lengai, 마사이어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를 외치며 오로로로로혀를 말았습니다. 침례 후에는 시추 당일 보다 더욱 풍성한 쉐레헤(잔치)로 하늘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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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순복하고 믿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입니다.”(소망 98)

 

실패라 할지라도 결코 헛된 사역은 없습니다. 결국 그 구덩이 끄트머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비쳐오는 한줄기 빛을 볼 날은 반드시 옵니다. 메마르고 굳어 버린 땅은 마실 물을 내지 않을지라도 보다 궁극적이며 영속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 부족들 곁에 그리고 저희 곁에 계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음불룽구의 마사이들이 그리고 에쉬케쉬의 바라바이크들이 타는 목을 축이려 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그들의 갈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장 선하시고, 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우리 모두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미세스 렝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