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상인으로, 밤에는 목사로서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k0072s.jpg김명길 목사

  교회가 해산을 당하고 나라가 해방을 맞기까지 일제 말의 극심한 수난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따르면서 목숨을 걸고 교회를 섬긴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바로 김명길 목사였습니다. 

  

  그는 충남 보령에서 목회할 때에 경찰서에 구금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경(日警)이 재림신자들을 연행해서 탈교를 강제하는 것을 항의하고 자신에게도 기독교연합회(조선혁신교단)에 가입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령경찰서에 20일 동안 갇혀 있다가 풀려나야 했습니다. 그 후에 개성으로 불가불 전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욱 비장한 심정으로 교회를 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가 해산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그는 양떼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과거에 권서[문서] 전도 경험이 있어서 핸드백을 판매하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핸드백 판매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는 양떼들을 찾아 믿음을 일깨울 뿐 아니라 기회를 타서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배낭에 핸드백을 넣고 각처를 다니면서 낮에는 상인으로, 그러나 밤에는 목사로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발길이 닿았던 곳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함흥, 원산, 평양, 진남포, 순안, 운북리, 입석리, 석대산, 개천, 장매리, 구룡리, 해주, 태탄, 사리원, 강릉, 묵호, 삼척, 춘천, 가평 적목리, 원주, 황성, 토성, 장단, 서울, 광주, 대전, 광천, 조치원, 천안, 홍성, 청주, 화강리, 목포, 나주, 전주, 이리, 군산, 지리산, 부산, 진주, 삼천포, 마산, 안동, 김천 등등. 이러한 곳들에서 그는 기존 신자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했을 뿐 아니라 구도자를 찾아내어 세 천사의 기별을 가르쳐서 무려 153명에게 침례를 베푸는 대역사를 이루기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 그가 전국을 누비면서 겪은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정거장 출구에서 일경에게 불심 검문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길에 미끄러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피할 길과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실로 “임마누엘”(마 1:23; 28:20)이셨습니다.

           

  주님, 자기 백성을 결코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몸소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며 붙드시고 지켜 주시니 감지덕지할 뿐입니다.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