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생소할 지 모르나, 폭발적 교회 성장은 현대 대중 매체가 있기 전에 이루어졌다. TV나 라디오 혹은 인쇄된 책도 없었다. 1세기의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의 매체만을 가졌는데 예수님의 방법, 사랑이 그것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람 중심이 되기보다 너무 프로그램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셨고 프로그램을 이용하셨다. 절대로 거꾸로 하지 않으셨다. 먼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되셨다. "친구를 얻는 자는 자신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잠 18:24)고 성경은 말한다. 요즘 들어 부쩍 친구 사귀는 기술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잃는다고 걱정들 한다. 이유는 비 그리스도인과 종교적인 토의를 하는 것 이외는 시간의 낭비라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친구가 되는 것은 이웃의 아품을 들어주는 것이다. 실제적 봉사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시간을 헌신하고 있다면 성령은 적절한 때에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자연스런 기회를 주실 것이라 보증해 준다.

 

  외로움,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노령화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 가정, 부부간의 갈등으로 심적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는 주부들, 경쟁의 매서움 속에서 겉돌고 있는 청소년들이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들이다.

 

  "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언제나 열심히 일하셨다. 그 분은 많은 것을 기대하셨으므로 많은 것을 시도하셨다"(시대의 소망, 상 한영대역 62). 예수님은 저들을 일상 일터에서 만나셨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관심을 표현하셨다. 그 분의 일생은 전도와 또 전도 생활이셨다.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법도 있는 법이다. 다만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거나, 알고 있어도 실행하지 않을 경우엔 언제나 문제만 남게 마련이다.

 

  "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고 (마 13:45)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각도를 달리해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상인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을 진주처럼 여기사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고 희생하신 분이셨다. 주저없이 값을 치루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값진 보배였기 때문이다. 지불된 아픔과 고통은 낭비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사람을 가장 가치 있는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영혼구원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