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처음 출석하는 사람에게 교회가 주는 첫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긍정, 부정적 인 이미지 형성은 고작 5분 안에 결정된다. 주차장, 교회 외부- 내부 분위기, 출입구 환경, 환영 받는 느낌인지? 등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교회 선택에 결정타를 날릴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해서 잘 훈련된 성도들이 새 가족, 구도자를 맞으면 더욱 좋겠다. 많은 관문들을 어렵게 통과 재림교인이 되어 자긍심 느끼기 전, 교회 문 박차고 나서는 경우 흔한 일이 되었다. 침례 후 1-2년 신앙 관리가 성장을 가름하는 바로미터다. 어떻게 친교와 우정을 나누는 단계에서 양육과 제자 삼는 훈련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목회자, 교회 중심의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인도자 혹은 성숙한 성도의 개인적 돌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말씀으로 엮어진 믿음의 삶 살기까지 시험과 유혹, 제풀에 꺾여 넘어지기 쉬운 시절, 지도와 큰 관심으로 풍부한 잠재력 일깨운다면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어떻게 제자 삼을 수 있을까?

 

 

 1. 진솔한 사랑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 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8). 직책, 월말 보고, 상관, 조직,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키 위해 일할 수 있다. 거기에, ‘하나님이 증인 되셔’도 좋을 만큼 확신 있는 양심의 열정, 동기, 태도 있다면 이 보다 더할 나위 있겠는가? 제자들을 향한 지속적인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을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도 그 분의 진실한 사랑은 보였고, 그들의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과 계속 일하셨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업의 성공은 수나 재간이라기보다는 목적의 순수성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참된 단순성과 내맡기는 믿음에 달려 있다”(시대의 소망, 370-371). 하는 척 말라 하신다.

 

2. 영적인 지도자로

 

       공통점은 좋은 관계 형성에 유익하다. 운동, 문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 특출하기 어렵고 유사성을 찾기 힘들 때도 있다. 너무 새 가족, 구도자의 관심에만 집중한다면 쉽게 지쳐 한계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관계 중심의 전도와 양육은 끝날 것이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방법을 따라가 보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을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요일 1:3절). 없는 것 억지로 만들기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나뉘고 보여주라 한다. 훨씬 쉽지 않겠나. 새 가족, 구도자들을 말씀 연구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가진 문제들의 답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때다. 다양한 삶의 문제에 성경의 원칙들을 활용해 보자. 확실하게 도움 될 것이다.

 

3. 인내와 넉넉한 기다림으로

   

       다음 단계는 인내와 참음이다. 이것들 없다면 지금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의 성장과 회심도 또한 더디며 없을 수 있다. 한 순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진정한 제자로 거듭나는 데 3년 반씩이나 걸렸다. 구도자, 새 신자들을 성경으로 안내하자. 그들의 궁금증, 포기하기 힘든 내용, 상황들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는지 자료를 제공 하자. 스스로 깨닫고 판단할 때 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선교학자 폴 히벌트는 주장한다. 노리유케 미야케 학자는 일본전도 방법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한 가지 힌트를 공개했다. 보통 불신자가 믿음에 이르는 단계를 들음-> 이해-> 믿음 순으로 전개된다지만, 일본의 경우는 소속->경험-> 믿음 단계로 나가야 결과를 볼 수 한다. 시간이 소요되니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예수님과 천사로부터 <부활> 사실을 알리라 명을 받았다(마 28:1-10).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28:8) 한다. 반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역시 그들의 제자들(군인)에게 뇌물을 주며 가서 부활에 대한 거짓 보고를 선포케 한다(28:11-15). 뒤이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서 대 사명(28:16-20) 이 주어진다.

     

     사실을 달음질하며 외칠 참 제자들이 필요하다. 목적은 분명하다. 가면서, 침례 주면서, 가르치면서, 제자 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는 주님의 뜻이기도 하다. 제자는 단지 듣는 자가 아니라 따르는 자이다(8:23). 그것도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다(16:24).  제자 되어야 제자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