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을 통해 살펴본 선교 단상(斷想)

   공산주의 국가였던 나라가 다 그렇지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것이 때로 스릴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건축을 하다 큰 장벽에 가로막혀 진척이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그렇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믿음으로 계속하다가 어느날 일이 해결되어 나가는 것도 그렇다. 기도는 언제나 필요하지만 보편적인 상식과 한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세금과 벌금 등등 현지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습기까지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는 사람도 필요하고 어떤 때는 돈도 필요하다.  

   이게 아니다 싶어 바른 말이라도 할라치면 러시아에서 일하기 싫으면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에 무슨 말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 땅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정교회) 국가인데 선교사는 필요없으니 시키는대로 하기 싫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란다. 물론 선교사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소수의 일반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관공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경찰들은 대부분 전자에 속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선교사들의 지나친 교권주의와 배타적 권위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겠지만 동포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조선족들을 통해서 만난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북한은 더욱 가관이다. 하루 15시간 정도를 죽도록 일해서 모은 러시아인보다 적은 임금을 70%는 이리저리 뻬앗기고 겨우 30%만 자기 주머니에 들어간단다. 그 돈으로 일하면서 자기도 먹고 살고 가족도 먹여 살리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나마 러시아에 일하러 나온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하니 기가막힐 따름이다.

   인간의 가치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이들에게는 사치스런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꾸만 멀어지는 민족의 간격을 러시아에서 고려인들과 조선족들, 북한인들을 통해 발견한다. 몸은 같지만 문화와 가치관은 조금씩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들도 한국에게는 어차피 타문화권 선교지일 뿐이다. 고난과 한 많은 역사로 점철된 우리의 한민족, 이들을 발판으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으로 예수님의 재림기별을 전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이들의 아픔과 현실을 이해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섣부른 감상적 동질감은 아픔을 수반한 상처만 남긴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솔직히 시인하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타문화권 선교지는 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한국에서 이미 교회 하나를 짓고도 말을 아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요한 경우 한국인으로서 말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동포들에게도 다시 생각하고 기도하며 말해야한다. 나날이 정신없이 오르는 물가와 수시로 변하는 많은 상황들은 사람들을 카멜레온처럼 변하게한다. 그래서 카멜레온이 되어 이제는 살아남는 선교를 해야 한다는 바램뿐이다.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을 충족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다. 나의 구주되신 주님만 바라며 오늘도 이 영혼들을 사랑하고픈 몸부림이 내게는 나의 러시아 선교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