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선교지 - 네가 있는 곳에서


어느 청년들의
집회에서 선교사 운동을 소개했다. 선교적인 소명을 감지한 한 자매가 선교사로 지원하기를 원한다며 면담을 요청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그 자매의 직업을 물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고 근무 조건도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들어가기 힘든 직장을 그만 두겠다니 가상한 일이었다.

나의 다음 질문은 그 회사에 다른 재림 신자가 있는가 물었다. 자신이 유일한 재림신자라고 했다. 나는 그 자매에게 선교사로 지원하려는 결심을 재고하도록 요청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이 종종 오해되어 왔다. 모든 족속은 모든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집단과 사회적 단위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에 단일 언어의 단일 문화의 나라이지만 중국이나 필리핀은 경우가 다르다. 다민족에 다문화 다언어 사회이다. 한 나라에 80여개 이상의 방언이 있고 여러 종족이 살고 있다. 필리핀에 복음이 들어갔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모든 족속"에는 모든 언어군(言語群)과 문화군(文化群)이 포함됨을 뜻한다.

단일 민족 단일 문화 단일 언어권인 대한민국을 예로 들어보자. 대한민국을 향한 선교를 "모든 족속"의 개념으로 다시 보면 대한민국 내의 모든 집단과 사회 속에 복음이 들어감을 뜻한다.  육군과 해군과 공군에도 복음이 들어가야 하고, 현대조선에도 영원한 복음이 들어가야 하며 삼성 전자에도 재림 기별이 들어가야 하고, 대우자동차에도 현대진리가 들어가야 한다. 삼육학교 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에도 기별이 들어가야 하고 위생병원뿐만 아니라 서울 대학병원에도 건강 기별이 들어가야 한다. 선교적 소명은 모든 사회의 단위 속에 들어가 일하는 것이다. 어떤 곳에는 일부러 복음 사역자가 들어가려고 애를 써도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재림 신자가 그 좋은 선교지를 버리고 나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들어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비경제적인가!

직장은 참으로 좋은 선교지이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믿는 이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주님을 보여주어야 하고, 성도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교사의 삶이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선교사 운동에 참여해야 하겠지만, 다른 이들이 갈 수 없는 곳에서 재림신자로서 이미 빛을 발하고 있다면 그곳에 당분간 더 머물면서 그리스도인 삶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자신을 대신해서 빛을 전할 사람을 찾거나 훈련시킬 때까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 직장에서 자리를 얻은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에 4:14).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동일한 언어와 문화 속에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고 가장 많은 공통성과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직장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선교지이다. 그곳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1997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