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란 누구인가?

   언젠가부터 선교사라고 불리며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되었다. 예전에는 50불로 한달을 살아야했던 학생자원선교사였고 지금은 보냄을 받은 파송선교사로서 러시아에 살고 있다. 교회내에는 현재 1,000명 선교사, PMM선교사, 파송선교사, 정식선교사, 현지채용 선교사, 자원선교사 등등 많은 종류의 선교사들이 있고 선교사하면 무언가 남다른 일을 하는 구별된 부류의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선교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만이 특정 분야의 선교라는 명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대다수는 바라만보는 경우가 있다.  

  과연 선교사란 누구인가? 성경용어는 아니지만 선교사란 단어는 이미 기독교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선교사란 사도라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즉 복음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선교사는 라틴 벌게이트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13세기 이후 탁발 수도회 수사들이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예수회가 생성되기 4세기 전 카르멜 수도회에서 시작하여 천주교 선교사 성성(聖省)에서 공식적으로 현재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어원적으로 볼 때 선교사는 복음전도의 사명이 있는 자이다. 선교사는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며 복음을 전하러 가야할 선교지가 있는 자이다. 더 나아가 영적으로 선교사는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이 지상의 하나님의 군대이다. 지역적인 한계와 특정 선교분야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며 복음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비록 일부 개신교회와 천주교회가 선교사는 현저한 문화 장벽을 넘어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해하고 있지만 SDA의 이해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지경을 넘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이방인이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선교사의 사명이므로 한계를 정하는 경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나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나 똑같이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엘렌 G. 화잇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치료봉사, 영문104)고 말한다.

  물론, 전문적인 사역의 구분과 활동영역의 차이는 인정되어야하지만 이것은 고과(高科)나 경중(輕重)의 분별이 아니라 역할의 차이일 뿐이다. 선교지의 특수성과 선교사의 경험은 존중되어야하지만 선교라는 담론이 선교사의 독점적인 소유물은 아니다. 선교는 한 때의 열정적인 경험이나 귀중한 체험이 아니다. 선교지는 어느 한정적인 구역이 아니다. 선교사는 복음 사업을 감당하는 특별한 계층이 아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사명이 선교이며 복음의 필요성을 깨닫는 곳이 선교지이고 우리 모두가 그 일을 해야하는 선교사인 것이다.

  선교사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선교지를 찾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교회의 위임을 받아 헌신하는 선교사가 되자. 외방 선교든 국내 선교든 선교를 소수 선교사의 독점적인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선교로 거듭나게 하자. 선교사가 만끽하는 복음사명에 다함께 취해보자.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선교사로서 태어난다.”(시대의 소망, 영문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