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종족들이 사는 시골에 아쌈자와(영어명-Tamarind)라는 나무가 있다한다. 이 나무의 열매는 류머티즘, 기침, 구강 염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고 나무의 재목도 좋아 말레이 어린이들의 전통적인 게임기를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나무는 크게 20미터까지고 자라는데 그 자라는 속도가 너무 늦어 씨로 파종할 경우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12년까지 걸리며 수확은 200년 이상 걸쳐 이뤄진다고 한다. 인내와 집중력 없는 사람이 가꾸고 돌보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성서에도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있다(마 13:31-33). 작은 것이 크게 되기 위해서는 활동의 힘을 넣어줘야 한다. 누룩이 작용하지 않으면 좋은 빵을 만들 없다. 작지만 그냥 있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발생할 수 없다. 일단 들어가야 한다. 겨자씨는 땅속으로 누룩은 밀가루 안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면 작은 것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숨어야 한다. 속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게 된다. 겨자씨와 누룩 자신이 완전히 없어져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야 성장력과 폭발력이 튀어나온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새들의 깃듦과 맛있는 빵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분에만 치중해왔다. 완성된 빵과 커다랗게 자란 나무에만 온통 관심이었다. 빵을 팽창시킨 누룩과 나무를 성장시킨 본질(씨)의 상태에는 신경을 끄고 있었다. 왜냐면 그것이 보이지 않고 감춰져 있어 소홀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숨어있는 씨앗과 누룩의 가치를 부러 잊으러 했을 지도 모른다. 수량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도 있다. 수치의 파워를 모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너무 수치(數値)에만 몰두할 경우 종종 수치(羞恥)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CEO 중의 사람으로 불리는 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분석한 책이 있다.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에는 그의 경영 철학을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 했다. 행동 능력에 익숙한 오늘날이지만 생각하는 능력을 중시하라 한다. 그래야 볼 수 없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한다. 등잔 밑에 빛을 비추고 땅속을 파야 한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끊는 수고가 있다할지라도 씨앗과 누룩을 찾아야 한다. 이유는 그것들이 성장의 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