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M 3기 일본 마에바시교회 강현중 목사

 

  선교지로 이사 온 지 약 넉 달째가 되어간다. 같이 언어교육을 받은 다른 선교사들은 3월에 임지로 갔지만, 나는 4월에야 임지에 오게 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었다. 우리 가족은 임지에 도착하여 텅 빈 2층 집으로 안내되었다. 안내자가 2층은 우리 가정이 들어가 살게 되고 아래층에 있는 방 두 칸은 교회로 이용될 것이라고 하였다. 개척교회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려고 일본에 왔지만 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해서 온 일이니까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앞으로 멋진 교회로 서 있을 모습을 연상하면서 지금도 열심히 힘쓰고 있다.

  시장을 가다가 물건 사러 온 많은 사람을 보면 이 사람들이 다 교회로 오면 얼마나 좋을까, 길을 지나다가 빠칭꼬 앞에 주차된 차량을 보면 이들도 교회로 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오는 그런 교회가 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에 꽉 찼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다.

  이제 날이 점점 더워진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방문을 하려고 차에서 내리면 머리가 띵해지려고 한다. 옛날 필리핀 1000명 선교사 시절에는 뜨거운 땡볕을 20-30분 걸어서 갔다 오곤 했기에이쯤이야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본인들을 방문하려고 집으로 들어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필리핀에서는 아무리 멀리 방문을 가서 피곤했어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보람이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사람을 만나주거나 환영해 주는 기쁨이 적기에 낙담 될 때가 있다.

  우리 마에바시교회는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교우 4-5명이 들락날락하는 교회 수준이다.

아직 풋내기인 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단계로 보는 게 낫겠다. 지난번에는 성찬기가 없어서 성만찬 예식을 다른 교회에 가서 합동으로 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영남합회의 지원으로 성찬기를 구입하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조용기 목사의 국가별 대성회를 본 적이 있다. 그 모인 숫자로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 마에바시교회가 저런 열기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도전해야 할 목표와 포부는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릴 적에 무거운 짐을 양손으로 들고 또 등에 지고 이리저리 다니며 먹고살려고 판촉을 하는 돗자리 장수를 본 일이 있다. 그 돗자리 장수를 상기할 때마다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무겁지도 않은 성경을 들고 더구나 차를 타고 다니니 무거운 등짐을 지고 다니는 돗자리 장수보다야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좀 더 힘을 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도 힘을 내야만 한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만 한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준비가 될 때는 도시락을 싸들고 나선다. 이제 이곳에서의 삶도 익숙해졌다. 아직 일본어가 술술 나오지는 않아도 주변 환경은 한국과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또 어디서든 내 이야기에서 빠뜨리지 않는 말인 "내가 살고 남을 살리는 선교사가 되자!"라는 말을 늘 간직하면서 전도에 힘쓰고 싶다. 마에바시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 모여드는 교회가 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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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회를 위해 미용봉사하는 한국의 삼육보건대학 토탈미용과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