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M 1기 일본 가와사키교회 이진환 목사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PMM에 지원했을 때 나를 알고 있었던 지인들은 걱정과 염려로 반대를 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분들의 반대가 타당함을 잘 이해할 만큼 성격적으로 선교사의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그것도 남들이 해보지 않을 일을 먼저 나서서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뿐 더러, 남들이 다 함께 움직여줘도 처음 하는 일이라면 자신감의 결여로 늘 남들의 뒤꽁무니만 쫓아서 하는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왜 선교사가 되었을까? 특별히 일어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일본을 좋아하거나 일본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만큼 나의 우유부단함과 조용히 뒤로 물러서는 성격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3년이 지난 지금, 하루도 선교사가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선교사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축복이 넘치는 일은 세상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나의 기도에 언제나 응답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끌어가야 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도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절한 필요가 생기면 하나님은 거기에 맞게 주셨다. 한국보다 두 세배의 월급을 받는 일본인들과 똑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절약하는 지혜를 배우게 하셨고, 더 기도하는 은혜를 주셔서 주변에 있는 금광을 발견하게 하셨다. 채소와 쌀을 나르는 까마귀가 곁에 있음도 보게 하셨다.

1년의 일본어 공부를 마치고 임지로 이사해, 교회로 얻어 놓은 빈 사무실의 하얀 벽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던 기억은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길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건물의 안쪽 구석방 11평. 겨우 건물 뒤로 보이는 선로 변 창문을 통하여 교회가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처지였다. 한 달 정도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빈 사무실을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주셨고, 10여 년간 가메노코야마 교회를 결석했던 분이 첫 예배에 참석한 날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달리는 열차에서라도 혹 누군가가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걸었던 현수막의 전화번호를, 일본인 남자와 결혼해 사는 필리핀 주부가 몇 번이고 전철을 갈아타면서 확인하고는 교회로 인도되던 그날, 역시 내 눈물샘은 터지고 말았다. 더욱이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두 번째 침례자가 되어 침례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인도하심에 또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신앙을 쉬고 있던 분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교회는 좁아졌고, 1년 만에 두 배 이상의 크기의 사무실을 다시 임대하게 되었다. 여전히 일본말을 어려워하면서도 3개월 동안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새 교회를 얻고, 새집을 얻으면서 일본 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이곳을 얻어야 하나님의 뜻인가, 저곳을 얻어야 하나님의 뜻인가 기도하며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어쩌면 그렇게 필요에 알맞게 주시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속속 응답 되는 기도의 체험을 하면서 더 큰 꿈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가져보지 못했던 원대한 꿈을, 선교사의 무덤이라고 하는 일본에서 꾸게 되었다. ‘인구 130만의 가와사키. 그중에 1%를 이 교회로 보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리며 5년 안에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를 지을 터를 구입하는 목표를 정하고 온 교우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를 포함하여 20여 명이 매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도 한 분, 한 분,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 분이 없다. 필요한 때에 침례를 받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때에 교적을 옮겨 주시고, 필요한 일을 맡아서 함께 노력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좋은 교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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