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개

 

PMM 2기 일본 킨시초 교회 김용훈 목사 


  2005년 4월 한국면허증을 일본면허증으로 바꾸기 위해 도쿄의 한국영사관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딘가를 관광하려고 하던 참에 도쿄가기가 쉽지 않으니 도쿄한국인교회의 성선제 목사님께서 일본 최초의 선교사 그레인저 목사님의 묘가 가까이 있으니 가보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2기 5명의 선교사가 모두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지리도 일본어도 잘 모르지만 더듬더듬 물어가면서 하라주쿠 역,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오못테 산도 부근에 있는 아오야마 묘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넓어서 사무실에 들러 재림교회 최초의 선교사 그레인저 목사 묘의 안내를 부탁하자, 간단한 약력이 있는 설명서를 복사해 주었습니다. 설명서를 읽을 때 돌아가셔서도 선교사로 여전히 불리고 안내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묘지는 예쁜 정원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설명서를 가지고도 잘 찾지 못해 5명이 흩어져서 찾기 시작했고 곧 누군가로부터 “여기다!”라는 소리를 듣고 모였습니다. 단출한 모습에 그랜저 목사님의 묘지는 한국인이라면 잘 아는 갑신정변의 주인공, 풍운아 김옥균의 묘 옆에 있어서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윌리엄 카르혼 그레인저 목사님은 힐즈파크대(현 미국 PUC) 학장이던 시절, 후에 일본인 첫 안수 목사가 된 일본인 학생 오코히라의 일본선교호소에 응답해 일본에 갈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09년 전 1896년 11월 19일 일본 요코하마에 선교사로서 도착했습니다. 부인과 따님은 1년 후 일본에 도착하게 됩니다.
  일본에 도착해서 일․영 성경학교를 개설하고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인도된 분이 한국에 복음을 전한 쿠니야 히데 목사님입니다. 또한 동양최초의 재림교회를 17명의 신자와 함께 조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1899년 10월 31일 일본에 도착한지 3년 만에 급한 발열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병세가 악화되어 부인과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11월 2일 선교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연세 55세였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쿠니야 목사님에게는 “너는 너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는가?”라고 물으셨고, 마지막으로는 “나는 일본에 전도를 위해 왔지만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3년이 되지 못한 봉사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제자 쿠니야 목사님에 의해 그것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한국 땅까지 복음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그레인저 목사님같이 일본을 사랑하는 선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저희들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